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가족

갑작스러웠던 스페인 대정전, 살다 살다 이런 건 처음...

스페인 산들무지개 2025. 5. 1. 04:15
반응형

여러분~ 안녕하세요! 스페인 지중해 연안, 올리브농장에 살고 있는 산들무지개입니다. 

지난번 스페인 정전 때문에 한국 뉴스에도 나오고, 우리 가족을 걱정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제 블로그에도 다녀가셨습니다. 저도 아직 자세하게 정전의 원인이 무엇이었고, 어떤 해결점이 있는지는 모르겠고요, 지난 27일 정전 당시의 모습을 우리 일상을 통해 생생히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일단 제가 작업을 막~ 하고, 영상 편집도 하면서 하루를 본격적으로 (시동 걸고)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12시 35분 정도인가? 그즈음...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고 말았어요. 공부하던 아이들도 공부방에서 나와 "엄마, 아빠~ 전기가 나갔어요!"하고 큰 소리로 알려줬죠. 

 

"어? 두꺼비집을 봐야하나? 왜 전기가 나갔을까?" 남편은 두꺼비집이 있는 차고로 내려가 이것저것 살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누구보다도 정보가 빠른 중학생 쌍둥이 아이들이 큰 소리로 또 외쳤어요.

 

"스페인 전역에서 전기가 나갔대요!!!"

이게 무슨 소리지? 

 

 

일단 전기로 작동되는 모든 것은 멈췄고... 오직 살아있는 건 휴대폰이었습니다. 아직 5G 신호가 잡혀 재빨리 뉴스 기사를 클릭했어요. 알고 보니 스페인, 포르투갈, 남 프랑스에서 정전이 되었다는 소식이 있더라고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살다 살다 이런 정전은 처음이네~! 싶었어요. 아니, 어느 나라가 한 나라 전체에서 정전이 된단 말이야!!! 인도 여행도 해봤지만, 전체적으로 정전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너무 이상하고 또 이상했어요. 

 

먼저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사이버 공격이라는 단어가 자리잡기 시작하더라고요. 

무슨 사이버 공격일까? 혹시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긴장감이 드디어 시동 걸린 걸까? 조금 무서워졌어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기에... 그래도 여긴 현대 문명시대를 사는 곳인데 곧 전기가 들어오겠지, 싶었어요. 그러다 휴대폰 신호는 4G에서 3G로 바뀌었어요. 우리는 도시 외곽에 살고 있어 더 바깥세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멀리서 작동하는 타일 공장에서의 작동 소리는 들려왔어요. 알고 보니 카스테욘 지역의 타일 공장은 멈추면 돈이 나가는 시스템이라 항상 대체할 전력을 대비하고 있었어요. 공장의 지붕에는 태양광 전력이, 또 자가발전 전력 등이 항상 구비돼 있었던 거죠.

 

우리 가족은 다 집에서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수학여행을 간 산드라가 걱정이 되었어요. 혹시, 호텔 엘리베이터에 갇히지는 않았을까...? 혹시 버스가 주유하다 멈추지는 않았을까? 신호가 끊기기 전에 얼른 산드라에게 전화해봤어요. 

너무 다행으로 산드라는 스페인 바다 국립 공원의 한 섬에서 친구들과 함께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일정은 그 섬에서 보내는 일과였다고 하네요. 일단은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모두 안전하게 섬에서 자연관찰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어요. 

 

이사 오기 전에는 태양광과 지붕에서 받은 생활수를 사용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요, 이사 온 올리브농장에서는 전기를 사용해 모터로 물을 끌어올려 사용하는 시스템이라, 이제 전기가 끊겨 물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천만다행인 건, 전기로 작동하는 인덕션 레인지를 가스로 바꿔 요리는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

 

 

그래도 평소에 생활수랑 식수는 항상 준비해 놓는 사람들이라 며칠은 버틸 수 있는 물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수도꼭지가 달린 작은 물통에 물을 옮겨 담고 설거지 및 채소 세척을 했어요. 

 

 

얼마나 오래 걸릴까? 아직 더 기다려야 할까? 

가스레인지가 있다는 안도감에 이날은 큰 걱정 하나는 덜었습니다. 물도 많이 쓰면 안 될 것 같아 이날 점심은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었어요. 

 

마침 한국 라면 20 봉지 한 박스 샀는데, 너무 다행이었어요! 정말 좋았어요. 역시 라면은 이럴 때 있으면 든든하고 좋지요~! 이날 우리는 후루룩 쩝쩝 맛있는 라면~! 잘 끓여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산똘님은 오래 전 사용하던 라디오 하나를 어디서 찾아왔어요. 이 라디오도 건전지로 작동하는데, 맞는 건전지가 없어 이곳저곳 구석구석 살피다 하나를 드디어 찾았어요!!! 그리고 뉴스에 주파수를 맞추고, 라디오 세계에 홀릭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전기 백업(재생 에너지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전력망 안전성을 위해 가스나 수력의 백업 전원이 필요)이 잘 되지 않아 한꺼번에 계통하면 큰일 날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스페인은 전력의 약 60%가 재생에너지이고, 그 에너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다른 에너지도 공급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복구하면 한 곳 한 곳 계통해야 안전하게 전력을 다시 공급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작은 도시부터 전력을 공급하고 대도시는 가장 마지막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하더라고요.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정전 당시 약 5초 만에 15GW에 달하는 전력이 갑작스럽게 손실되면서 전력망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하더라고요. 사이버 공격의 가능성이 낮아져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백업 전력이 부족하다는 건...... 걱정이 되었어요. 

 

 

어차피 전기 쓰는 일은 못하니 이날 남편은 무화과 나무 가지치기하고, 저는 텃밭에 모종을 심었습니다. 이웃 수영 강사가 땅콩 심어보라면서 땅콩을 줬기 때문에 그걸 심으러 갔었죠. 

 

 

그리고 냉동고에 있던 음식이 다 녹지 않길 바라면서, 제일 만만한 아이스크림을 꺼내먹었습니다. ^^

 

 

그렇게 라디오 소식에 의존해 우리 가족은 이날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밤 10시부터 전기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어요. 전기 소모량이 적어지는 밤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곳은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었어요. 어차피 이날 전기는 포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촛불과 가스램프에 의존했습니다. 

 

이날 저녁에 먹은 음식... 

산똘님이 예지력이 있었는지, 정전 있기 전, 새벽에 잡은 토종닭을 이날 오전부터 푹~~~ 끓여서 맛있는 닭고기를 먹을 수 있었어요. (닭아! 미안하다)

밥과 닭고기, 인스턴트 인도 커리... 요렇게 먹었습니다. 

 

 

밤이 되어가는 저녁 풍경... 

 

우리는 밥 먹고, 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때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어요. 자다 보니 한 1시 정도에 불이 들어와 거실이 온통 밝아졌더라고요. 자다 불 끄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던 밤입니다. 그렇게 길었던 정전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산드라는 정전이라는 일상의 탈출이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말했고, 사라와 누리는 불편하지만 창작에 집중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고 말했습니다. 산똘님은 전기에 의존하지 않는 노동을 하면서 땀을 흘렸고요, 저는 인덕션이 아닌 가스레인지로 음식을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감탄을 했습니다. 이 가스레인지 사주신 친정엄마한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

 

여러분~ 여기까지 소식 드리고요, 그동안 걱정해 주시고, 안부 물어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