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자연

집 나간 칠면조는 어디에?

산들무지개 2016. 3. 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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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가지고 있는 사진도 없고 제 기억을 더듬어 우리 부부가 겪은 일련의 일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건 당일 하루 전 


이날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해발 1,200m의 스페인 고산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세찬 바람과 함께 빠른 속도로 눈이 쌓였지요. 칠면조가 도망갈 일에 대한 일면의 상상도 없던 이 날, 우리 가족은 집 안에서 맛있는 야채튀김과 생선튀김을 해먹었죠. 집 밖에는 눈이 엄청나게 쌓여 가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야생의 동물에 대한 일면의 미안함 없이 배부른 배를 두드리며 딴따라 즐겁게 눈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눈이 쌓인 추운 겨울, 야생 동물들은 갑작스러운 자연의 변화에 몸을 움츠리며 눈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고산에 사는 야생 동물들은 야생 산양, 여우, 족제비, 멧돼지, 노루, 야생 고양이, 산토끼, 박쥐, 새, 철새 등 인간의 눈에 감히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눈보라에 나는 새들도 잠시 날다 지쳐 지붕 아래에서 눈을 피할 정도였습니다.


 


사건 당일 아침 


이날 아침에는 눈이 그치고 햇살도 밝았습니다.

수제 맥주를 만드는 아마추어 남편은 이날 유독 맥주를 만들어야겠다며 자신의 장비에 불을 놓습니다. 맥주 30L를 생산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6시간 정도. 남편의 작업실은 현관 옆 작은 창고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느 정도 관찰하면서 작업할 수 있답니다. 


이날 아이들은 어김없이 눈이 왔다고 밖에 나가 눈썰매를 타며, 눈사람을 만들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럼 저는 뭘 했냐고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집 안에서 장작 난로로 토기를 구워내고 있었습니다. 토기? 원시인이 하던 방식과 같이 흙 그릇을 만들어 구워내는 실험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남편이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동기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칠면조가 기거하는 큰 돌담이 쳐진 울타리 문을 열었습니다. 눈이 왔지만 뭐 자유롭게 나가 세상을 구경하라는 뜻으로 열어뒀을까요? 

저는 이 칠면조가 밖에 나간 지도 모르고 열심히 토기를 구웠습니다. 



△ 우리는 이렇게 날 좋은 날에는 칠면조와 닭을 풀어준답니다. 날 좋은 날에는 야생 동물들도 출현하기를 두려워해 안심하고 우리 집 칠면조와 닭들은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 다닐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건 당일 오후 


우리는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동물들 먹이를 주러 갔습니다.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우리 여왕 암탉들에게 간 옥수수를 줬습니다. 암탉이 달걀을 여섯 개나 낳아줘 연신 고맙다며 칭찬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칠면조가 있는 우리에 갔습니다. 


"칠면조 어디 갔어?"


이 녀석들이 먹이 때만 되면 '구루구루구루루루~!' 하면서 무섭게 돌진해오는데 이날따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보~, 칠면조 어디 갔어?"

"아뿔싸! 아까 풀어놨는데......"

"아, 남편. 이렇게 구름 끼고 바람 세찬 날에는 동물을 풀어놓으면 안 되잖아?"

"아이고------ 아침에는 맑았는데......"


맞네요. 갑작스럽게 또 날씨가 변해버린 오후였습니다. 아니, 녀석들이 어디에 간 거지? 아무리 밖에 풀어놔도 도망간 적이 없는 녀석들이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총 네 마리의 칠면조들이 어디로 갔는지,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일단 들판이 보이는 산등성에 올랐습니다.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거야? 점점 어둠이 엄습해오는 저녁인데 빨리 칠면조 우리에 몰아넣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생각 없이 풀어놓은 남편이 야속해졌습니다. 왜? 하필 눈 온 날에 칠면조를 풀어놨냐 말이야? 


