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글쓰기 프로젝트/어른을 위한 동화

보물을 찾아 방황하는 한 젊은이

산들무지개 2014. 9. 18.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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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페냐골로사산을 둘러싼 신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어낸 것입니다. 

허구적인 가상의 인물로 현재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길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아주 감사하겠습니다.





아득한 먼 옛날 나의 조상은 지도와 열쇠를 보물로 남기셨다. 내 이름은 압둘. 레바논의 베이룻에서 살고 있다. 베이룻은 내전 이후 한참 살기 좋은 곳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이 폭격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팔레스타인 피난민을 거두어들이고 돕는 것이 못 마땅했는지 생길만한 구실이 있으면 바로 폭격 실행에 들어간다. 우리는 그들의 행태를 침략으로 보는데 그들은 방어라고 한다. 어쨌거나 난 운이 좋아 여지껏 목숨을 쥐고 있다. 우리도 잘 사는 나라인데 터키와 이스라엘에 끼어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래서 지긋지긋한 전쟁을 피하여 나도 젊은이다운 인생을 살고자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것은 우리 조상이 남기신 지도를 공부하여 그곳에 다시 가는 것. 


난 알고 있다. 우리 조상은 먼 고향을 등지고 침략자인 이교도들에게 좇겨나야했다는 것을 말이다. 스페인의 어느 마을에서 줄곧 800년을 살아오셨는데 갑자기 그곳을 떠나셔야했다니, 참으로 지금의 전쟁처럼 어처구니가 없다. 그 고장을 떠나야만 했던 조상은 내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줄 알고 열쇠를 잠그고 오셨다는데, 여기 내 손에 있는 이 열쇠가 바로 그 집의 열쇠이리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 집이 존재하기나 한지, 난 가망 없는 이 맹렬함에 휩싸여있다. 어쨌거나 나의 뿌리에 대한 궁금함이 날 자극하고 있으니 직접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난 젊으니 모험을 해야하고 그 모험을 즐겨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전쟁을 피해 잠시 이 베이룻을 떠나야지. 


다행이도 내 사촌은 촉망받는 외교 사무관이다. 지금 프랑스 파리에 주재하고 있고 예쁜 크리스찬 프랑스 아가씨와 결혼하여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난 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비자를 어렵지 않게 얻어낼 수 있었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는 큰 장점이 되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다는 그 불명예에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모험은 내 근원을 다시 보고 살피는 기회가 될 터이니 열심히 사용해야 한다. 


프랑스는 다국적 국민의 나라였다. 적어도 파리에는 다양한 인종이 무뚝뚝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나도 그 무리 속에 속해 무뚝뚝하게 센느 강변을 거닐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포탄으로 인한 콘크리트벽의 구멍이 일상으로 다가왔는데 말이다. 그래도 며칠 사이로 전쟁이 가라앉는 듯하다는 뉴스를 보고 어지간히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그 사이 미뤄두었던 일들을 다시 시작해야지 우리 형제들도 삶을 살 수가 있지 않을까 말이다. 여기서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김이 쌨는지 우리 쪽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군. 세상의 정부라는 정부는 다 돈으로 좌지우지 하는 인간사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도 국경없는 의사협회와 세계봉사자협회, 적십자 등등의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의 횡포를 말이다. 

모험을 하러 그곳을 떠나왔으면서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난 레바논 사람이니까... 베이룻의 하얀 해변이 그립다. 푸른 하늘과 평화로운 바닷바람, 내 무뚝뚝함에 애교를 떠는 갈매기들의 합창, 그 모든 것이 그립다. 이 그리움처럼 우리 조상도 스페인의 고향을 떠나실 때 이렇게 나보다 더 슬프고 그리웠을 게다. 난 적어도 다시 돌아갈 수 있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으리라. 그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크리스찬 정복자의 무지막지함은 구술로 전해오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관대하게 의학과 지식을 나누어 주어 황폐한 땅에 거름을 주는 존재와도 같았다는데...... 은혜를 모르는구나. 하긴, 이 땅의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때나 이때나 인간들은 소유하고자 하지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 땅을 가르고 이곳은 내 것, 저곳은 네 것, 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고 생각된다. 인간만이 이렇게 착각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난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이 사회적 체계 앞에서 한 개인으로서 무시하면서 살고자 하나 그것도 안 될 일이다. 어쨌든 나도 이 사회에 속해 있으니 법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웃긴 일이지만 말이다. 저 국경을 넘나드는 새와 들짐승, 구름과 하늘, 바람...... 그들에겐 그 따위 경계라는 것은 없는데 말이다. 이렇게 오늘도 국경 앞에서 비자를 받고 세관을 통과하고 출입국 도장을 찍어야하니 말이다. 

