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자연

한밤중에 찾아온 불청객, 걱정 한 바가지

산들무지개 2016. 11. 3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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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200m의 스페인 고산평야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산과 산으로 연결된 와이파이 안테나가 다 태양광 전지로 작동하기 때문에 인터넷은 여전히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온종일 오프라인으로 생활했답니다. 한 잡지사에 원고 마감 하루를 앞둔 저는 불안한 걱정으로 하루를 보냈지요. 물론 원고는 이미 다 써놓았는데,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니 이렇게 마음을 졸일 수밖에요. 


그런데 제 마음을 더 졸인 사건 하나가 있었답니다. 


그것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비 오는 밤의 어느 날이었지요. 밖에 나갔던 남편이 무엇인가를 봤다면서 놀라워하고 있었답니다. 도대체 무엇일까? 남편은 노루가 우리 집에 먹을 것을 찾으러 왔다네요. 설마? 노루가 이곳까지 왔겠어?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녀석은 아주 순한 양이었습니다. 비에 쫄딱 맞아 젖어있던 녀석이었지요. 

남편은 그 녀석을 칠면조 우리에 넣었습니다. 순한 양이었고, 게다가 칠면조가 기거하는 우리가 예전에는 양들이 있던 곳이었던 지라, 양이 순수히 따라 들어갔습니다. 


"이 양은 라몬 아저씨의 양일 것 같아."


우리 집 앞을 지나는 양 떼는 대부분이 라몬 아저씨네 양이었거든요. 



이날 밤, 비가 잠시 그친 사이 우리 가족은 새로운 불청객을 보러 갔습니다. 



한쪽 눈은 다쳐 상했고, 온몸이 푹 젖어있던 녀석이었지요. 



무리에서 떨어져 집을 못 찾고 이곳저곳을 헤매다 우리 집 앞까지 오게 된 것이랍니다. 

아이들이 플래시를 터트리지 말라고 해서 안 터트리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렇게 잘 나오질 않네요. 

그래서 미안함을 무릅쓰고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바로 요런 모습으로 우리 가족은 길 잃은 양을 맞았습니다. 

아이들은 불쌍하다며, 만약 주인이 없다면 우리가 키우자고 난리입니다.


그래서 그다음 날, 라몬 아저씨를 찾아갔죠. 그랬더니, 양의 주인은 다름 아니라 라몬 아저씨가 맞았습니다. 이틀 전에 무리에서 떨어진 나이 많은 양이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대뜸 라몬 아저씨가 제게 그럽니다. 


"내가 선물로 줄게. 잘 키워 봐."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아니, 나에게 양을 선물로?

"제가 이 양으로 뭘 하게요?"

"한 달만 잘 먹이고, 살찌우게 하면 맛있는 고기로 먹을 수가 있어."


아이코야~! 어떡하지? 이 양을 어떻게 해야 하지? 양을 살찌우게 하여 먹을 건 상상도 못 했지만, 분명히 양치기 아저씨께 돌려드리면 이 양은 금방 도살당할 것 같았지요. 나이 많고 한쪽 눈까지 다쳤으니 말입니다. 


"아저씨, 잘 생각해 보고, 다음에 말씀해드릴게요."

그렇게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런 하소연을 했죠. 과연, 우리가 이 양을 키울 수 있을까? 그냥 걱정이 한 바가지 늘게 되었습니다. 잡아먹을 용기는 없고, 또 돌려줄 용기도 없는 것이...... 돌려주면 바로 도살당할 것 같아 괜히 미안하기도 했답니다. 


아이들이야, 양을 키우는 것에 대찬성을 했죠.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했답니다. 



과연 내가 좋은 양치기가 될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지요. 



그리고 해가 잠깐 뜬 날, 저는 양을 풀어주었습니다. 

양은 평소에 풀을 뜯으면서 사는 녀석이라 풀을 안 뜯으면 혹시 죽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도망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비 맞고 돌아다닌 이틀이 생각났는지, 어딜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곳이 내 집이다~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집 근처에서 풀을 뜯었습니다. 

고양이 녀석들도 호기심으로 녀석을 봅니다. 

"넌 누구니?"



"도대체 우리 집 녀석이 아닌데, 넌 누구니?"



"나도 저 녀석이 궁금해."

고양이들은 한참을 녀석 주위에서 배회하면서 

관찰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인데, 주인장이 저렇게 관심 있게 보살필까? 하듯이 말입니다. 



양은 그냥 꿋꿋하게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디 갈 생각을 않습니다. 



제 얼굴을 보면서 

"절 좀 키워주소오오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큰 걱정입니다. 

혼자 양 무리에서 떨어져 살 수 있을까? 양은 무엇보다도 무리로 사는 동물이 아닌가요? 

돌려보내도 걱정이고, 제가 키워도 걱정인 이곳. 

뭐 이런 걱정거리가 다 있어요? 

스페인 고산에서만 가능한 걱정거리입니다. 



오늘도 걱정인데 앞으로 이 양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어서 살찌워서 튼튼해지면 돌려보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적어도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지면 라몬 아저씨도 다시 생각하실 것 같아서요. 


그다음 날, 양을 풀어놓으니, 이제는 고양이 녀석들도 양을 알아보나 봐요. 

다 달려들어 네 먹는 것 나도 좀 줘~ 한 입만 줘~ 하면서 양이 먹던 풀을 달라고 합니다. ^^*



오늘은 이렇게 온종일 이슬비가 내렸습니다. 

태양이 뜰 일이 없어 전기도 오락가락, 인터넷도 오락가락입니다. 


여러분,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인터넷이 안정되면 또 이야기 한 보따리 들고 올게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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