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불꽃축제, 라스 파야스(Las fallas)는 발렌시아에서 나온 대표적인 전통 축제입니다. 우리에게는 세계의 신통방통한 축제 문화로 TV를 통하여 알려졌거나, 정여울 씨의 [나만 알고 싶은 유럽]으로 소개돼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이 축제를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낍니다.
발렌시아 주 작은 마을에서 치러지는 대표적인 축제인 ‘토마티나(Tomatina) 페스티발’은 직접 참가하여 몸으로 즐기면서 체험할 수 있다지만, 도대체 이 불꽃축제는 어떤 축제인지 감이 잡히지 않다고들 말합니다. (참고 - 토마티나 축제: 발렌시아 작은 마을 부뇰(Buñol)에서 토마토를 던지면서 즐기는 축제). 말만 들어서는 꼭 폭죽을 터트리는 축제 같기도 합니다.
‘falla’라는 단어는 중세 발렌시아어로 라틴어 ‘fac’에서 유래했습니다. ‘횃불’이라는 의미로 쓰였으나 실제로는 망루의 상단에 배치된 횃불을 의미한답니다. 지금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축제 고유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요, 일단 간략하게 이 축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발렌시아의 크고 작은 지방자치단체는 이 축제를 위해 일 년을 준비하고요, 축제에 나갈 거대한 인형인 니놋(Ninot)을 계획하는 일에서부터 미스 파예라(Miss Fallera) 선발, 축제 때 사용할 불꽃 폭죽 기획까지 다양하게 준비합니다.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에는 제작한 니놋 나무 골격을 종이와 스티로폼 등으로 만든 형상을 짜 맞추어 곳곳에 전시합니다. 한마디로 거대한 인형의 집합체가 이 축제의 장관이죠. 그 외에도 다양한 전통의상을 입은 퍼레이드나 헌화식, 폭죽놀이, 가장행렬 등 화려하고 다채로운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2017년 올해부터 라스 파야스 축제는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인류 무형문화유산, 국제 관광 관심 축제’에 등재되어 그 진가가 발휘되고 있습니다.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가 되었다니 그 역사와 의미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요. 실제로 발렌시아의 불꽃축제 기간에는 1년 전부터 숙소 예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축제를 위해 미리미리 예약해야만 한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축제에 대한 세세한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인류 문화유산 지정 기념으로 말입니다. ^^*
그렇다면 발렌시아의 불꽃축제(라스 파야스, Las fallas)는 언제일까요?
매년 같은 날짜는 아니지만 대략 3월 14일에서부터 3월 19일 성 호세의 날까지 축제의 모든 하이라이트가 마무리됩니다. 많은 이들이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방문하지만, 공식적으로는 2월 마지막 주 일요일, 발렌시아 시장의 공식선언인 ‘라 크리다(La Crida)’부터 시작됩니다. 올해는 인류 무형 문화유산 등재로 거대하게 축하하는 의미로 2월 1일부터 3월 20일까지가 축제 기간이네요.
불꽃축제의 기원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기원은 16세기 목수들이 자신의 수호성인인 산 호세(San José)의 날을 기리기 위해 작업실에서 쓰던 모든 나무 찌꺼기, 쓰레기 등을 태우면서 이 축제가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 이름인 호세는 ‘요셉’을 의미하는데 요셉은 목수가 아니었던가요. 목수들의 수호성인인 요셉을 축복하고 기원하기 위해 일 년 동안 쌓인 모든 나무와 파롯(Parots)을 태우면서 발전했다는 게 대중적인 의견입니다.
‘파롯’은 목수가 만든 샹들리에에 장식하는 반짝이는 작은 물체로, 이 ‘파롯’이 변형되어 ‘니놋’으로 발전했다는 게 일반적인 이론이랍니다. 일 년 중 가장 어둠이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시점에 쌓인 모든 것을 태우면서 정화한다는 의미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불필요한 것을 태우며 새봄을 맞는 목수들의 목공소 청소의 의미로도 볼 수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 불꽃축제는 민간신앙이 가톨릭과 만나면서 융화되는 과정에서 정착한 경우라고도 합니다. 불로 태우는 행위로 정화하는 민간신앙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공통된 요소이자, 다른 종교가 침범할 때에도 강력하게 버티는 주술이었습니다. 그 덕에 이런 세계적인 불꽃축제가 생겨났다고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세계 인류 무형문화유산이자 강원도의 자긍심인 세계적인 축제는 ‘강릉단오제’가 있습니다. 노래와 춤, 굿을 통해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농경사회의 독특하고도 다양한 굿 행사와 함께 그네뛰기, 사투리 경연대회, 풍악 놀이, 퍼레이드 등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여 외국인의 참여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지요. 어찌 강릉과 발렌시아가 참으로 비슷합니다. 동쪽 바다 연안에 접해있고, 경포호와 같은 알부페라(Albufera)호가 발렌시아에도 있으니 말입니다.
