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해발 1,200m의 스페인 고산평야, 우리의 [참나무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명씩 아프기 시작합니다. 바람은 거세고 춥고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던 아이들은 도시에서 가져온 세균성 감염 감기에 걸렸는지 매일 기침과 콧물을 동반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둘째가, 다음에는 셋째, 그리고 첫째 아이까지......
밤마다 아이들 옆에서 챙겨주며 자는 나라는 존재도 지금 기침에 골골대고 있답니다. 어떻게 이렇게 거칠게 기침이 연속적으로 나올까요?! 아이들 옆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 참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하는 현실이 지금 제 현실이랍니다. 그런데 남편이라는 사람도......! 지금 아이들보다 더 아프답니다. 병가까지 낼 정도이니 말이지요. 남편은 아프지 말아야지~! 속으로 화를 내도 소용없습니다. 남편도 사람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며, 아플 권리가 있으니 말이지요. 하하하! 누군가가 그랬던가. 아들이 아프면 오구오구~ 하면서 챙겨주는데, 남편이 아프면 구박한다고요. 저는 구박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아프게 됐어? 하면서 원더우먼이 되어 아이들 셋과 남편 다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아들이 되는 순간인데, 짠하더라고요. 의지할 아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죠. 아이들보다 더 아픈 게 다른 경로로 감염이 되었나 봐요. 아이들은 열과 기침만 있을 뿐인데, 이 남자는 열, 기침, 설사, 구토, 한기 등 그야말로 겹겹이 덮쳤습니다.
정말 아이처럼 "아흐~ 아흐~" 하고 신음하는데......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을 부축하고 의사 선생님을 뵀는데 남편이 많이 안 됐더라고요. 남편 진찰 후, 아이들도 줄줄이 소환되어 의사 선생님 진찰을 받았어요. 다들 콧물에 하도 풀어서 코가 시뻘겋게 된 것이...... 콜록콜록 기침에..... ㅜㅜ
그래도 오늘은 정말 많이 나은 아이들이라 활기차게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다행이었습니다. 엊그제부터 열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잠도 못 자던데 어젯밤에는 푹~ 잘 잤거든요.
△ 서로 감염되지 말자고 자신의 물컵을 표시합니다.
그렇게 진찰을 다 보고 돌아서려는데, 아픈 남편이 한 사람 더 남았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네요.
"빨리, 진찰받아봐~!"
하면서 남편이 제 등을 떠미네요.
"난 엄마라 아프면 안 돼요. 그래서 괜찮아요. 목만 조금 아파요."
그랬더니, 남편이 그러네요.
"우리 네 명이 다 감염되어 아픈데 이 사람도 기침을 많이 해요. 한번 봐주세요."
이러는 겁니다.
순간, 당황하여 저도 얼떨결에 진찰을 받았습니다. 숨 쉴 때 괜찮았지만, 기관지가 좋지 않다고 하네요.
"아이고! 아이들보다 더 심하게 목이 부었어요."
이러십니다. 어쩐지 어젯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기침을 참으면서 아이들을 돌봤는데, 저도 아주 심각했나 봅니다. 그런데 마음 놓고 아프지도 못하고 아이들과 남편 돌보느라 약도 제대로 못 먹었네요. 이 와중에 아픈 남편이 절 생각해주니 속에서 눈물 줄줄 흘렸습니다. 그래, 나는 괜찮다니까, 아직까지 견딜만하다니까.
이렇게 온 식구 진찰 다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바로 침대에 가 드러누웠고, 아이들은 많이 좋아져 다락방에서 자기들끼리 조잘조잘 잘도 놉니다. 저는 어린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밥을 하고, 병시중을 들어줬습니다.
△ 식욕이 돌아온 아이들이 제일 처음으로 먹고 싶다고 한 김밥. 그런데 저는 힘이 없어서 달걀에 당근, 시금치, 호박, 양파를 다 넣어 한꺼번에 부쳐서 저렇게 해주었습니다. 그래도 맛있게 잘 먹으니 참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한국에 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뭐 한국에 있어도 별반 다를 게 없겠지만, 근처에 친정 식구들이라도 있다면 더 마음이 안심되지 않았을까도 싶네요. 외국에서 사는 게 이럴 땐 정말 조금은 외롭더라고요. ^^; 우리 아이들이 엄마라는 나라는 존재를 찾는 것처럼, 저도 어른이지만 가끔 우리 엄마를 찾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친정엄마가 보고 싶네요. 벌써 몇 년을 못 보고 살아왔는지...... 친정엄마도 우리 네 남매를 기르며 함부로 아프지 못하던 그 시절이 있었겠죠? 아마 그 시절은 저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고, 저보다 더 힘들었을 환경이었던 것을...... 이럴 때는 왜 여자들은 똑같은 모습의 엄마를 그리워하는 걸까요? 이게 바로 엄마를 알아가는 과정일 거예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삶인 만큼, 이런 과정도 시간이 흐르면 되돌아오지 않기에, 소중히 마음으로 이 외로움도 즐기려고 합니다. 한국 가면 또 최선을 다해 우리 식구들과 즐기려고 지금 벼르고 있습니다. ^^*
암튼, 지금도 엄마인 저는 슈퍼우먼이 되어 아이들 보살피고 있습니다. 어쩌면 남편이 괜찮아진다면 저도 훅~ 하고 한 번에 갈 수도 있겠네요. 그러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어요.
여러분, 항상 건강 유의하세요. 아프지 마세요~!!! 2017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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