30분 정도 찾다 지쳐 다시 집에 들어와 몸을 녹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칠면조를 찾으러 갈 테니 싸우지 말고 텔레비젼 보고 있으라며 안심시키고 또 밖에 나갔습니다.


우리 부부는 양치기 아저씨가 자주 다니는 길로 향했습니다. 집 뒤쪽으로 난 길인데 산으로 오르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설마? 이곳까지 왔을리가?! 하면서 오르다 아직 녹지 않은 눈에 어수선한 칠면조의 발자국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앗~! 드디어 찾았다. 우리 부부는 칠면조를 찾아 발자국을 좇아 올라갔습니다. 



한참을 올랐을까? 바람 따라 깃털이 우리에게 날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저 깃털은? 칠면조?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칠면조의 깃털이었습니다. 



사건 현장 


우리는 대번에 칠면조가 여우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영리한 여우가 추운 겨울 먹을 것이 없으니 농가까지 내려와 풀린 칠면조를 이쪽으로 유인해 사고를 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마리의 칠면조가 이미 살점이 뜯긴 채 있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어디로 도망간 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인간의 기척을 들은 여우가 사냥한 칠면조를 먹다가 도망간 듯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그러다 또 눈에 찍힌 칠면조 발자국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방팔방 당황한 칠면조의 기운이 느껴지는 발자국이었습니다. 당연히 여우의 공격을 받고 위험에 처한 녀석들이 어디로 갈지 몰라 이리 뛰고, 저리 뛴 흔적이었겠지요. 남편은 발자국을 따라 위쪽으로 저는 다른 발자국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아마 칠면조가 놀라 도망가 어디 나무 밑이라도 들어가 숨어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아래의 덤불 속을 유심히 보면서 찾아 나섰습니다. 저녁이라 어둑어둑하여 눈에 피로가 생겼고, 거센 바람 때문에 머리도 꽁꽁 얼 정도였습니다. 재킷의 모자를 쓰면 칠면조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일부러 모자를 벗고 찾아 나섰기 때문이지요. 반경 4km를 샅샅이 찾아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 우리 집 칠면조들은 항상 그룹으로 뭉쳐 다녔습니다. 그러다 한 마리가 여우의 공격을 받고 나머지 세 마리는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디로 도망간 것일까요? 



허탈한 마음에 다시 사고가 일어난 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도 이때쯤 다시 이곳에 와 있더라고요. 


"아이고, 이렇게 잘 키운 칠면조 다른 녀석이 꿀꺽했네. 그런데 세 마리는 어딜 간 거야?"

"뭐, 할 수 없지. 이게 자연의 법칙인데......"

남편은 자연의 법칙이라며 저를 위로하는데, 저는 수긍이 안 갔습니다. 

"풀어놓지만 않으면 이런 사고가 없었을 거야. 특히 구름 끼고 바람 거센 날에는 말이야." 

"나도 알아. 그래도 야생 동물들도 배가 고픈데 어쩌라고?" 

헉?! 



△ 위의 사진은 페냐골로사 근처에 사는 여우입니다. 저도 운전하면서 한두 번 이런 여우를 본 적이 있었는데요, 참 잘 생겨서 그자리에서 반해버리고 말았던 녀석입니다. 사진은 www.begv.gva.es에서 발췌했습니다. 


남편은 살점이 뜯겨나간 칠면조를 들고 옵니다. 

"남편, 그건 뭐하려고 가져와?"

"잘 키운 칠면조 여우가 먹다 남긴 것 먹으려고......"

에이, 설마? 

"왜? 어때서? 요 반쪽은 멀쩡한 게 괜찮아."


시골 살면서 남편이 이러는 행동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어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다 저는 양이 다니는 길 돌담길 반대편의 희미한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어? 내가 눈이 흐려 그런데 남편, 저거 무슨 발자국 아니야?"


