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가족

청소 도우미를 대하는 스페인 시어머니의 태도

산들무지개 2018. 7.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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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으로 칠순을 넘기신 스페인 시부모님들. 

평생 맞벌이로 살아오시면서 항상 집안 살림은 두 분이 분담하셨습니다. 그런데 청소할 시간이 없으셔서 매번 청소는 청소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셨다지요. 일주일에 하루, 청소 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는데요, 정년퇴직을 하신 후에도 계속 청소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시고 있습니다. 

나이 드니 예전만큼 힘이 좋지 않으시다며 청소 도우미를 고용하시는데요, 사실 집안이 정말 깨끗하답니다.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을 만큼 평소에 깨끗하게 집을 유지하고 계시지요. 일주일에 한 번 도움을 빡세게 받고 평소에는 본인께서 직접 청소를 하시니 깨끗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신기한 게 청소 도우미와 시어머니의 관계였습니다. 

제가 산후조리로 시댁에서 잠깐 지냈는데요, 청소 도우미가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제게 선물까지 해주신 적이 있답니다. 

'아니, 시급도 적을 텐데 나한테 쌍둥이 선물까지 해주시면 어떡해?' 하고 미안해했던 적이 있지요. 

일주일에 한 번 오시는데, 당연히 시급이 적었겠지요? 하지만 청소 도우미는 그런 것에 개의치않고 열심히 청소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청소 도우미가 누구인지 시어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답니다. 

"응~ 옛날 내가 직장 다닐 때부터 우리 집에서 청소하시던 아주머니의 딸이야. 그분은 이미 정년퇴직하셨고, 이제는 그 딸내미가 여기 와서 매번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 따지고 보면 30년 넘게 우리 집 청소를 해주는 거지."

한번 사회적, 인간적 관계를 맺으면 신뢰를 잃기 전까지는 정말 사람을 끝까지 믿고 가는 스페인의 인맥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어떤 신뢰 때문에 두 세대가 시어머니와 이렇게 가까이 잘 지낼까요? 그것도 갑과 을이라는 관계가 형성될 만한 부분에서 말입니다. 

이번에 아이들을 캠프 학교에 보내면서 그 실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요즘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청소 도우미나 가사 도우미의 관계는 그렇게 수평한 관계는 아니더라고요.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많은 지인이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류에 편승한 갑질 같은 분위기는 평소에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습관화된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요, 가장 특정된 부분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미안했던 부분이었죠. 

"오늘 가사도우미 부르지 않았어. 너희들이 와 있는데 어떻게 불러."

이렇게 말하는 부분이 상당했고요, "부르지 않으면 그분은 오늘 돈을 못 버네?"하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더군요. 

어떤 때는 밥 먹고 난 후, 설거지할 때 평소보다 많은 손님 때문에 설거지를 더 하게 된 가사 도우미에 미안하여 제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인은 그러라고 고용했다며 당연하게 말하더라고요. 이런 부분도 그렇고......

어떤 때는 특별상을 차려야한다고 음식을 더 만들어 달라고 하는 부분도 당연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물론, 요즘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부르면 가고, 부르지 않으면 가지 말아야 하는 분위기는 일반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가사 도우미가 그런 줄로만 알았지요. 


시댁에 온 식구가 모여 청소 도우미 부르는 일이 어려워졌어요

하지만, 스페인 시어머니와 청소 도우미의 관계는 달랐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기"라는 틀이 정형화되어 있는 그들에게 그 틀에서 벗어날 때는 타협과 신뢰로 이야기를 풀어가더라고요. 

우리가 머무는 동안 시어머니는 청소 도우미에게 전화를 걸어, 화요일에 와 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청소 도우미는 일주일 내내 할 일이 많아 오직 월요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죠. 시어머니는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고, 오라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러십니다. 

"그럼 월요일에 잠깐 와서 청소를 빨리 끝내줄래? 워낙 사람들이 많아 청소하는데 귀찮을 수도 있으니 말야." 

이렇게 타협을 봤습니다. 당연히 시급도 정상적으로 지급하셨고요.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당연히 내가 그 사람의 시간을 빌려 쓰는 처지고, 월요일만 그 시간을 쓰기로 했는데, 다른 요일로 옮기면 내 잘못이지. 혹시 내 사정으로 월요일에 오지 말라고 해도 나는 그 사람에게 같은 시급을 줘야 하는 게 당연해. 내가 사정이 되어 오지 말라고 한 것이지, 일하는 사람은 그 시간을 위해 하루라는 시간을 비워뒀는데, 그 보상을 어떻게 할거야? 일하기 싫어서 안 온 건 아니잖아? 그러니 돈을 주지 않으면 안 되지."

아~! 이게 정말 이렇게 생각하면 다르게 보이네요! 청소 도우미를 대하는 태도가 동등한 사람 대 사람으로 말이지요. 물론, 우리도 이렇게 대한다고 말하지만, 은근 을로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을 하찮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고 보니, 시어머니는 예전에도 본인 사정으로 청소 도우미를 오지 말라고 한 경우가 한두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도 꼬박꼬박 그 날에 해당하는 시급을 정상적으로 주셨다네요. 그 시간을 쓰기로 한 날이 가능하지 않을 때 청소 도우미와 타협하여 스케줄이 되는 요일로 바꾸기도 했다는데, (시어머니 본인도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별 사정이 없다면 되도록 약속한 날로만 청소 시간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신뢰가 생긴 게 아닌 겁니다. 30년도 더 넘은 인간관계에서 신뢰는 이렇듯 서로를 인정해주는 바탕에서 형성되기 때문이지요. 

* 이 글은 시어머니의 생각을 다룬 글로 모든 이가 이렇게 한다는 뜻은 아니랍니다. 시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날 손님이 없었다고 시급을 주지 않는 식당 주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일하러 오는 청소 도우미에게 집주인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정해진 날은 하나의 약속이고, 그 약속을 위해 어느 이의 시간이 다 쓰여집니다. 그래서 집주인이나 청소 도우미나 그날은 분명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여 가치를 부여하는 날이 된답니다. 식당에 손님이 없어서 아르바이트생이 일은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으나, 그 시간을 위해 투자한 자신의 시간은 결국 돈이 되기 때문에 식당 주인은 당연히 시급을 줘야 하죠.

이런 모습을 보니, 진정 다 함께 행복하게 살 방법은 다른 게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오직 서로를 인정하며 신뢰하는 바탕으로 한, 편안한 관계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믿는 청소 아주머니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쌍둥이에게 선물하는 일이 즐거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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