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웃도는 스페인 폭염 아래 집콕 생존법
요즘 뉴스에 연일 유럽의 더위가 정점에 달했다는 소식을 들어요. 진짜 장난 아니게 덥습니다. 더운 정도가 아니라 진짜 폭염입니다. 지금 남편과 아이들이 이탈리아에서 여행하고 있는데, 밖에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장난 아니게 덥습니다. 이탈리아 정부에서 조차 낮에 이동하는 걸 삼가고, 재난 수준의 경보를 내린 상태이지요.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은 오전에 잠깐, 오후 6시 즘에 본격적인 관광을 하러 나갑니다. 지리적으로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탈리아 옆의 스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너무 더워요. 마치 공기가 뜨거운 불꽃을 나르는 듯합니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한국은 후덥지근한 느낌이지만, 스페인에서는 불에 데이는 느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곳은 46도까지 육박한 곳도 있으니까요! 최근엔 48도까지 올라갔다는 기사를 봤어요.
우리가 사는 발렌시아 지방도 여름엔 온도가 43도, 44도까지 올라가는 일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ㅠㅠ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스페인 사람들은 이런 여름에 어떻게 폭염에 맞서는지, 좀 자세하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스페인 날씨가 다른 나라와 전혀 달라서 외국인이 여름에 와서 꽤 고생하는 에피소드가 있더라고요. 우리 한국인들도 스페인에서 낭패 보지 않으시려면 요런 생존법(?)을 아시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아! 여기서 잠깐! 많은 분들이 잘못 알고 계신 선입견 하나 풀고 갈게요.
▶ 스페인은 에어컨이 없다?! 정부에서 에어컨 달지 못하게 한다?!
이건 예스? 혹은 노?
이건 전제를 잘 아셔야 답이 나오는 질문입니다. 먼저 스페인 가정에서는 에어컨을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습니다. 단지, 문화재 보호 구역이나 공동 건물 구역 등 외관을 훼손할 수 있는 곳에서는 조건부 승인이 필요합니다. 가령 역사보전 지구에서는 특히 실외기를 아무 데나 달 수 없겠지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리고 공동 건물이라면 시청에서 허가서나 건물관리위원회의 승인이 있어야 달 수 있습니다. 도시 환경을 생각해 외관보다 내부 현관에 실외기를 설치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각 지방마다 조건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가정에서는 에어컨 설치, 사용이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화재 보호 구역에 사는 제 친구는 냉방기 실외기 일체형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지요.
그래서 결론은 스페인 사람들 에어컨... 사실 많이 씁니다.
특히나 도시나 남부 지방, 세비야, 말라가, 코르도바 등에서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버티는 게 불가능할 정도이지요. 40도 이상으로 항상 치닫는 곳이거든요. 카페, 슈퍼마켓, 공공기관, 버스까지도 에어컨이 빵빵합니다. 단지, 공공기관, 대형 상업 쇼핑몰, 기차역 등 공공장소에서는 실내온도를 27도 이하로 낮추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고요, 출입문도 자동으로 닫히게 설치하여 냉방 손실을 막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가정에서 에어컨 사용을 꺼리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이건 바로 전기 요금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한국과 전기요금 시스템이 완전 달라서 어디가 더 낫고 어디가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어요.
일단 한국에서는 누진세이지만, 스페인서는 시간대별 요금이 적용되고 있어요. 그래서 더 괴로울 수도 있어요. 요즘 등급도 5등급으로 나눠서... 제일 많이 사용할 시간대에는 그야말로 요금이 폭탄처리 될 때가 있거든요. 가령 오후 2시에 정점에 이르러 밤 요금의 몇십 배에 달할 수 있답니다. ㅠㅠ
스페인 전기요금은 단가 자체가 엄청나게 비싸답니다. 세계 1,2위를 다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약 6~7만원이면, 스페인은 18~20만 원으로 나올 수 있어요. 우리 집은 평소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등 남들과 똑같이 사용하지만 요금이 매달 몇십만 원으로 나옵니다. (민영화 이후 요금이 8배나 올라 다들 고생하는 중)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심야시간 밤0시에서 아침 8시까지는 요금이 일정하게 싼 값으로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페인 가정에서는 밤에 세탁기며 식기세척기 등을 돌리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 세탁기 밤이나 새벽에 돌린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또 취약계층에 한해 '전기 사회 요금' 할인이 있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괜찮다고 할 수 있어요.
어쨌거나 여름 기온이 40도가 넘는 스페인에서 냉방이 필수가 된 가정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면서 유럽인들 왜 에어컨 안 쓰냐고 하시는 분들은 이런 작은 선입견을 없애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은 스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더운 곳입니다. (제가 두 곳 다 경험해 봐서 여러분께 이렇게 장담합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뜨거운 사하라 (사막풍) 바람에 대응하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외국인들은 잘 몰라서 스페인에서 꽤 고생하고 있지요.
1. 일단 오전부터 오후까지 창의 덧문이나 셔터, 혹은 발은 다 설치하라! 집안은 무조건 어둡게 하라!