한국의 강릉단오제는 농경사회의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적 행사라면, 스페인의 불꽃놀이는 가톨릭을 바탕으로 한 성인의 날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축제가 종교를 다루는 무거운 부분만 있는 게 아니지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도 각종 음악과 전통복장의 행렬, 춤, 음식 등 다양한 이벤트로 인류 보편적 즐거움을 축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스 파야스 축제 때 봐야 할 것은?
라스 파야스 조형물 니놋(Ninot) 보기
라스 파야스 축제는 발품을 팔면 아주 신나는 축제입니다. 발렌시아와 주변의 작은 마을 곳곳에서 거대한 인형 조형물인 다양한 니놋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 조형물과 어른 조형물들이 각각 전시되는데, 미리 계획하고 만든 조각을 골격에 짜 맞추어 3월 내내 전시합니다. 니놋을 제작할 때는 동화 속 이상적인 인물이나 배경 등으로 만들어지거나, 한 해 동안 가장 크게 조명되었던 사회적 문제나 정치적 쟁점, 이슈가 컸던 사회적 인물 등의 비판이 될 만한 주제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형상은 300여 개가량으로, 19일 밤, 아이들 니놋을 시작으로 일제히 어른 조형물까지 태우면서 마무리됩니다.
라 마스클레타(mascleta) 듣기
발렌시아는 폭죽 제조 기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합니다. 심지어 폭죽 기술자들은 중국까지 출장 갈 정도로 상당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지에서 직접 본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라 마스클레타는 소리 폭죽이라 할 정도로 터지는 소리의 강약으로 체증을 뻥 뚫어주는 신기한 힘을 갖는데요, 행사 기간 매일 낮 2시에 시청 광장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이벤트로 굉장한 소음이 조화롭게 터지는 게 특징입니다.
올해는 2월 초부터 3월 마지막 축제 날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밤의 불꽃 축제
새카만 밤하늘을 수놓을 전통적인 불꽃 축제입니다. 이 행사는 매일 밤, 자정에 진행하는 축제입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름다운 형상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기 때문에 매우 로맨틱하여 불꽃 폭죽 장인(pirotécnico)의 기술에 새삼 감탄하기도 합니다.
꽃 헌화식
미겔레떼(Miguelete) 대성당에 ‘로스 데스암파라도스(virgen de los desamparados) 성모상’을 위한 꽃 헌화식이 있습니다. ‘로스 데스암파라도스’는 '보호되지 않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돕는 일을 기원하며 헌화식을 한답니다. 3월 17, 18일 날 저녁에 발렌시아 전통 파예로 복장을 한 행렬이 꽃을 헌화하는 데 매우 감동적이라 참여객들이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거대한 나무 골격 상부에 성모상이 있으며 그 성모상에 꽃으로 옷을 입혀주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아주 감동적입니다.
축제는 역시 발품!
구경할 때는 가벼운 몸으로 걷자.
이 축제는 스페인 현지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방문하는 스페인의 잠재적 관광행사입니다. 문제는 관광객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장사꾼, 소매치기도 같이 넘치기 때문에 종종 이 축제 때 소매치기당하여 난감한 사람들이 속속 생겨납니다
그래서 되도록 아주 가볍게, 속 주머니에 중요 물품을 넣고 한 번 룰루랄라 행렬과 다녀봐요. 음악대의 반주에 맞춰 행렬을 따라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지요.
폭죽 터트리면서 놀아보자
어찌 이곳 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폭죽 터트리는 데 온 힘을 집중합니다. 축제 기간에는 길거리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는 일이 허다하지요. 혹시 방심하고 있다면 갑자기 터지는 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수도 있으니 주의 요망. 스페인의 키오스코(Kiosko, 신문판매대)나 관광 잡화 가게에서 폭죽을 살 수 있으며, 이런 곳은 대부분 관광객들이 현지인처럼 즐기기 위해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폭죽으로 키오스코나 잡화점에서 살 수 있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폭죽 터지는 일이 흔한 축제입니다.