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넘어 조상들이 살았다는 스페인 동부의 지중해 연안에 와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유사할 수가 있을까? 이곳의 해변은 베이룻의 해변과 아주 비슷하다.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 푸르고 높은 하늘, 내 무뚝뚝함에 애교 떠는 갈매기까지...... 세상의 모든 바다를 구경하지 못해 그런 것일까? 두 바다가 아주 비슷하다. 간혹 간혹 보이는 야생 올리브나무, 베이룻이 아주 가까이 있게 느껴진다. 

스페인 도로청이 찍어낸 지도책을 며칠 동안 살폈다. 어느 지형이 조상의 지도와 비슷한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세상이 그렇게 많이 변했는데 이런 내 상상력과 궁금증이 실없이 과거와 현재의 끈을 연결하고자 한다. 그래도 한 번은 이곳에 발을 딛고 공기를 숨쉬는 것도 나쁠 것 없으리라. 난 젊고 모험을 해야하므로 먼 옛날 조상이 살았다는 그 땅에서 춤 추고 싶다. 

지도에는 회교도들이 남긴 듯한 지명들이 아주 많았다. 베니카심(Benicassim), 베니까를로(Benicarlo), 알리칸테(Alicante) 등등의 눈으로 그저 흘깃 봐도 알 수 있는 지명들이다. 아직도 흔적은 남아있다. 어떤 가망성이 느껴진다. 산과 지명, 옛 지형이 조금씩 들어맞고 있다. 난 페냐골로사라는 큰 산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주변의 마을, 비스타베야,베나피고,아체네타, 초도스, 유세나, 빌라프랑카, 어떤지 조상의 지도와 일치한다. 지도책에 거미줄처럼 얽힌 도로와 도로를 내 시야에서 지우고 오직 지형에만 초점을 둔다. 어림하게 조상의 그림과 스르륵 겹치면서 확연히 들어온다. 그렇다. 이렇게 쉽게 난 조상의 마을을 찾았다! 믿어지지가 않는다. 

난 곧바로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하루에 한 대 밖에 없어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오후 3시 카스테욘의 역에서 출발, 그곳에 5시 즈음 도착할 예정이다. 도착할 마을은 아체네타, 그리고 그곳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걸어가야할 것 같다. 조상이 살았던 마을은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의심이 내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어떤 흔적을 발견하고 가까이 있는 것이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살아가야할 어떤 모티브가 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이렇게 여기까지 온 것도 그 모티브였는데...... 

버스는 안전하게 아체네타에 도착했다. 굽이 굽이 돈 길을 돌아서 산 속에 버젓이 확 펼쳐진 마을에 도착했다. 산으로 들어가면서 아무도 살 것 같지 않더니 갑자기 큰 마을이 나타나니 황당했다. 버스는 종착역인 비스타베야를 향해 나와 몇 몇의 사람을 떨쳐놓고 굽이 굽이 돈 길을 출발했다. 