한국에선 더우면 일단 문을 활짝 열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하는 게 더위를 대하는 미덕이잖아요? 스페인은 절대 NO!입니다. 더울 땐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합니다. 뜨거운 태양볕이 여러분의 집을 뜨겁게 단 몇 시간도 안 돼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 반드시 문과 창문은 닫아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공기의 흐름은 있어야 하니까, 셔터를 내리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공기가 순환되면서 이상하게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스페인서 유행하는 밈이 있었는데, 영국인이 스페인에 놀러 왔다 너무 더워 낮에 창문을 활짝 여는 거예요. 그러자 이웃들이 소리치면서 창문을 닫으라고 하는 영상이 있었거든요! 그게... 밤 사이 서늘해진 집안의 온도를 유지하려고 낮에 이 창과 문을 다 닫는 거랍니다.
가장 뜨거울 때 집안을 꽁꽁 싸맨 후, 오후가 되어 조금 선선해지면 그때가 되어 이제 창문을 활짝 열어줍니다. 밤 사이, 차가운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와 환기가 되면 집이 서늘해지는 거죠.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 창문과 문을 꼭꼭 닫아주며 위의 일상을 되풀이합니다.
층고가 높아 그래도 시원한 우리 집...
하지만, 남동쪽 부분은 어둡게 덧문을 다 닫고 있어요. 특히 오전 해 뜰 때부터 오후 5시까지...
오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서쪽 부분의 덧문을 닫고 동쪽(상대적으로 서늘해짐) 부분은 열어둡니다.
덧문을 닫아 어두워진 풍경
덧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주 뜨겁습니다. 창을 닫아 뜨거운 공기를 막아줘요.
2. 너무 더울 땐 낮잠을 자라!
뜨거운 시간대인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는 움직임을 줄이고 집 안에서 조용히 보냅니다. 식사도 아주 천천히 길게~ 밖에 나가는 일은 삼갑니다. 큰 일이 없는 한, 다들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요. 그래서 스페인 대부분의 직장 점심시간은 2시에서 4시 정도로 길어요. 또... 한 여름인 8월에 휴가가 한 달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대엔 온 가족이 ‘시에스타’를 꼭 즐깁니다. 천장에 단 선풍기 바람 솔솔 맞으면서 꿀잠 자면 기운이 한결 살아나지요. 그런데 깊은 잠은 금물, 여기선 20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더라고요.
3. 스페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더울 땐 차가운 음식을 먹어요.
가스레인지나 오븐은 될 수 있으면 사용을 자제합니다. 이때 나는 최고의 신선한 채소 재료로 많은 샐러드 풍의 요리를 만들어 먹기도 하지요. 특히 시원한 가스파초, 토마토 샐러드, 참치 넣은 마카로니 샐러드 등 냉요리가 최고입니다! 수박, 멜론, 냉동 포도 같은 여름 과일로 엄청나게 좋지요! 요리하기 싫은 날에는 마트에 가면 위의 냉요리 품목이 냉장고에 진열돼 있어 쉽게 사 먹을 수도 있답니다.
4. 여름에 시원하게 물에 발 담그기! (스페인 사람들도 이런 습관이 있더라고요)
너무 더우면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합니다. 스페인 시아버님이 어느 여름에 큰 대양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고 계시더라고요. 속으로 오~! 그랬죠. 한국에서 등목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그런데 너무 여유 있게 대야에 한 참 발을 담그고 계셨어요. 그게 얼마나 시원해 보이던지...... 그렇게 하면 여름 더위는 진짜 어느 정도 잡히는 듯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에서도 간이 수영장을 여름마다 설치한답니다. 이런 수영장이 없다면 이건... 매일 샤워를 하거나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데, 우리 집은 에어컨 싫어하는 아이들 때문에 수영장에 몸을 담습니다. 여기서는 수영하려는 목적보다는 뜨거워진 몸을 식히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점심 먹기 전에 간단하게 수영장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더라고요. 더울 때 밥 먹으면 더 더워지니, 미리 몸을 식힌 후 점심을 먹습니다. 그리고 시에스타, 그런 후 또 간단하게 수영장에 들어가 물로 식히고... 창 활짝 열고 시원하게 집에서 오후를 보내지요.
오! 쓰다보니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제가 여기서 살면서 느낀 여름을 대하는 이곳 사람들의 방식을 한 번 글로 적어봤습니다. 유럽에 닥친 폭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지고 힘들지만, 부디 이 여름이 더 더워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앞으로 더 더워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변화될지 벌써 걱정입니다. 있는 자원으로 각 가정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이 더위를 잘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에어컨이 지구환경 변화의 주범이 될 수 있으면서도 이 더위 앞에서 다시 에어컨을 써야 한다는 이 순환이 아이러니하지만... 앞으로 인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전 방식의 삶도 함께 인용하면서 나아갔으면 합니다.
우리 가족은 위 열거한 방법으로 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에어컨 한 대 그냥 틀어놓고 지내면 더 쾌적하겠죠.
하지만 창문 여닫는 시간, 물을 활용한 자연 냉방, 열 차단 커튼이나 셔터, 차가운 음식 위주 식단, 발 담그기, 시에스타(낮잠) 등을 활용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기후에 맞춰 조용히 적응하면서 이 여름을 보내고 있답니다.
여러분~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올여름 시원한 일 많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