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부부

남편의 고사리 사랑 & 스페인의 고사리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6. 5.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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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 한국에 다녀온 남편에게 집착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 먹어 본 '고사리' 때문이지요. 사실, 고사리를 고사리로 알고 난 후, 남편은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고사리는 독성 강한 풀로만 알고 있었던지라...... 


"비타민 B1을 파괴하는 티아미나제가 있어~!" 


그 당시 남편은 산림학을 전공하고 있었기에 꽤 흥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에 들어와 정착하게 된답니다. 이 산에는 고사리가 자생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참 찾기 어려운 식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산행을 다녀온 남편이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꺼낸 한 줌, 바로 고사리였습니다. 


"이거 먹어도 될까?"


저는 겁순이이었기에 안된다고 했지요. 

이웃 사람들도 어떤 해, 소가 고사리 잎 먹고 죽었다고 아주 멀리하는 풀이었습니다. 


"그래? 그래도 일단은 조사해보자."


남편은 열심히 조사합니다. 한국에 분포하는 고사리와 스페인 고사리 비교, 분석...... 


그러다 어느 날 결론을 지었습니다. 


"고사리는 반드시 물에 데쳐서 건조시켜야 하지. 고사리순만 말이야. 고사리 잎이라든가, 포자 달린 다 자란 고사리는 먹으면 절대로 안되지.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우리 페냐골로사 지역에 있는 고사리를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그것이 정말 궁금하도다~!" 


이렇게 몇 년 궁금증만 달고 다니던 남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바로 고사리를 이미 채취하여 먹거리로 변신시킬 줄 아는 한국인을 만났기 때문이지요. 카스테욘의 유명한 한국인 세뇨르 한, 한사범님을 만나면서 말입니다. 


한사범님 댁에 초대되어 갔더니 고사리가 떡~! 


"이 고사리, 페냐골로사 산자락에서 따왔어~!"


우와, 우리 집 근처잖아? 그리하여 남편은 한사범님께 전수 받아 고사리를 따게 되는데...... 


그때부터 우리는 고사리를 봄날 한두 시간 따게 되어 지금까지 해먹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고사리와 비교하면 좀 텁텁하고 맛이 없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은 봄철에만 만날 수 있는 먹거리 아니겠어요? 올해도 우리 가족은 고사리 산행을 했습니다. 



바구니 두 개를 준비하고...... 

온 가족이 30년 된 사륜구동차에 탑니다. 

(저는 말로 30년이라며 오래 된 것을 강조하는데 사실은 23년 된 그 당시 신형차입니다. ^^

엔진도 튼튼하고 옛 주인이 자주 교환하고 이것저것 수리도 많이 하여 

오염 가스 배출 기준량에서 매년 국가 자동차정비소 검사에서 합격하는 합법 차입니다. )



험난한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올라간 곳은 고사리 서식지. 



이날 엄청나게 추워 다들 중무장하고 갑니다. 

아이들과 아빠가 신났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안타깝게도 북향이 있는 구석 자리. 



첫눈에 고사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고사리 찾아 삼만리 할 정도로 고사리는 아직 땅 위로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역시 고산의 봄은 늦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향으로 난 고사리 서식지로 갑니다. 

지난해 폭우로 길이 엄청나게 파괴되어 있습니다. 

이 길을 어떻게 오르지? 

걱정하지 마. 우리에겐 30년 된 탱크가 있으니......!


남편은 의기양양하게 탱크차(?)를 몰고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 길가에 저렇게 빼꼼히 인사하는 고사리 하나~! 


고개를 돌리고 반대편 길가를 보니......



고사리 떼들이 인사하고 있습니다!

상상 이상의 고사리 서식지였나 봐요. 


마구마구 솟아나는 고사리에 기쁨이 충만하여 우리 아이들도 엄마! 엄마! 고사리! 하면서 

소리를 꽥꽥 지릅니다. 



바구니 들고 고사리 담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그러다 녀석들은 인조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엄마! 여기 집이 있어~!



에잉? 무슨 집이 이래? 정말 집이잖아? 이 집은? 



천장이 까만 것이...... 


알고 보니, 그 옛날 이곳에서 숯을 굽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숯장이들이 이곳에 며칠씩 거주하면서 숯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 집은 숯장이들이 살던 임시 집이었습니다. 

이 안에서 불 피우고, 음식 만들어 먹어 이렇게 천장이 그을렸던 것이지요. 



밖에 나가보니 큰 아이가 이번엔 부릅니다. 

엄마! 여기 하트가 있어~!


에잉? 무슨 하트? 



다가가 보니, 정말 하트가 그려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장난으로 그려놓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곳은 페트로그리포라는 선사시대의 제물단이랍니다. 

동물을 희생하고 저 위에 피를 올려 땅으로 흐르게 하여 번식을 기원하던 곳이지요. 


그런데 산중에 저렇게 함부로(?) 있어도 되는가, 싶은 것이......

원시 시대의 풍경을 한 번 그냥 상상하게 되더군요. 



우리는 한두 시간 고사리 산행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갑니다. 

더 많은 시간 고사리를 따지 않아도 충분하니 말이지요. 


이 고사리는 독성이 있어 반드시 삶아서 말려드셔야 합니다. 

또한 어린 고사리 잎에는 포자가 없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와, 우리가 페냐골로사 산 뒤쪽 구석에 있었구나. 



그곳 계곡에서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우리 역시, 겹겹이 쌓인 산 위에 살고 있구나!



그런데 옛날에는 어떻게 저렇게 험한 곳까지 사람들이 와서 살 생각을 했을까? 

바람 강하고, 물도 없고, 건조하고...... 

지금은 방치된 옛집이 홀로 있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와 열심히 고사리 삶아 연중행사를 합니다. 



한국에 갔을 때 할머니가 주신 건조포대에 말렸는데...... 

고산이라 바람이 너무 세차서, 다 날아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 다시 걷어서 건조기에 말리기로 했습니다. 



할 수 없다. 건조기라도 있으니 다행이네...... 

그렇게 7시간 55도였나요? 55도에서 말리니 

그 다음 날, 요것들이 다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요렇게 부피가 줄어들었습니다. ^^



고사리를 잘 포장하여 냉동실로 직행~!


올해는 고사리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봄철 한두 시간의 산행으로 얻은 고사리에 아주 만족했던 하루였습니다. 


남편은 자꾸 옆에서 고사리 따러 또 가자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먹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왜 그래? 고사리 병에 걸렸구나.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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