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이야기/시사, 정치

정치학자가 보는 까딸루냐 분리 독립주의의 실상

산들무지개 2017. 10. 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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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일 일요일 까딸루냐는 분리독립 투표를 시행했습니다. 그에 관련된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많이 전해지는데요, 저는 이 투표가 실시되기 전, 정치학자와 만나 그 실상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까딸루냐(Catalunya, Cataluña)[각주:1]는 고유의 언어와 문화, 생활 양식을 가진 과거의 한 왕국이었으며, 역사적인 정치 배경 덕에 지금은 스페인의 한 주에 속한 자치 행정구가 되었다. 하지만, 근래에 스페인 중앙 정부에서 분리하고자 까딸루냐 정부는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시행을 은밀히 준비 중이다. 물론 이 글이 나가는 10월에는 까딸루냐 국민 투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미 결론이 나 있겠지만, 현지에서 본 스페인 정부와 까딸루냐 사이의 대립은 한국인이 상상하는 고질적인 민족주의가 아닌, 경제력을 장악할 힘겨루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그 배경과 분위기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알 수 있도록 바르셀로나 대학교(Universitat autònoma de Barcelona)에 재직 중인 정치학 교수, 조르디 무뇨즈(Jordi Muñoz)와의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이 인터뷰는 바르셀로나 테러가 일어난 며칠 뒤에 진행했으며, 스페인 정부와의 마찰이 커지는 중요한 시점에서 한 인터뷰임을 밝힌다. 까딸루냐의 수도인 바르셀로나에서 국민투표에 필요한 장소와 전단, 시행 준비 등의 행동은 스페인 정부로부터 불법이라 간주하여 오는 10월 1일의 국민투표 또한 불확실한 시점임을 밝힌다. 

먼저 바르셀로나 테러 사건에 대한 안타까운 위로를 보내며, 고인의 명복을 바란다. 

- 감사. 테러 사건이 청정지역인 바르셀로나(Barcelona)와 휴양 도시인 캄브릴스(Cambrils)에서 일어난 것을 지금도 믿을 수 없다. 고요하던 까딸루냐가 요동치고 있다. 중앙 정부에서 모소(Mosso, 까딸루냐의  자치 경찰 단체)를 테러 방지 정책에서 제외[각주:2]하여 일어난 사건이 아닌가 싶다. 이번 테러를 진압한 경찰은 모두 모소인데 까딸루냐만 이 테러 방지정책에서 제외되어 테러범이 이를 노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중앙 정부와의 마찰은 고질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가. 

- 2006년만 해도 마찰은 아주 미미했다. 그 당시 13-14%에만 불과하던 분리 독립주의자의 인구가 최근 10여년 동안의 정치적 변화로 2017년에는 지역민의 45%이 찬성을 논하고 있다. 더불어 투표를 원하는 인구는 70% 이상의 집계를 보이고 있으니 찬반 양상이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이 보기에는 민족적 독립을 원하는 국수주의적 시각이 강한데 실제로는 어떤가. 

-조금 전에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까딸루냐 시민들은 대부분 분리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나타난 중앙정부의 간섭과 경제적 불혜택으로 인한 불만이 쌓이고 쌓여 생긴 문제라고 본다. 한마디로 까딸루냐도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개념이 와해하여 실제로 민족주의적 성향은 없다. 단지, 의료, 교육 등의 재정 감축이 과도하게 시도되어 까딸루냐의 고통이 배가 되어 그렇다. 까딸루냐라는 이유로 다른 주에 비해 그 혜택이 적게 돌아간 게 시발점이다. 자치주 임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로 인한 과도한 중앙 정부의 참견과 무시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한마디로 내 살림을 내가 하는데, 다른 이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참견하다 보니,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까? 그래서 국민투표에 표하는 행위는 분리 독립이라는 목적보다는 까딸루냐가 얻고자 하는 재정정책을 위한 협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면 이런 역사적 배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텐데 언제부터 이런 시도와 정황이 있었는가. 

 - 유럽은 대부분 작은 구역이 합병되어 이루어진 합병 왕국이다. 그래서 사실상 지역적 색깔과 문화가 확실한 곳이 여러 곳 있다.  