배가 고파와 내리자마자 베이커리에서 빵과 과자, 물을 샀다. 돌아갈 버스에 대해 물어보니 다음 날 아침 7시에야 있다는 것이다. 손짓, 발짓, 제스쳐로 물은 프랑스어였는지 이해를 못했다. 다음 날 버스가 있다고? 빵집 아주머니는 고개를 흔들면서 프랑스어와 유사한 발렌시아어로 그렇다고 연신 말해주었다. 호텔을 잡아야하나 일순간의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조상이 살았던 곳으로 오늘 떠나야한다는 믿음이 파고 들었다. 그곳을 떠나 난 북동쪽을 향하여 걸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의 평지에 숨이 가뿐했다. 날은 신선하고 맑고 상쾌했다. 이제 태양이 길어지면서 하루가 저무는 저녁도 늦어져 나로서는 아주 다행이었다. 어둠이 몰려오면 그냥 나무를 헤집고 들어가 그곳에서 밤을 보내리라 생각했다. 배회하고 있는 이방인의 모습을 보는 이가 거의 없어 나도 자유롭고 편안했다. 이런 곳에서 조상이 살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펼쳐진 평지를 등지고 난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풀과 나무는 지중해성 기후에 맞게 건조하고 날카로웠다. 유럽의 여느 울창한 숲과는 다르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살아남아야했던 이 식물들은 진한 향기를 내고 있었다. 각종 허브에 취하여 올라가는데 어느 목동이 양떼를 몰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 풀과 나무가 날씨 때문에 건조하고 날카로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저 양떼들이 물어뜯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다. 내 상상은 항상 이렇다. 양들은 고개를 들지 않은채 묵묵히 서로를 압착하면서 지나갔다. 목동은 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답례를 했다. 

길이 없는 듯 보였으나 길은 있었다. 바로 양들이 지나다니는 길이었다. 숱한 돌로 이어진 계단 식 밭(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듯 하다) 사이의 돌담으로 쭉 이어진 길이었다. 고개를 들어 시야를 먼 곳으로 옮겼다. 산 전체가 이런 돌담으로 가득했다. 아까는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 그랬는데 버스 안에서 내다본 풍경도 그랬다. 돌담으로 차곡 차곡 분할된 산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 세기에 저런 돌담을 세우기에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저런 돌담을 만들어오지 않았다면 이렇듯 광대하게 여러 곳에서 펼쳐지지 않았으리라. 우리 조상이 살았던 때에도 이런 돌담이 존재했으리라 상상이 쉽게 갔다. 이 훌륭한 돌담은 중국의 만리 장성 만큼이나 신기하게 아름다웠다. 

아주 늦은 저녁임에도 밝았다. 태양이 산으로 깊숙히 들어가기 전에 밤을 지내야 할 장소를 발견해야 했다. 


나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원형의 돌집을 발견했다. 돌로 지어진 아치형의 간단한 건물이었는데 안을 살펴보니 흙바닥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누군가가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 혹은 비를 피하기 위해 세운 돌집이라고 짐작했다. 이제는 아무도 이런 곳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약간은 방치된 듯이 보였다. 난 그곳에 없는 짐을 풀고 주위를 살폈다. 저녁이라 쌀쌀한 공기가 얼굴을 따라 흐르는 땀을 적셨다. 약간은 추웠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간단하게 마을에서 산 빵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하나 둘 하늘에서는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졌다. 산 너머에 희미한 구름과 같은 공기가 불어오는 듯 했다. 저 너머에는 분명히 어떤 마을이 있을 것이다. 빛무더기가 내 볼에 와닿았다. 

옛날의 회교도들이 이 지역에서 살았다니...... 저 거대한 참나무 숲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은 살아있는 증인이지만 참견은 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존재하고 존재하는 것들을 지켜볼 뿐이다. 그들의 메세지는 어떤 경지에 들어서야만 해독이 가능할 듯 하다. 조상이 남겨놓은 이 지도는 이제는 해독을 할 이가 아무도 없다. 한 번의 나의 시도는 시도로 끝나고 그들이 남겨놓은 유산은 해독없이 저 수수께끼 속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이 수수께끼 자체도 사라져버려 그저 오래된 종이로만 존재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 종이 마저 사라져버릴 것이다. 

돌집 안에서 꿈을 꾸는 듯 잠을 자는 듯 밤을 보냈다. 동이 터오면서 다시 가지고 있던 조상의 지도를 살펴보았다.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당시의 상황과 환경을 재현한다는 것은 엄청난 한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알 수 없는 신호와 그림, 이것은 어떤 암호인데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지도 속에는 성스러운 페냐골로사 산이 표시되어 있었고 난 지금 그 쪽을 향해 가고 있다. 



