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부부

남편이 측은하게 느껴졌던 밤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6. 12. 30.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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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페인 국제결혼 13년 차인 우리 부부는 이제 남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로 닮았습니다. 진짜 신기하죠? 서로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다른 문화를 가진 두 사람이, 이렇게 마음이 맞아 살고 있다는 게 가만 생각해보니 참 신기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 친구들도 자주 물어봅니다. 스페인 사람하고 사는 게 어떠니? 남편에게는 한국 여자하고 사는 게 어떠니? 하고 물어보지요. 


"나는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내 아내가 내 마음과 가장 잘 통하여 아주 잘살고 있다."고 남편은 말합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라고 강조하면서 말이지요. 그 속에는 세상의 어떤 스페인 사람보다 제가 더 마음이 잘 통한다는 말뜻이 있는 거지요. 결국은 사람은 국가, 인종을 떠나 마음이 맞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어찌 되었건, 며칠 전 밤에는 남편이 참 측은하게 여겨졌습니다. 


신혼 초부터 남편은 자다 말고, 꿈을 꾸거나 희한하게도 옆 사람을 못 알아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넌 누구냐?!"


옆에서 고이자고 있던 저에게 한 번은 크게 물어봐 제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죠. 


"자다 깼더니 내가 누구인 줄 모르겠더라. 그래서 물어본 거야. 다른 뜻은 없었어."

그때도 그랬지요. 


이번에도 아이들과 독립하여 우리 방에서 자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천장에 난 창으로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웃었지요. 또 시작이라고. 


"내가 말이야. 꿈을 꾸고 있었어. 어딘지도 모르고,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웬 빛이 보이더라고요. 내 머리 위에 창이 있었어. 그래서 그 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 정말 자다 일어나서 내가 어디 있었는지 전혀 짐작이 안 갔어."


처음 이 소릴 들었을 때는 하하하! 막 웃었습니다. 자다 말고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창문을 열고 나가다가 비로소 여기가 우리 집인 줄 알고 다시 문을 닫고 이불 덮고 잤어." 그럽니다. 


아이고, 정말 꿈은 못 말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러네요. 


"정말 이상한 기분이야.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왜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 심정 말이야. 정말 끔찍하더라고. 아마 치매에 걸리면 이런 기분이겠지?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이럴 거야. 20년 동안 이 병에 걸렸던 우리 할머니 기분을 알 것 같아.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 여기에 왜 있는지도 생각지도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그 기분 말이야."


그리곤 남편이 제 손을 꼭 잡네요. 마치, 내가 당신도 잊었어~ 잊은 것 자체가 이렇게 끔찍하네, 잊지 않길 위해서도 손을 꼭 잡는 그 느낌요. 


"그래, 우리도 늙어가고 있네."


남편이 은근히 걱정하고 있는 그 모습이 그냥 많이 측은하게 전해졌습니다. 이게 늙어가는 부부 모습일까요? 


그런 남편이 우리 네 모녀만 시댁에 두고 일하러 갔습니다. 덕분에 시댁에서 도시체험에 나서 아주 신나는 날들을 맞고 있네요. 딸바보 남편이 혼자 집에서, 혼자 잠자며 있으니 아주 심심했나 봐요. 매일매일 전화입니다. ^^*



큰딸이 인라인스케이트를 아주 잘 타는 모습을 보고 

눈에서 꿀 떨어지는 아빠입니다. 



작은 아이들을 위해 이제 몸소 훈련 시키면서 도시 체험을 시킵니다. 


산똘님 할머니는 거의 20년을 넘게 알츠하이머 병을 앓으셨는데 점점 기억을 잃고, 또 점점 몸까지 기능을 잊어 많은 세월 고생하셨답니다. 그래서 가끔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기도 한답니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옆에 손 꼭 잡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안도가 되는 듯 남편은 오늘도 제 손을 꼭 잡네요. 


지금 이 순간, 행복이란 무엇인가, 세 딸과 아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게 최고라고 합니다. 지금 이생을 사는 순간순간이 일 초 후에는 지나갈 생이니 말입니다. ^^*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조만간 많은 이야기보따리 풀어놓겠습니다. 

지금은 아이들 방학이라 최선을 다해 도시 체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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