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쌍둥이 아이들이 아직 아기였던 시기입니다. 우리 집 식구는 오랜만의 외출을 시도했답니다. 근처 사리온(Sarion) 이라는 마을의 국제 트러플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죠. 스페인의 비스타베야는 트러플의 생산지이므로 저에게도 이 새로운 음식 재료는 호기심으로 다가왔답니다. 오늘 트러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길 위에서 만난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식구가 어떤 식당에서 차별을 받아 떠오른 이야기이랍니다.
다름이 아니라, 점심시간 무렵이었답니다.
우린 한적하고 넓어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그곳에 들렸습니다. 그러자 그곳의 직원이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몇 명이세요?"
"우린 총 다섯 명인데, 아마도 두 명 반, 그러니까 우리 부부와 큰딸이 점심을 먹을 것 같은데요."
직원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얼핏 어리더니,
"죄송합니다. 테이블이 없습니다. 다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뭣이라? 지금 뻥(거짓말)을 치고 있는 소리 아닌가, 이렇게 큰 식당에서 평일에 무슨 예약? 테이블은 다 비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하긴 우리가 간 시간이 이른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소리도 없이 돌아서 나왔죠. 일단 쌍둥이 아기들에게 밥을 주기 위해 그 식당 앞의 슈퍼마켓에서 우린 이유식과 샌드위치를 사와 우적우적 씹으면서 점심을 그렇게 때웠답니다.
그 식당을 유심히 쬐려 보면서...... 그런데 예약은 정말 뻥... 거짓이었던 것이죠.
"어휴! 정말 가서 한 방 말해주고 싶네! 한국 같았으면 이 식당, 장사 내일 당장 끝난다!"
스페인 남편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군요. 그만큼 우리가 한국 갔을 때 느꼈던 그 서비스 정신과 특히, 아이 있는 사람이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시설들이 있어 좋았음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딩동!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에서 매료되었던 그 유아를 위한 식당 편의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본 한국은 아이가 있었을 때와 없었을 때가 또 유난히 달랐습니다. 게다가 아이가 조금 컸을 때는 또 달랐고요. 아이를 데리고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식사하는 것이 참 여러모로 어디를 가나 힘든데요. 특히 이런 음식을 먹는 식당에서의 편의가 없으면 여행은 불편, 그 자체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도 먹는 것 하나는 편하게 먹어야 즐거운데 말이죠. 편안한 환경에서 즐겁게 위를 채우는 것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다.... 좋은 것입니다.
스페인에서(혹은 유럽에서) 느껴보지 못한 한국에서의 식당 경험은 말이죠.
"아이고...! 식사하세요! 아이는 제가 봐 드릴게요..."
하시며 식당 아주머니들은 이 아이 엄마를 위해 이런 수고를 마다치 않습니다. 참 놀라운 광경이죠. 유럽에서는 이런 정서가 없어 어디 남의 아이 함부로 봐준다고 했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아이가 다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함)?, 어디 이런 수고를 왜 내가 해야 해?, 돈을 주면 아이 봐주지...., 라는 개인 주의적 사고관으로 절대로 한국처럼 아이를 봐준다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을 헬조선이라면서 아이 둔 엄마를 맘충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곳은 노키즈존(어린이 출입 금지 구역)도 생겨나며,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 거부하는 곳이 한두 곳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하던 작년에도 저는 이런 어린아이 홀대 문화를 접해보지 못했답니다. 아직 한국은 아이들과 식당에 가 식사하기에 험악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앉아서 갈비를 뜯거나 누워 잠을 자고 있습니다.
식당 주인장께서 손수 방석을 깔아주시는 정겨운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요즘 한국인들은 이런 아이들 모습을 보고 민폐라고 많이 손가락질합니다.
그런데 아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큰 배려라고 봅니다.