산 등성을 넘자 저 먼 곳에서 솟아오른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페냐골로사 산이다. 잘못 이해하지만 않았다면 조상이 살던 곳이 이 근처이다. 주위를 빙 둘러 살펴보니 어지러운 돌담과 아몬드 나무 그리고 몇 몇의 방치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난 그 집을 향해 갔다. 집은 돌로 지어졌고 창은 아주 작았다. 문을 열려고 시도해봤으나 잠겨있었다. 아마 도시에 사는 집주인이 문을 걸어잠그고 일 년에 한 번씩 이곳에 오는 가보다. 그렇다. 시대가 바뀌면서 집에서 살던 사람들도 바뀌고 이제는 아무도 이슬람교도를 기억해내지 않을 것이다. 이 곳은 단지 스페인의 어느 농민의 집일 뿐이다. 

한참을 어슬렁 거리면서 이 집 저 집을 구경했다. 달리 할 일도 없고 내 목적지가 여기라는 생각이 들자 깊은 생각에 잠기고 싶어졌다. 해는 정오를 향해가고 있었고 난 조상의 터전에서 생각했다.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는지 내 자신에게 물었지만 아무런 울림도 없었다. 이곳에 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 모험은 단순한 호기심 풀기였고, 난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옛날 조상은 카톨릭 세력에 밀려 짐을 꾸려 다시 먼 여행을 해야만 했다. 짐도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 재산과 문화는 뒤로 남겨둬야만 했다. 아니면 그들에게 항복해야했다. 항복 후 개종하여 절실한 카톨릭이 되어야만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 후에 마녀 사냥이 생기면서 대부분의 개종자들은 모함에 빠져들어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저 시대나 이 시대나 강자는 자비롭지 않고 약자를 괴롭힌다, 지금의 국가와 단체와 기업이 그렇지 않은가. 

오후에 배가 고파져 난 손을 털고 일어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내 일상의 터전에서 삶을 느껴야할 것이다. 이곳에 온 것도 좋았지만 내 고향에서 평화롭게 삶을 사는 것은 더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평화, 그리고 살아가는 것. 내 이웃도 나와같은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길을 나서면서 어제 보았던 양치기와 다시 마주쳤다. 말없는 웃음으로 손을 들어 인사를 보냈다. 


유일하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이 스페인 사람, 이 양치기 피에도 조상의 피가 흐를까, 순간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어떤 유전인자가 확실히 존재하리라, 800년을 이 스페인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피가 섞이지 않을 수가 없겠다는 결론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럼 우리는 한 형제. 이름모를 형제여! 잘 있어요! 그리고 평화롭게 삽시다. 난 어제 들렀던 마을로 길을 떠납니다. 




요즈음 방문객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20여년의 양치기 생활로 본 결과는 지금까지 이렇다. 어느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더니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되돌아오고 있다. 내국인, 외국인 할 것없이 산 속에서 집을 수리하며 삶을 살고자 하는 히피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내 눈에는 모두 히피처럼 보인다. 그럴 듯한 생활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산구석에서 뭘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튼 저 외국인도 이곳이 흥미로웠겠지. 쓰러져가는 집을 수리해 유기적이고도 생물학적인 삶, 운운하면서 살아가고자하는 사람들이 생기니 시대도 참 신기하다. 


어쨌거나 나도 곧 이 양치기를 접으려고 한다. 오늘은 양을 일치감치 우리로 몰아넣고 바에 가 시원한 맥주나 한 잔 마셔야겠다. 내 보물을 정부 문화 보전 센터의 카탈로그에 실어넣을 수 있도록 기증하는 것 보다는 누군가가 밀매매하는 것이 훨씬 낫지. 조만간 사람이 나타나 내가 발견한 이 금화를 사겠지. 갑자기 희망이 생긴다. 아마, 이곳이었겠지? 저쪽의 돌담에서 어느날 그 무슬림의 금화를 발견한 곳이 말이다. 


양들이 지나가면서 무너진 돌담에서 흙과 먼지, 이끼로 뒤덮힌 금화를 발견한 곳이....... 비밀리에 접한 전문가에 의하면 이 금화가 옛날 무슬림이 도망가면서 숨겨놓은 보물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이 내일 당장 돌아올 줄 알고 성급히 금화를 이 돌담에 숨겨놓았다는데, 시간이 지나 어디 돌아올 수야 있었나, 이렇게 지금까지 이 돌담에 있었으니...... 어쨌거나 그들 덕에 나도 출세 한 번 하련다. 나도 근사한 집을 사 여유있게 좀 살아봐야지. 모든 것이 신나는 하루하루다. 저 외국인도 즐거워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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