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새 학년 새 학기, 아이의 정체성 찾기 중... '한국말로 말하기'
´이사 온 후 아이들은 새 학교에 만족하고 있을까?´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작은 시골 마을의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과 한 반에 있던 우리 아이들이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지... 학교도 크고, 다른 나라에서 온 다양한 다문화 아이들도 있고... 뭐든 스케일이 고산 마을과 비교할 수 없어서... 이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아주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크게 안심이 됐습니다.
심지어 쌍둥이는 지난번, 여름방학을 맞이하면서 새 친구들과 헤어지는 날에 눈물까지 보일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커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학교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 다니고 싶다고 했을까요? 하지만, 이제 새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친구들과 다른 반으로 갈라져서 아쉽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 시작, 첫째 날은 무지무지 떨리고 궁금하고... 초조합니다. 새로운 반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연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전 학년 때 같이 다니던 아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엘 갑니다.
쌍둥이는 학교에서 다른 반에 들어갈까요? 아이들은 '같은 반이 아니고, 다른 반이면 어떻게 하지?' 크게 걱정합니다.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쌍둥이는 서로가 너무 큰 의지가 되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네요. 물론, 서로 싸우는 일이 아주 잦지만 말이에요. 😂 그래도 요즘은 천천히 떨어지는 연습도 하고 있습니다. 떨어져 외출도 하고, 떨어져 각각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산드라는 중학교 4학년이 되고, 쌍둥이는 중2가 됩니다. 스페인 의무교육은 중학교 4학년까지고요, 바치예라토(Bachillerato,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거쳐 대학교에 갑니다. 고등학교에 가기 싫은 청소년은 시클로 포르마티보(Ciclo formativo, 직업학교)에 입학해 2년 과정을 배울 수 있고요, 그 과정이 끝나면 원하는 강도에 따라 4년 이상의 전문학교(Formación Profesional) 대학과정)도 갈 수도 있습니다.
일단 산드라는 올해 마지막 중학교 과정을 거칩니다. 2024 -2025년 과정이지요. 와~! 이런 날이 기어이 오고야 맙니다 😅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다니...! 산드라가 16세 되면, 스쿠터 자격증도 딸 수 있고, 원하면 파트 타임 일도 할 수 있겠지요. 독립의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요즘 산드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확고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활하기를 갈망합니다. 남들과 좀 다르다는 특별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식하는 듯해요. 예를 들면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조류활동을 하고, 요즘 음악보다 옛날 음악을 더 좋아하는 것 말이에요. 정치적으로도 소비문화는 경멸하고... (이 나이대는 토론을 좋아하고 경멸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사춘기라는 뜻이에요) 너도나도 따라 하는 대중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소수의 아이콘이 되기를 갈망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신체를 단련하는 태권도도 좋아하고... 벌써 1년 치 강습비를 끊었습니다.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지만, 강인한 신체도 좋아합니다.
이번 여름에는 더 그랬어요. 프랑스 체험활동을 위해 2주 외국에 나가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엄마에게 한국말로 말하라며 종용했습니다. 아마 지속가능한 사회의 일원 활동을 하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이 좀 특별하다는 점을 어필하는 듯 보였어요. 그게 귀여워 계속 우리 말로 대화를 했더니 무지 좋아합니다.
지난번 바다 학교에 갔을 때도 친구 앞에서 엄마랑 한국말로 대화하는 게 쫌(>.<) 귀여웠어요. 친구들에게 자신이 몇 개 국어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고, 또 뽐내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나이 또래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며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어떤 분은 한류 영향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한국어 배우기를 갈망한다고 말하시는 분이 계신데요, 그건 너무 중심적인 사고인 것 같아요. 산드라는 소수의 한류 문화를 좋아하지, BTS, 블랙핑크가 있다고 한국어를 갈망하는 건 아닙니다. 한국의 탐조나 자연이 무척 아름답잖아요? 그리고 엄마가 한국인이잖아요? 자신도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점을 사랑하지, K-드라마나 K-팝에 빠져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대중문화를 꺼려합니다. 물론 한국인인 저는 참 좋아하지만 말이에요.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점을 인정하는 건 좋습니다.
산드라가 엄마와 한국어로만 말하기로 결심했을 때 저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산드라는 어릴 때부터 우리말을 배우며, 우리말 동화책을 읽으며 컸어요. 쌍둥이가 태어나 제가 육아 활동이 어려워져 너무 이른 시기에 유아학교에 보내 한국어 말할 기회가 별로 없어 그렇지, 사실은 계속 한국말을 해왔어요. 너무 수줍어 남들 앞에서 한국어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안 하게 보인 것뿐이랍니다. (심지어 유튜브 영상에도 나오기 싫어했어요, 너무 수줍어서....)
그런데 쌍둥이는 그들만의 언어 세계가 있어, 스페인어든, 한국어든... 말을 배우지 못하는 언어 발달 장애가 있었어요. 특수 선생님 진단으로 한 언어에만 매진해야 한다고 해서 쌍둥이는 스페인어로만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실, 쌍둥이가 다니는 학교의 공식어는 발렌시아어였는데요, 아이들 언어 발달에 방해가 된다고 모든 선생님이 발렌시아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수업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완치 진단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다며 비난하기 일쑤였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어쨌거나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저는 우릴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쉬워하기 보다는 우리 쌍둥이에게 시간을 내 집중했지요.
집에서는 한국어로만 대화했고, 한글도 가르쳤죠. 발음이 어눌해 말을 잘 못하지만, 쌍둥이는 듣고 이해는 합니다. 한글도 곧잘 읽고요. 그렇게 쌍둥이들도 느리지만, 천천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알아듣는 것만해도 저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나중에 한국 가서 지낼 때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요.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한국말 제일 어눌한 사라와 누리가 사실은 제일 활발하게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걸 사 오는 모습을 보니...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언어가 안 돼도... 이 자신감이라는 게 사실은 큰 소통을 만든다는 걸 알았죠.)
어쨌거나 새 학년, 새 학기!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고집 세고, 자기 의지 강하게 변하는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모습을 보면, 이제 독립의 날이 다가오는구나... 싶습니다. 집에서 알콩달콩 즐겁게 지낼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온 가족 즐기자고 다짐해 봅니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 우리 가족 즐겁게 보내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과 행운 함께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