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수다

해외생활 중 인종차별이라고 우겼던 나의 경험담

산들무지개 2016. 10. 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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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엉뚱하게 인종차별이라고 오해했던 부분들




요즘 온라인상의 많은 해외 여행자와 이민자들의 코멘트를 보면 인종차별에 대한 부분이 상당히 뜨겁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순전히 오해로 온 경우도 있고, 소통의 부족으로 생겨난 것도 있습니다. 

저도 정착 초기에 그런 경우를 많이 겪었답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소소한 작은 것들이 소통의 부족에서 오는 오해와 엮여서 상당한 스트레스였습니다. 심각한 부분도 있었고, 웃지 못할 우발사건으로 끝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오늘 다섯 가지로 나누어볼게요, 좀 길더라도 인내심 갖고 읽어주시면 아주 감사하겠습니다!



① 거리에서 모르는 이들이 나에게 큰소리로 외쳐댔어요


스페인에서 정착 초기에 경험한 풍경인데요, 지금은 뭐 다 그러려니 면역이 되었습니다. 


글쎄 거리를 홀로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치나!(china)" 하고 외쳐댔어요. 처음엔 엄청나게 기분이 나빴지 뭡니까? 날 언제 봤다고 중국인이라고 외치는지.... 게다가 "구아빠(guapa)" 하고 외칠 때면 화가 날 지경이었어요. '예쁜 여자'라고 하는데, 절 조롱하여 외치는 소리 같았어요. 마치 인종차별적인 이런 단어에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중국인'은 호기심의 발로에서 한 소리였고요, '구아빠'는 모든 여성이 한 번쯤 듣는 소리였습니다. 난 내가 동양인이라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는데, 내 스페인, 독일 여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겪는 일이었더라구요. 산똘님에겐 집시 아줌마들이 '안다미오(andamio, 공사장에 설치되어있는 안전대? 키 크고 마른 산똘님을 뼈대만 있는 그 공사장 안전대라고 일컬은 말)'라고 놀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비스타베야에 정착할 때도 할머니들이 '치나'라고 해서 '꼬레아나'라고 항상 말씀해드려야 했답니다.



봄보네스(초콜릿, 예쁜 여자를 가리킨 말)가 

햇살 아래 녹기 전에, 예쁜 아가씨!

그늘로 다니세요! 


너무 예뻐서 녹아버릴 것 같은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던지는 말!

www.garuyo.com



그래서 거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이런 소리를 하면 이제는 웃음이 나기만 하답니다. 혹시 "치니따, 치나, 치니또, 치나" 해서 기분이 나쁘다면 다가가, "난 중국인 아닌데요, 어쩔래요?" 하고 말을 걸어보세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할 겁니다.



② 면접시험에서 날 떨어뜨렸어요



한 번은 공공 기관에서 일할 1년 계약직 면접을 보게 되었어요. 모두 제가 합격할 것이라면서 장담을 했었는데요, 결과는 사회 미경험생인 남자가 합격한 것입니다. 제가 경력이나 학력에서 우세했는데 이럴 수는 없죠. 너무 억울하여 이것은 인종차별이라고 화를 냈어요. 

인터뷰했던 사람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지요. 
그 사람들 찾아 고발하려고 했는데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이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엔츄페(enchufe, 스페인에서 친구 사이에 연결해주는 부조리한 사회망)라는 거야. 만약 네 자리에 스페인 사람이 있었더라도 요 엔츄페 때문에 합격하지 않았을 거야."



Enchufe는 플러그라는 뜻의 스페인어인데요, 

가끔 이렇게 다른 이를 우선으로 연결해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스페인식 혈연, 지연을 일컫는 말입니다. 

www.chamato.blogspot.com



오.... 그런 거군요. 맞아요. 제가 인종차별이라고 굳혀 생각한 것은 이곳의 '혈연, 지연'의 문제였답니다. 결국, 그 남성은 경험 부족으로 한 달 만에 해고되었지요. 스페인에서는 엔츄페가 아주 많아요. 좋은 친구를 두면 친구 사이에 우선권을 주는 경우를 많이 받습니다. ㅠㅠ  



③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것을 인종차별이라고 봤어요


공공장소에서 이름 부르지 않고 '세뇨라'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병원에서도 대기자를 호출할 때 버벅거리는 간호사도 있고요 

이것은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환경과 당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지요!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게? 



얼굴을 요렇다고 인종차별이라고요?

가끔은 문화적 요소로 보기도 한답니다. 