한국 식당에서는 웬만하면 아이들 의자가 있었습니다. 여기 유럽에서는 이런 면으로는 한국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온돌로 된 식당도 많아 아이가 편안히 앉아 기어 다닐 수도 있고 놀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 점에 스페인 남편은 우리 집에 온 것처럼 식당에서 편안하게 있었답니다. 식당뿐만 아니라 대형 마트에 가도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요람과 전자렌지, 물 등의 시설이 있어 참 충격적으로 좋았답니다. 스페인에도 이런 시설물이 대형 마트에 있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만 설치되어있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공공 물건을 자주 파손하거나 훔쳐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고 스페인이 모든 면에서 뒤진다는 뜻은 전혀 아니랍니다. 오히려 교통편에서 여행하기에는 더 수월한 곳이 한국보다는 스페인이랍니다. 오해하지 마시고요, 여기선 식당 편의만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작년에 갔던 한국에서 식사할 때마다 우리 가족은 작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좀 크니 더 수월할 수도 있으나, 식당 사람들은 주문한 양과 관계없이
아이들에게 앞 접시도 갔다 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맘충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저는 카페테리아 가는 것도 두려웠던 때였죠.
하도 더운 날이라 아이들과 저 이렇게 들어가 커피와 스무디를 시켰는데......
직원이 스무디 한 잔을 저렇게, 세 개의 작은 잔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런 소소한 것 하나하나가 감동이었습니다.
한잔은 너무 크니, 작은 잔으로 나누어주는 이런 소소한 배려 자체가 말이지요.
최고의 정점에 다다른 우리가 매료된 식당은 바로 아기 침대가 있는 식당이었답니다.
아이가 12개월 미만이었던 때, 우린 매번 밥 먹는 시간과 아기 잠자는 시간이 겹쳐 곤혹스러웠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온돌이 있는 한식집으로 하자, 라고 통일을 봤었는데요.... 우리와 동행했던 친구는
"아니야, 오랜만에 이태리 음식 먹으러 가자!" 였으니......
친구가 좋아하는 이태리 레스토랑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전 초보 엄마였으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는지요. 친구는 스페인에서 온 남편을 위해 자국 음식과 비슷한 이태리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던 것이죠... 어... 그래, 가보자.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겠어요? 우리 부부는 눈치를 보면서 친구를 따라나섰답니다.
그런데 도착한 곳에서 아직 어리던 우리 산들 양이 그냥 잠들어버렸습니다. 그때 불편하게 아기를 안고 의자에서 밥 먹을 생각하니 땀이 삐질삐질 나오더라구요. 우리를 본 직원이 다가와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하고 데려간 곳은... 아주 조용하고 널찍한 방이었답니다. 그리고 한참 후 한 명의 직원이 커다란 바퀴 달린 아기 침대를 끌고 이쪽으로 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남편과 전 눈이 크게 뜨이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답니다. 세상에! 아기 침대가 식당에 있다니! 이 아이디어가 참 기가 막히게 좋았답니다. 소수를 위한 이 커다란 배려가 얼마나 고맙던지요......(아이 없는 분들은 잘 모르실 거에요.) 작년에 한국 들렸을 때 우리는 이 식당에 또 들려 추억에 잠겨 잠시, 갓난아이 둔 부부를 보면서 이 일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현장입니다.
마치 집처럼 테이블 뒤로 아기 침대가 있습니다.
엄마가 편안히 아기를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아기는 새근새근 좋은 환경에서 다리 쭉 뻗고 잠을 자는군요.
외국에 살다 가끔 한국에 방문하면 우리 부부는 이런 한국의 친절함과 배려가 얼마나 놀랍고 좋은지 여러분들은 상상을 못 하실 겁니다. 우리나라의 이런 서비스와 배려의 정신은 남편에게도 크게 감동을 주었나봅니다. 그 이후로 어디를 가나 이런 풍경의 한국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모습을 종종 보았거든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한국의 서비스 문화가 으례 당연하다, 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요, 절대 당연한 것 아닙니다. 이것은 남을 위한 배려에서 오는 한 차원 높은 서비스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한국을 사랑할 이유 하나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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