축제의 길거리 음식, 꼭 먹어야 할 부뉴엘로스(Buñuelos)
부뉴엘로스는 밀가루 반죽에 구운 단호박을 넣어 도넛처럼 튀겨낸 발렌시아 전통 간식입니다. 튀기기는 쉬운데 도넛처럼 구멍 내는 일이 어려워 전문가가 아니면 이 부뉴엘로스는 만들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축제 기간에는 꼭 먹어봐요~.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몇 안 되는 전통 간식거리로 보통은 뜨거운 초콜릿에 찍어 먹는데요, 추운 길거리에서 따뜻한 핫 초콜릿에 이 부뉴엘로스를 찍어 먹으면 움츠렸던 힘이 다시 솟아나 어쩌면 끝까지 축제의 밤을 즐길 수 있으리라 봅니당~.
길거리 음식이지만 우리는 길에서 사가지고 와 상 차려놓고 먹어봅니다.
위의 사진처럼 천막을 쳐놓고 부누엘로스나 추러스를 판매합니다.
거리에서 행진 행렬과 악대 뒤를 따라가 보자
쉴새 없이 흐르는 발랄한 축제 음악대 뒤를 그냥 따라가 봅시다. 신나는 라스 파야스 음악과 아름다운 전통 의상을 입은 행렬 뒤로 따라가 보면 뜻하지 않게 즐거운 광경을 맞을 수도 있지요. 마치 환영한다는 의미로 당신에게 특별한 음료를 대접해주거나, 특별히 아름다운 전통복장을 입은 그룹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어요. 특히 밤은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입니다.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고, 신나는 음악대 덕분에 밤은 활기에 넘치고, 새벽은 금방 찾아와주지요.
발렌시아의 축제 밤거리 조명 구경하기
라스 파야스 축제답게 불과 관련된 부분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당연히 거리거리의 조명도 빠질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간판 조명이 화려하지 않은 이들 거리가 이 축제 기간에는 화려하게 변신하여 보는 이들을 끌어당깁니다. 인파가 많은 게 좀 불만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아름다운 거리랍니다.
가끔 마을마다 니놋 제작운영위원회에서 후원을 받아 어떤 조명은 광고 조명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그래도 구역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조명이 꽤 있고, 가장 아름다운 조명에는 ‘조명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지역인들은 이 조명 꾸미기에 온 정성을 다하여 아름답게 장식하는 게 특징이지요.
이제 마지막으로 봐야 할 닛 데 크레마(nit de crema, 태우는 밤 혹은 불타는 밤)
아디오스~! 라스 파야스!!!
마지막 날 공들인 조형물을 다 태웁니다. 겨울의 모든 부정한 기운을 태우고 새봄을 맞기 위해 공들인 조형물을 다 태우면서 정화한다는 의미로, 정성스럽게 만든 조형물이 아쉽게도 다 태워지다니 섭섭하기도 하고, 왜 보존을 하지 않는지 의아하기도 하지만, 발렌시아인들은 니놋이 불에 타 재가 되어야만 진정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디오스! 그리고 새봄을 위한 환영식!!!’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면 긍정적인 봄의 기운이 우릴 어느새 잠식하고 또 다른 라스 파야스를 위해 일 년을 시작합니다.
공들인 조형물이 아깝지만, 내년을 기약하자!
솔직히 이런 조형물이 다 태워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가장 훌륭한 니놋에게는 상도 내려진다고 하는데 그 상은 다름이 아니라, ‘자유’라고 합니다. 불에 태워지지 않을 자유라고 하니, 꽤 멋진 상이죠? 가장 아름다운 니놋은 니놋 박물관인 파예로 박물관(Museo Fallero)에 보관되며 일 년 내내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나머지 불에 태워진 니놋은 사진으로 역사 속에 기록되며, 사람들 기억 속에 기록될 것입니다. 겨울 동안 쌓인 잔재를 불태우며 부정한 기운을 없애고, 새로운 기운이 도약하는 새봄에 목수들은 또다시, 다른 일 년을 위해 열심히 달릴 예정이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죠.
1962년 작품
이제 봄이다.
새로이 트는 싹, 기쁨, 소망, 희망 등 새록새록 긍정적인 기운이 솟아나는 봄입니다. 긍정의 새 출발을 기원하면서... 이 축제처럼 쌓인 잔재들 다 태우고 새로움으로 다시 태어나보길 우리 모두 바라봅시다~!
여러분, 즐거운 날 되시고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변함없이 이 라스 파야스 소식을 알립니다.
올해는 더 자세히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축제를 소개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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