까딸루냐 인은 합스부르크 가(독일어: Haus Habsburg)와 부르봉 가(프랑스어: Maison de Bourbon)의 왕위 계승 전쟁에서 결과적으로 주권을 빼앗긴 1714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 당시 프랑스를 지배하던 보르본(Borbón, 스페인어)[각주:3] 왕가가 승리하면서 소왕국 합병 통치 정책을 스페인으로 옮겨와 시행하게 된다. 합스부르크 가를 지지한 까딸루냐 소왕국은 그 타이틀을 잃고 보르본 왕가에 종속된다.(만약 그때 보르본 왕가를 지지했다면 오스트리아와도 같은 '까딸루냐'라는 나라가 현대 유럽에 평등하게 존재했으리라) 이런 역사적 맥락으로 비록 주권은 상실했지만,  까딸루냐를 '엘 빠이스 까딸란(El país Catalán - 까딸루냐 나라)' 이라고 지금도 대중적으로 부르고 있다. 

19세기 말엽에는 까딸루냐 산업이 다른 곳에 비해 극도로 빠른 속도로 번창했다. 그로 인해 다른 지역과의 마찰도 크게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까딸루냐는 섬유 산업으로 자체 성장을 이루면서 다른 지역과의 경쟁에 보호주의 무역을 지향했는데 그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그렇게 까딸루냐는 다양한 관점과 경제적 이익, 문화 등의 차이로 다른 주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실제적 원인으로 뽑자면 19세기 이후의 스페인이 프랑스식으로 정치적 시행하려다 실패한 게 원인이다. 프랑스에도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바스크, 까딸란, 집시 등이 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학교, 병원, 공무원 등 지원을 든든히 하며 지금의 프랑스를 만들어 왔다. 반면, 스페인은 19세기, 칼리스트 전쟁과 스페인 내전 등의 영향과 혼돈한 시대적 배경으로 실패하고 만다. 

20세기 초 까딸루냐는 지방 자치구 여럿이 합동하여 스페인 최초의 자치권을 얻는 지방 자치주가 되어 12, 13년을 이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프리모 데 리베라(Miguel Primo de Rivera)의 독재(1923-1930)로 이 자치권은 사라져버린다. 그 후 레푸블리카노(Republicano, 공화정)가 등장하면서 1932년 다시 자치권을 행사하지만,  1934년에는 중앙정부로 부터 지방 자치 기본법이 정지되면서 까딸루냐 정부는 사실상 파기되어 버리고 만다. 1936년 좌익이 집권하면서 간신히 자치권을 얻지만,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로 또 어려움을 겪고 만다. 프랑코 집권이 끝난 후에 현재의 형태를 한 실질적 지방 자치권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후 까딸루냐 시민들은 지방 정부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독재 정부 때에는 까딸루냐 어를 배울 수도 없었고, 출판물도 제작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독재로 부터 해방되는 협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한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스페인 중앙 정부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해석한다. 더 타협이 없는 종속적 관계로 말이다. 

몇해 동안 시민들은 만족했지만, 그 이후 까딸루냐 정부는 2006년 새로운 지방 자치 기본법을 제정하여 그 폭을 넓히려 했다. 2006년 까딸루냐 의회에 통과하고 중앙 정부의 조정,국민투표를 시행하여 대다수의 찬성[각주:4]을 받았지만,  4년 후 중앙정부는 무효로 인정하여 시민들이 폭발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분리 독립주의자들이 더 많이 생겨났다. 

말하자면, 중앙정부가 까딸루냐에서 시도하는 정책을 반대하고 나서 이런 원인이 생겼다는 것인가. 

- 실질적 원인은 그렇다. 

중앙정부의 까딸루냐를 향한 정책적 시도는 항상 경계와 제한을 먼저 둬왔다. 자치 정부에서 하고자 하는 보다 나은 시도를 미리 막고자 하는 게 시민들의 불만을 폭발하게 한 것이다. 이 분리 독립주의는 최근의 10년 동안 받아온 불만의 표현이다. 

