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생각

천 조각 하나, 그것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행복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4. 8. 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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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의아할 정도로 남편의 손수건이 신기했다. 이 손수건은 멋으로 가지고 다니며, 눈물 뚝뚝 흘리는 여자에게 주려고 향수 뿌린 것도 아니었고, 그냥 가지고 다니면서 흠집 없는 (완벽남) 모양새를 보이고자 가져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남자는 가차 없이 손수건으로 코를 훅 풀면서 적나라하게 사용하는 '실제적 사람'이었다. '실제적 사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본 손수건의 의미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액세서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남편이 사용하는 손수건은 정말 실용적으로 쓰이는 것이었다. 코 푸는 것! 



빨래를 널면서 나는 지독히도 사용의 절정에 달한 손수건을 보면서 참 징하다, 란 생각도 들었다. 이 천 조각 하나에 얼마나 많은 양의 코를 풀었던가. 신기하다. 요즘 손수건 쓰는 사람들도 있을까? 누가 손수 코 묻은 손수건을 빨고, 널고 재사용하고 있을까? 


그냥 땀 닦고 눈물 조금 닦는 용도로 쓰이질 않을까? 


그런데 남편의 손수건은 엄청난 양의 코가 묻혔다. 그래도 난 이런 천 조각으로 행복하다. 내가 선택한 삶이 즉흥적인 인조 티슈가 아닌 오래가지만 꾸준한 사용이 요구되는 '불편한 수건 빨기' 같은 것이었다. 난 이런 불편함이 참 좋다. 



어차피 친환경, 친자연적 삶을 사는 우리는 실천하고 실행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의미가 될 수 있다면 주저치 않았다. 남편은 회사 유니폼이 4년이 지났지만, 회사에 새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리 공짜 좋아하는 남편이지만, 실제로 필요 없는 물건을 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이것도 소비문화의 일종이니 소비가 적을수록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옷이 상하지 않는다면 계속 입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5년 전, 오스트리아에 사는 한국 친구에게서 받은 내 생리대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깨끗한 것만 골라 사진을 찍었다.) 난 이 천 생리대를 받던 날, 얼마나 행복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손으로 직접 만든 이것이 우리 몸에 감기며, 플라스틱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이런 방법이 있으면서 왜 이것을 사용하지 않지? 그것은 우린 너무 편한 것에만 길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회용, 얼마나 편하고 좋아? 그런데 난 이 물건을 사용하면서 나를 더 잘 알아가 행복하다. 


이것은 천이며 몸과 친한 '동무' 같은 것이었다. 숨이 트이는 자연과의 만남이 있는 물건이었다. 



불과 반세기 전에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당연하였는지......! 지금 우리는 이 당연함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고 더 편한 것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다. 얼마나 더 편한 것들이, 더 일회성이 나와야 편한지....... 



화려하지 않고 단순한 것들이 얼마나 좋은지, 내 취향은 그렇다. 난 음식도 간단하지만, 음미하면서 먹기를 좋아한다. 아무리 맛없는 것일지라도 그 맛을 음미하려 한다. 맛없어 화나는 음식이 있을지언정, 이 음식은 이 순간 내 몸을 채워줄 양식이라 생각하고 언제나 감사히 먹는다. 그래서 난 기내식이 맛없다면서 불평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지만, 그것을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은 험하게 시골 놀이를 즐겨 옷이 자주 해어진다. 

손으로 꼼꼼히 그곳을 바느질하는 즐거움, 이것도 아주 좋다. 



조용히 앉아 아이의 옷을 바느질하면서, 사색에 잠길 때 한석봉 어머니가 된 기분이다. 아이들의 옷 장식을 위해 이런저런 바느질 하는 것도 참 좋다. 옛날로 돌아가라고 해도 난 즐거운 엄마가 될 것 같다. 바느질하면서......



우리는 이런 손으로 하는 작업을 서서히 잊고 산다. 편한 것만 하고 싶고, 친절한 사람만 만나고 싶고, 불편하고 힘든 것은 스르륵 피하고 싶은 마음......


나도 그렇다. 이런 것들이 싫지만, 정면으로 한 번씩 마주하는 것, 나를 성장하게 한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불편함 앞에서 이기는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불편함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채소밭에서 오늘은 딸기를 많이 땄다. 당장 먹어 버리기에도 많은 양이다. 아이가 손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집어서 먹는다. 요것들! 씻어서 먹어야지! 


시뻘건 아이들 입과 손이 자연스러움을 말해줘 행복하다. 

 


손수건을 적나라하게 코 푸는 용도로 사용하는 남편이 딸기잼을 만들었다. 이 딸기잼! 오래 보관할 수 있어 좋다. 올겨울 우리의 아침 식단에 나올 잼이다. 


슈퍼마켓에서 당장 사온 잼보다 맛이 덜할 수도 있다. 그것보다 색상이 보기 흉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겐 이런 불편하고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들이 무엇보다도 훌륭한 상품이라고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손수 만드는 음식, 불편하기 짝이 없는 천 조각들, 그것들이 나에겐 행복의 한 자화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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