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외국에 산지 여러 해.
여행하건, 현지에 적응해 살건, 많은 부분 한국의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 잊히기 마련입니다. 문화와 생활 습관 등이 전혀 다른 나라에서 살다 보니 정말 잊히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답니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이들은 한 해가 오고, 한 해가 가는 자기 반성적인 날들에 대해선 거의 비슷한가 봅니다. 올해 나는 만족할 만한 일을 했던가, 이웃과 친구, 가족과는 어떻게 지냈는가, 다음 해에는 어떻게 또 보내고 싶은가에 대한 자기반성과 소망 등은 어디를 가나 세계인들의 공통된 마음인가 봅니다.
이번에 저는 스페인 현지인들과 송년회를 했습니다. 물론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 사회 구성원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발 1,200m의 작은 마을, 비스타베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하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비스타베야에 들어와 살면서 특별한 송년회를 갖게 되었답니다.
스페인에서는 '송년회'라는 거창한 타이틀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식사(La cena de fin de año)'라는 단어로 보통 모임을 하더라고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적 그룹에 따라 보통 한두 번 이상의 만남을 가집니다.
항상 외국인, 이방인으로만 느끼던 내가 현지의 한 구성원이라 느낀 저녁 식사
비스타베야에 들어와 살던 첫해, 마을 이웃이 이런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마을 회관에서 누군가가 양을 잡아 저녁 식사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모르고 갔던 그곳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와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들 새로운 정착민을 환영한다는 듯 얼마나 반기던지요! 마치 마을 사람이 된 걸 축하해~! 하는 듯했지요.
알고 보니, 그것이 이 마을 전통의 송년회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친분을 나누는 전통이었습니다.
▲ 위의 사진은 마을 회관에서 온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랍니다.
역시, 스페인 사람들은 아직도 연대의식을 간직(?)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답니다.
이번에도 저는 마을 여성들 모임 송년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 마을 여성 30여 명이 모여 같은 취지로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모임을 가졌답니다.
오랜만에 집에서 해방되어 놀러(?) 가는 엄마에게 해방되었는지, 남편과 딸 셋은 벌써 신났습니다.
이렇게 남편과 딸내미들은 바게트를 반으로 갈라 치즈를 얹어 피자 빵을 만들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탁이 아닌 다락방에서 '영화'를 보면서 식사할 기회가 있으니
아이들은 얼마나 신났어요?
빨리 엄마는 엄마 친구들한테 가라고 떠밉니다.
평소보다는 특별한 음식이 나오는 저녁 식사
스페인의 12월은 바(Bar)나 음식점 등 굉장히 바쁜 시기입니다. 특별 메뉴가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회사 모임에서부터 가족, 친구들 모임까지 대부분 모임을 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작은 비스타베야 마을에서도 특별 메뉴가 등장했답니다. 제가 동네 여성들과 수다 떨다 보니 많이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한 번 보여드릴게요.
밤늦게 저녁 식사가 있었습니다.
오후 9:30분.
안개도 끼고 졸려 밖에 나가기 꽤 힘들었지요.
성당 앞에는 커다란 성탄절 트리가 있었고,
그 앞에는 모임이 있는 다우(Dau) 식당입니다.
빵과 마늘 소스, 토마토소스가 기본으로 나왔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하몬(jamón, 스페인식 생햄)이 등장했습니다.
치즈와 달곰한 아몬드, 배 쨈 등이 올려져 있었어요.
맛있는 오래 발효된 꾸라도 치즈엔 트러플을 갈아 올려놓았네요.
튀김인데 바삭하니 참 맛있었어요.
속에는 새우를 듬성듬성 잘라 넣어 육즙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갑오징어 마늘 파슬리 볶음
베샤멜과 버섯의 신비로운 조화로 오븐에서 나온 카넬로니입니다.
속에는 다진 양고기가 양념과 잘 어울려 흠칫 큰 풍미를 자아내더군요.
그리고 주문한 오리다리 오븐 구이입니다.
오래 얕은 불에서 구워내어 아주 부드러웠답니다.
후식으로는 다양한 케이크와 크레마 까딸란 등이 나왔네요.
물론 커피나 차가 마지막을 장식했답니다.
이 모든 요리는 식당에서 특별히 12월 모임을 위해 선정한 메뉴랍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 먹어서 저는 참 좋았답니다. 물론 마을 이웃 여성들과 신나는 수다도 떨어 참 좋았지요.
내 옆자리에 할머니가.
마을에서 오가며 인사 나눈 이웃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이들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어 참 좋았네요. 사람도 대화하면서 서로 관계를 가져야 그 온정이 두터워진다고 또 깨달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여성 모임이라고 해도 저는 젊은이들만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송년회 저녁 식사에 무슨 나이 차이가 있겠어요? 게다가 여성이면 그만 아닌가요?
이번에도 제가 크게 깨달은 게 있다면 할머니도 여성이라는 사실.
나이가 많다고 무시하고 소외시키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
나도 나이가 든다는 사실.
여성이 늙는다고 그 세계가 사라진다는 건 아니라는 사실.
이 마을 할머니 여러 분들이 참석하셨다는 사실에 참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제 옆에 앉으셨던 할머니와 아주 깊은 대화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제 동영상에서 춤추고 계신 할머니 모습을 본 아드님이 그러셨다네요.
"엄마! 한국에서 뭐 하고 있어?"
"난 한국에 간 적도 없는데, 아들내미가 그러네. 난 한국 사람이 내 모습 보는 게 좋다고 말했어."
하시고 말입니다.
평소 저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미처 인사드리지 못해 오늘에서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말이지요.
90을 바라보고 계신데도 정정하십니다.
▲ 비스타베야 여성들 모습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주로 했지요. 술을 마시지도 않고(한두 잔은 식사용) 밤 12시 30분까지 이어진 식사. 정말 대단합니다. 덕분에 일상에서 일탈(?)하는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안개가 무척 자욱하여 시속 15Km 속도로 집에 돌아온 것 같네요. 안개의 묘한 기분 덕분이었는지, 스페인 이웃들과의 만남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참 특별했던 송년회였습니다. 항상 저를 품어주는 이곳 사람들의 분위기에 취했던 특별한 송년회였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연말 되세요.
12월의 마지막 날들, 활기차고 즐겁게 보내세요~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으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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