제 체코 친구도 가끔 손으로 눈 찢어지는 흉내를 내는데, 

절 보고 하는 인종차별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다르다는 표현 방법으로 말합니다. 

www.cuentocuentos.net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한국식 이름 철자를 다른 식으로 발음해서 전혀 다른 이름이 된답니다. 예를 들면 hyunjea(현제)라는 이름을 이곳에서 '이운헤아'라는 발음으로 읽게 돼요. 그러니 이 이름을 부르는 스페인 사람은 자신이 틀릴까 봐 엄청나게 부끄러워합니다. 이곳 사람들 다른 나라에서 온 이의 이름 부르기를 아주 부끄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답니다. 그러니, 스페인에서 자기 이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다고 '인종차별'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답니다. 그래서 스페인에 사는 외국인들은 "스페인식 이름"으로, 혹은 부르기 쉬운 "성"으로 자신을 명명하기도 합니다. ^^ 



④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던져 당황했어요


한번은 산똘님과 만나기로 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날라온 끈적한 액체에 엄청나게 놀랐어요. 후끈한 여름에 이런 기분 나쁜 물주머니에, 순간, 누군가가 동양인인 나를 겨냥하여 던졌구나, 싶었어요. 


너무 화가 치밀어 주위를 유심히 봤더니, 아무도 절 유심히 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한 무리의 청년이 공을 차며 즐기고 있었는데, 전 그 그룹인 줄 알았어요. 나에게 물세례를 하고 모른 척하는구나, 생각했지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어요. 저 청년들, 인종차별주의자들이야! 투덜투덜하면서 뒤통수에 떨어진 액체를 어떻게 하나? 생각했지요. 


그 순간 산똘님이 도착하여, 하소연했더니, 
"하하하! 그래, 니 머리에 세례 퍼부은 놈, 가만두지 말자. 그냥 잡아서 다리를 콕 비틀어버리자! 자! 저 비둘기를 잡자. 쟤가 니 머리에 똥 세례를 퍼부었잖아!" 



'인간에게 똥 세례 퍼붓는 법' 공부하는 새

www.chistosos.com.mx



악? 뭐라고? 비둘기 똥?! 


하하하! 여러분이 짐작하셨듯이 제가 비둘기똥 세례를 맞고 엉뚱한 이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속으로 화를 막 퍼부었네요. 정말 장자의 배처럼 누군가가 강을 건널 때 자신을 밀어 화를 내면서 봤더니, 빈 배였더라, 하던 문구가 생각나더군요. 



⑤ 임신한 나에게 간호사가 화를 냈어요


둘째 쌍둥이 임신으로 진료받을 때의 일이에요. 제 차례가 되었는데 간호사가 절 보고 뒤쪽으로 가서 기다리라는 거에요. 아니, 방금 온 사람한테, 게다가 지금 제 차례라고 명백히 명단에 있었는데도, 간호사는 저보고 뒤로 가 기다리라는 거에요. 


뭐야? 인종 차별하는 거야? 


제 차례라고 기다릴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간호사가 화를 막 내면서 방금 진료받고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또 왔느냐고 큰소리를 치는 거예요. 


"아니, 전 지금 막 왔거들랑요, 혹시 다른 이와 혼동하는 것 아닌가요?"


그랬더니 간호사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오, 미안해요. 방금 동양인이 진찰받고 나갔는데 제가 분간을 잘~ 못 했어요."

"아니, 괜찮아요. 저도 스페인 사람과 러시아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라고 받아서 대답했죠. 그제야, 오해가 풀려 같이 웃을 수 있었답니다. 



스페인과 러시아는 참 멀고도 먼 나라인데,

아무 상관 없는 이들이라, 서로를 닮았다고 하면 놀라지요. 

위의 사진↑스페인에서 ´러시아 산(몬타냐 루사, montaña rusa)'이라고 불리는 놀이기구입니다. 

그만큼 러시아는 산 넘고 산 너머에 있는 먼 나라? 



화내던 간호사가 이렇게도 얼굴 표정을 바꾸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답니다. 만약 간호사에게 말하지 않고 계속 저쪽에서 기다렸다면 정말 억울했을 것 같네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속으로 삭이지 말고, 정면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해결책이구나, 생각했지요. 실제로 스페인에서는 표현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자신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답니다. 



이런 부분이었는데, 만약 제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런 오해는 지금까지 나쁘게 남아 있을 거라고 봐요. 인종차별이라고 쉽게 박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사인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소소한 것들도 문제를 해결하면 절대 "인종차별"이라고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봐요. 생각을 어떻게 하고, 어떤 관점에서 해결하느냐에 따라, 어떤 대화로 어떻게 풀어나갈까, 혹 인종차별이라고 오해했던 부분을 자신의 노력으로 풀어본 적은 있는가, 혹 저 사람이 그랬다면 저 사람과 말을 해 본 적은 없었는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결국 이런 문제들은 다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뭐 어떤 것은 말로도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말이죠. 인간이 사는 세상, 편견을 버리기 위해선 언제나 대화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간격을 좁히기 위해선 이해하려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요.)



제가 대화의 창을 열지 않았다면 정말 이곳은 '인종차별주의자'만 사는 곳이라는 선입견에 휩싸여있을 겁니다. 그런데 조금만 다시 보고, 이들의 문화를 생각한다면 이것도 하나의 오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답니다. 



We are the world~!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저는 감기에 골골거리면서 일 복 넘치게 원고를 쓰고, 아이들 학교 교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도자기 교실에서 이론 수업도 하거든요. ^^* 


여러분도 추워지는 이 계절, 항상 건강 유의하세요. 에에취~!!!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으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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