아! 칠면조 발자국이었습니다. 이 발자국은 집으로 향하는 발자국이었지요. 그래서 발자국을 좇아 우리는 다시 칠면조를 찾으러 갔습니다. 돌담을 따라 쭉 집으로 향하다 어느 선에선 이웃의 과실수밭의 철창 울타리에 걸려 옆으로 또 발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어떤 녀석이 여우의 공격에서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아 집으로 오려고 했나 봐요. 그러다 철창에 걸려 집으로 못 오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운이 좋게 눈이 있어 발자국을 따라갔더니 커다란 참나무 아래에서 칠면조 세 마리가 나란히 숨어 있었습니다. 


"아! 녀석들 반갑다."

한 마리라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세 마리가 다 있다니......! 

"아마도 여우 공격을 받은 녀석들이 놀라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가 시간이 좀 지나 서로를 부른 것 같아. 그래서 같이 만나서 집으로 돌아왔나 봐." 

남편이 이런 소릴 하네요. 


아! 반갑다. 우리는 녀석들을 나무 아래에서 몰아내고 집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구루구루구루루루~!"

녀석들은 이런 소릴 내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 칠면조는 언제 사고를 당했는지, 기억을 모조리 잊은 듯이 정신없이 모이를 쪼아 먹기 시작했답니다. 



사건 이후


사고를 당한 칠면조 본인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아주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기억력이 없는 것일까요? 동료의 끔찍한 사고 현장을 경험하고도 저렇게 태평할 수 있는 동물들이 그저 놀라운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 지혜를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인지...... 나쁜 것은 금방 잊는 것이 상책이야...... 하는 듯 '구루구루구루루루~!'하고 또 요란을 떨고 있습니다. 


남편은 여우가 먹고 남긴 칠면조 반 마리를 가져와 열심히 깃털을 뽑고 있습니다. 


"칠면조에게 미안하잖아. 이 칠면조는 우리 집에서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다 간 놈이야. 그런 놈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이렇게 잘 먹어줘야 해."




△ 옛날에는 비서까지 갖춘 유능한 산업 디자이너였던 남편, 도시에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정신없이 일만 했다는 이 남자는 어느새 시골에서 사는 법을 터득하여 힘든 일도 마다치 않습니다. 


보통 인간이 먹고 남은 음식을 동물이 먹는데, 어찌 이곳에서는 동물이 먹고 남긴 한쪽을 먹게 되는 진풍경을 경험하게 되는군요. 아무튼, 칠면조 고기에는 멀쩡한 살점이 있어 먹는 데에는 이상이 없을 듯합니다. 물론 여우가 먹은 부분은 빼고 말이지요. 여우와 우리 참나무집 식구 1 : 1로 반 땡 한 날이네요. 



△ 세 딸들에게도 여우와 칠면조 사건을 상세하게 말해주는 아빠입니다. 그리고 남은 부분도 우리가 먹겠다고 이해시켜주는 남편입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먹는 고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칠면조는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다 간 칠면조야. 시장에 파는 녀석들은 닭장에서 햇살도 못 보고 평생 산 놈들이 많으니 우리는 행복하게 이 칠면조를 먹어줘야 해. 너는 햄버거 좋아하는데 어떤 돼지들은 공장에서 꽉 막힌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평생 살았어. 그러니까 이 칠면조가 더 좋은 거야. 왜냐고? 아까 얘기했듯이 행복하게 우리랑 살다 갔으니 말이야. 알았지?"


아이들은 알았는지 몰랐는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 이 이야기 구구절절 설명하려니 꽤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여러분도 읽는데 힘드셨나요? ^^

아무쪼록 생각을 바꾸면 세상도 달라 보이는 이야기라고 믿고 싶습니다. 도시에 살던 우리 부부도 이런 시골의 참모습은 상상도 못한 채,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어디서 오고, 어떻게 사육되는지도 모르며 살았답니다. 그러다 시골 삶이 한 번은 양심이 깨어 살아보라고 각종 이벤트를 마련해주며 색다른 경험을 하게 도와주고 있네요. 오늘은 칠면조로 하여, 겨울의 배고픈 야생 동물을 생각하게 했고, 우리가 먹는 고기에 대해 생각하게 했네요. ^^*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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