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자기 일생 한 번도 본 적 없었다는 스페인 폭우
스페인 발렌시아는 낮고 평평한 비옥한 지대로 유명합니다. 유럽의 채소 공급원이라고 할 정도로 채소 재배하는 밭이 큰 오르따(Horta, 발렌시아어로 텃밭, 밭이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발렌시아가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스페인 사람인 남편도 처음으로 본다는 이 폭우 피해는 역사적으로 1957년에 대홍수가 있었어요. 발렌시아를 가로지르는 투리아 강(Rio Turia)의 범람을 막기 위해 물길도 외곽으로 옮기게 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지요. 지금은 발렌시아 시내의 투리아 강은 공원으로 조성돼 있고, 다른 물길은 도시 외곽으로 빠져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강도의 대홍수가 1982년에 한 번 더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도 최소 50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의 발렌시아 대홍수는 남편의 기억에서는 생애 처음으로 체감한다고 합니다.
발렌시아는 지대가 평평해 다른 지역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양의 물로 금방 강이 범람합니다. 역대급 폭우로 1년치 내릴 비가 8시간 만에 쏟아져 정말 장난이 아니게 된 거죠. 실제로 발렌시아에 사는 우리 시댁 가족들도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우티엘(Utiel, 발렌시아 내륙 산악 지방) 쪽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갑작스럽게 불어나 물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여러 산업 지역과 주거 지역에 피해가 컸습니다. 엘 올리베랄 산업단지 등 일부 산업단지는 대피 명령이 늦게 내려져 직원들이 일터에 고립되기도 했고요, 남편 남동생은 퇴근하다 도로에 고립되어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네 개의 다리 중 세 개가 무너져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됐고, 하나는 침수되어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돼 하룻밤을 꼬박 차에서 밤을 지새워만 했답니다.
그다음 날, 서방님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시부모님 계시는 집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가족이 있는 동네는 아직도 고립 상태라고 합니다. 다리 세 개가 다 끊어졌고, 하나는 통행불가해 복구 작업을 해야 하니 말이지요. * 발렌시아 시부모님께서는 아무 피해 없이 잘 지내고 계십니다. 걱정해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 서방님이 지나 온 다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은 강물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 찍어서 보내 온 사진입니다.
▲서방님이 아침에 자신의 세컨드하우스에 가서 본 풍경입니다. 물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이미 집안은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곳에 비해 그렇게 많이 차지 않았다는 거예요. 발렌시아 피카냐 마을 친구는 1.20m의 높이로 물이 차 올라 지나가는 행인을 구조해야만 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가 사는 집이 2층이었기에 지나가는 행인의 도움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합니다.
▲ 서방님네는 안타깝게도 주차해 놓은 차도 물에 둥둥 다 떠내려 가 물이 다 빠진 후에... 거리를 돌며 찾아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족들 건강에는 이상이 없어 정말 다행입니다. 하지만, 95명의 인명 피해와 행방이 묘연해진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11월 1일 업데이트: 사망자 202명)
밤에 서방님이 오도가도 못하고 고립돼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큰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물살이 더 빨라지고 상승하면, 이 고립된 차들도 다 쓸고 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모두가 걱정 어린 마음으로 밤을 지새운 것 같습니다. 그후 서방님은 차로 집으로 들어갈 수 없어 현재 걸어서 들어가려고 합니다. 집에서 아내와 두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나 걱정이 될까요? 어서 빨리 상봉하기를 바랍니다. 🙏
우리가 사는 카스테욘 지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스페인 기상청에서는 카스테욘 지역도 홍수주의보가 내려졌고,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갑작스러운 천둥번개가 치더니 폭우가 왕창 쏟아져, 발렌시아와 마찬가지로 산악지대에서 흘러나오는 빗물이 빠르게 상승해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집 앞의 마른 하천도 지금 수면이 상승해 정말 걱정입니다. ㅠㅠ
▲ 평소엔 물 한 방울도 없던 마른 하천이 이렇게 불어났습니다. 고산지대에 살 때는 물이 빠져나가 걱정이 덜했지만, 지중해 연안 지방으로 이사 오고 난 후에는 산악지대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양의 강물에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은 해발 140m에 있어 덜할 것 같지만, 그래도 강물이 불어나면 어떻게 하나 큰 걱정입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간 아이들도 빨간색 호우주의보로 휴교가 내려져 지금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만 합니다. 앞으로 닥칠 폭우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리 집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남편도 재택근무를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요. 무사히 우리는 이 시기를 잘 견딜 수 있을까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비는 내리고 빨간 경보가 멈추지 않습니다. 방금 산똘님은 아이들 데리러 학교로 갔고요, 마트에서 마실 물과 음식을 사오려고 합니다.
이 폭우는 고타 프리아(Gota fria)라는 지중해 지방에서 갑작스럽게 형성된 한랭전선이 계속 생겨나며 비가 내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금 고타 프리아로 기온도 무척 내려갔고, 비도 끊임없이 내리고 있어요. 이번 폭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생한 폭우 중 가장 강력하다고 합니다. 지역 기상학자들은 기후 변화로 인해 더 빈번하고 강해질 것이라고 경고해 왔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 스페인 [산들랜드] 폭우 소식을 알려드렸습니다. 걱정해주시고 안부 물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블로그나 유튜브로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