스페인 경제위기를 이용하여 중앙정부는 더 많은 통제를 해왔다. 학교와 병원 등 재정 감축과 다른 주와 다른 공무원 시험의 차별 등의 문제, 한마디로 돈으로 압박하며 정치적 자유를 주지 않은 것이다. 중앙 정부가 까딸루냐의 자치법을 받아들이고 협력을 해주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까딸루냐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 맞다. 2010년에서 2012년 사이에 가장 많은 불만이 폭주했다.  

하지만 까딸루냐는 헤로나, 레리다, 바르셀로나, 따라고나의 4 지방으로 이루어졌는데 모든 이들이 같은 생각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데... 

- 당연히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다. 왜냐하면 까딸루냐 밖에서 온 이민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투표가 시행된다 해도 찬성이라는 결론은 섣불리 지을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분리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부치는 행위가 중앙정부에 대한 시위로 받아들이는 게 편하다. 

이번의 바르셀로나와 캄브릴스의 테러 사건으로 시민들은 오히려 분리 독립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테러는 테러이고, 이 지방 자치권을 위한 시위는 시위일 뿐이다. 연관을 짓는 일은 정치인이 주로 하는 일이다. 테러로 인한 위협에 오히려 중앙정부는 득을 볼 수 있다. 

중앙정부는 협의나 아무런 조치 없이 불법으로만 간주하고 있고, 까딸루냐가 하고 싶은 정책은 방관만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내가 해주기엔 싫고, 네가 하라고 하기에는 배가 아픈 나쁜 심보이다. 현재의 중앙정부는 까딸루냐를 받아들이는 일이 불가능하게 보인다. 

2006년에 까딸루냐 지방 자치법이 중앙 정부에 의해 하항 조정 무효화된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다른 주에서는 시행되는 항목이 많다. 왜 안달루시아는 가능하면서 까딸루냐는 불가능한가? 이것이 불평등에서 오는 문제이다. 

정말 복잡한 문제다.  

- 경제위기 전에 까딸루냐 정부는 더 많은 자치권이 있었다. 경제위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통제가 심해지면서 이 상황이 온 것 같다. 앞으로는 협력과 소통이 필요한 때이다. 소통이 없다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하는 것도 까딸루냐인들은 마다치 않고 있다. 정치학자의 처지에서 보면 그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시민의 노력은 인지(認知)해볼 만하다.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 까딸루냐 미래가 앞으로 더욱 밝기를 바라본다. 

- 항상 선구적인 시도를 제일 먼저 하는 곳이 까딸루냐였다. 이런 선구적 행동이 미래의 정치에 긍정적 행동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본다.  

노을 지는 스페인 저녁 들판에서 우리는 극단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며 진지한 시각으로 까딸루냐 현재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앞으로의 정황은 두고 볼 일이지만, 무조건 민족주의적인 극단주의로 본 필자에게는 정치적 관점에서 보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극단주의자의 분리 독립이 아닌, 지방 자치 정부를 위한 하나의 행동이라는 것. 새로웠다. 이들의 목소리가 과연 중앙정부에 전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월간, [태백] 2017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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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딸루냐 지역 공식 언어로 Catalunya라고 쓰고, 스페인어는 Cataluña이다. 국어사전은 외래어 표기법으로 '카탈루냐'라고 명명하나 발음이 까딸루냐에 더 가까워 필자는 '까딸루냐'라고 표기함을 밝힌다. [본문으로]
  2. 스페인은 다양한 경찰 집단이 있다. [본문으로]
  3. 프랑스어로 부르봉(Maison de Bourbon)이라 부르는 프랑스 왕가. 부르봉 왕조는 프랑스에서 1589년부터 1791년까지 그리고 1814년부터 1830년까지 지속하었다. 스페인에서는 1701년부터 통치하고 있는데, 1874년부터 1875년까지, 1931년부터 1975년까지는 공화정으로 인해 다른 나라로 도피하였고, 프랑코가 집권할 당시에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 I)를 내세워 지금의 '스페인 왕국'이라는 입헌군주제를 마련하였다. 현재 스페인의 왕 펠리페(Felipe) 6세도 보르본(부르봉) 출신이다. [본문으로]
  4. 2006년 5월 10일 시행. 투표율 48.85%, 찬성 73.90%, 반대 20.76% , 공백투표5.3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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