한서 가족의 여행기/2015년 여름, 한반도 방랑기

5년 만에 친정집 방문, 우리 결혼 반대하시던 부모님이 변했어요

산들무지개 2015. 7.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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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주를 떠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한 일 년은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요. 그런데 우리가 간 시기가 날씨가 아주 좋아서 제주의 일 년이 다 이 날씨만큼 좋지 않다는 현지 친구의 말을 새겨듣고 이제 우리 가족은 드디어 친정식구들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아이들만큼이나 신난 남편이 그런데 웬일인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아이들이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얼굴 생김새가 달라 낯설어하면 어떻게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이 스페인에서 태어나 한국 식구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첫째는 8개월에 한국 방문을 했지만, 워낙 어렸던 때가 5년이 흐른 지금이 (기억 있는) 첫 번째 만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남편만큼 저도 좀 걱정이 되긴 했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친정 부모님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실까? 혼혈이라 어색해하지 않으실까? 이런저런 걱정이 말입니다. 처음 우리가 결혼할 때 반대가 심하셔서 아직도 그것 때문에 섭섭해 하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전통적 고정관념이란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실 텐데, 배우자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관념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지금 많이 나아지셨지만, 그 전통적 사고방식이 달라진 것은 아니랍니다. 



15년 전, 귀농하신 부모님의 고향입니다. 

제가 어릴 때 태어나고 자란 할머니 집이 있던 시골집이기도 하답니다. 지금 할머니께서는 면에 나가 사시기 때문에 이 시골집은 여러 해 방치되어 있었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15년 전에 들어오셔서 지금까지 죽 귀농을 하고 계십니다. 



야생으로만 보던 고사리가 밭을 이루어 자라나는 풍경이 생소했지만 그래도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자연이, 그저 자연 안에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며 좋습니다. 



밭에 있는 지하수 샘도...... 

아기자기한 사람 흔적이 이 산속에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비포장 흙길이었는데 이제 차가 마음껏 걱정 없이 드다들 수 있고, 전기와 수도도 문제없이 들어온다니 역시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입니다. 이제 시골도 시골이 아닐 정도로 도시와 근접해졌습니다. 택배마저 들어온다니 참 놀라운 세상입니다. 



5년 만에 오니 참 이 시골도 많이 변해 있었네요. 그런데 엄마의 밥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짜잔! 친정엄마의 시골 밥상입니다!!! ^^*

엄마는 시골이라 준비한 것이 없다면서 소박한 밥상이라고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미안하긴요? 이렇게 그리운 시골 밥상을 언제 다시 볼 수 있다고 환상적인 고향의 맛이 얼마나 좋은데요? 엄마를 폭 안고 좋다고 눈물을 글썽...... 



다 집에서 수확한 재료로 만든 것이야~! 

산똘님도 손수 재배, 수확한 채소의 맛에 뿅 반했습니다. 여느 도시 음식보다도 더 맛있다고 입에 침 마르지 않도록 그렇게 먹어댔습니다.  



더 재미있었던 사실은 아이들 먹을 음식이 없다고 걱정하시던 엄마입니다. 그런데 한국 할머니가 손수 입으로 넣어주는 음식을 아이들은 군소리 없이 그렇게 잘 받아먹어 진짜 놀랐답니다. 나물이며 김이며, 국이며, 생선이며, 친정엄마의 손을 거쳐 간 숟가락은 아이들이 잘도 받아먹었습니다. 특히 꽁보리밥을 잘 먹는 아이들 보고 엄청나게 놀랐답니다. 


꽁보리밥이 그렇게도 좋니? 먹성 좋은 쌍둥이의 활약으로 엄마도 참 흐뭇해 하셨습니다. 



시골이라 가게도 없고 후식도 맛있는 것 없다며 친정 아빠가 내놓은 과자입니다. 엄마는 옆에서 뭘 이런 과자를 내밀었느냐며 타박을 하십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이 아니라면서 말이지요. 


"할머니가 외출하면 더 맛있는 과자 사줄게~!" 


친정엄마는 은근히 아이들을 당신 편으로 유도합니다. 

산드라는 할머니를 처음 보는 데에도 '할머니'라는 느낌을 어느새 아는지 할머니를 안고 얼굴 비비고 뽀뽀 세례를 합니다. 엄마도 처음 보는 손녀들을 안고 사랑한다며 뽀뽀를 해주십니다. 


아! 우리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서로 사랑하기에도 짧은 시간이잖아~! 


엄마의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엄마를 보고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사실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엄마입니다.) 


남편도 어느새 엄마 앞에서 드러누웠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편안한 존재인가 봅니다. 아빠, 아버지는 어려운 존재이지만 엄마는 언제나 이렇게 사랑으로 국경과 관념을 초월하십니다. 그사이 친정 아빠는 아직도 불편하신지 잠시 밖으로 외출하셨습니다. 



아이는 시골 한국 할머니집이 참 좋다고 

폴짝폴짝 뛰어다녔습니다. 

(그제야 카메라를 찾아 사진 찍을 준비하는 나, 그사이 긴장도 좀 풀어졌겠지요?)



주춤주춤 말로 표현하지 않으시던 친정 아빠가 어디서 오토바이를 끌고 오셨습니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오토바이 한 번 태워주마~!

 

'아빠는 맨날 속으로 좋으면서~! 표현을 하지 않으시니......'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며 기뻐했습니다. 산똘님은 더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과 친정 아빠를 바라봅니다. 


아버님이 변하셨어~! 하는 눈치로 말입니다. 

하긴 한꺼번에 이쁜 세 손녀가 달려드니 좋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아이는 인종이, 국적이, 전통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얼굴로 친정 아빠에게 그럽니다. 


"할아버지, 사랑해~!" 


언제 할아버지를 봤다고, 역시 가족은 가족인가 봅니다. 

이번에 좀 더 여유로워지신 아빠를 보고 저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산똘님도 은근 쫄(졸)아 있었는데 세 딸 덕분에 기지개 한 번 크게 켤 수 있었네요.  



 아이들은 그렇게 이 산골에서 무사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추억을 듬뿍 쌓았답니다~!


그러게 진작 이렇게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주시지.....

5년 만에 뵌 엄마, 아빠가 더 늙고 주름져 안타까웠습니다. 

해외 사는 못난 딸이 못날 수밖에요...... 

멀다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니......

몰래몰래 눈물만 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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