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가족

시어머니의 건망증

산들무지개 2015. 4. 7.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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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발렌시아 시댁에 갔을 때, 제가 깜빡하고 실내화를 가져가지 않았답니다. 시댁에서 야외 신발을 신을 수도 없고......


그런 제 모습을 보셨는지, 시어머니께서 제게 실내화를 내어주셨답니다. 


어머님이 쓰시던 것인데, 감사하다면서 신발을 신는데....... 오? 제 한 발이 너무 무거운 겁니다. 왜 이렇게 신발이 무거워? 이상하다.... 하면서 다시, 다른 한 발을 신었습니다. 그런데 그 발도 엄청나게 무거운 것입니다. 아, 이렇게 실내화가 무거운 것은 처음이야...... 하면서 실내화 속을 살펴봤더니 오? 무슨 작은 복주머니 같은 것이 두 개가 신발 안에 나란히 들어있는 것입니다. 



복주머니를 살짝 열어보니, 이것 참! 각종 보석이 번쩍번쩍 빛나며 있었습니다. 


아하하하하! 

어머니! 심 봤어요. 여기 보석이 잔뜩 있어요! 우리 두 여자들은 깔깔깔 소리내어 웃었답니다. 


"아이쿠! 내 건망증! 지난 번 카나리아 제도 여행가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보석은 이곳에 다 넣어뒀어. 뭐, 그래봤자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우리 어머니 반지와 목걸이, 남편(시아버님)이 결혼할 때 선물해준 팔찌 뭐, 그런 소소한 것들이야. 추억 보석이지 뭐." 그러십니다. 


그러시면서 하나 하나 꺼내 보여주시는데...... 묵직한 그 추억의 무게가 아주 무겁더군요. 


"요즘 내가 건망증이 더 심해졌어. 니 시아버지만 욕할 게 아니라 나도 좀 정신 차려야겠어." 

올해로 한국 나이 일흔은 다 되어가시는데...... 


지지난 번에 갔을 때에도 손녀들 줄 케익을 만들다 깜빡하시고, 오븐에서 서둘러 꺼내다 그만 떨어뜨린 적도 있으시답니다. 오븐에 넣어뒀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한참 있다 좀 타는 냄새가 나 후다닥 가셨다 그만 너무 서둘러 떨어뜨렸다고 하셨지요. 


바닥이 깨끗해 부서진 초콜릿 케이크를 후후 털어 접시에 담아놓으셨죠. 


그런데 아이들이 다행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양이 망가져버린 저 초콜릿 케이크 고사리손으로 먹는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께서 활짝 웃으셨습니다. 


맛만 좋으면 되지? 

할머니 건망증 있어도 우리 손녀들 좋아하는 것은 다 알아......


그렇게 시어머님과 보석 주머니를 열어 서로 추억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니 참 좋더군요. 뭐 대놓고 사진 찍는 파파라치 며느리는 못 되어 사진은 안 찍었어요. 시어머님의 어머님 (산똘님의 외할머니이시죠?) 유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시어머님...... 어떤 도둑이 와도 그 추억 하나는 없애질 못할 듯이 감춰두셨네요. 


"나중에 내가 죽으면 이 보석 누군가는 잘 보관하며 내 생각하겠지?" 그러시네요. 

"쓸모도 없는 것이지만, 뭐 그래도 추억이 깃든 것이니, 함부로 취급할 수가 없어 그래. 그래도 건망증 때문에 영영 잃어버릴 뻔 했네." 

소녀같은 감성에 제가 함박 미소를 지었네요. 


그래도 스페인 시어머니께서는 며느리 입맛을 생각하여 평소 드시지도 않는 간장은 잊지 않으시고 잘도 구해놓으신답니다. 


 중국 식료품점에 절대 갈 일 없으신 시어머니께서 마련하신 중국산 간장과 

스페인 유기농 가게에서 구하신 스페인산 간장입니다. 


항상 젊은 생각만 하셔서 전 저희 시어머님이 상당히 젊으신 줄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한국 나이로 일흔......


오늘도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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