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이야기/시사, 정치

스페인 의사는 공무원입니다

산들무지개 2017. 11. 2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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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스페인에 대해 아는 것이 "관광" 밖에 없죠? 

제가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스페인은 겨우 관광밖에 없는 느낌이었답니다. 관광하면 뭐, 놀고먹는 나라라는 인식도 있고요, 어떤 분은 스페인 사람들 게으르다, 놀기만 한다는 말씀을 서슴지 않고 하시고요, 뭐, 보는 관점에 따라 놀 수도 있고, 일할 수도 있고... 뭐 그렇겠죠? 

확실히 스페인은 한국 사람들에게 제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너무 환상적인 느낌도 있고, 우리보다 못하다는 나라라는 인식도 있더군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선입견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경제가 나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 문화 의식이라든가, 복지 정책, 교육 등이 더불어 나쁘다는 인식은 참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곳에 사는 한국분들도 서슴지 않고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국에서 경제자본 소비문화에 익숙하신 분들이 주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마치 교육에서 아이들 수학, 과학, 영어 점수가 높으면 교육이 잘 된다고 오해하시는 분과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점수가 높다고 그 아이의 사고와 창조성, 사회성, 행복 만족도 등이 높다는 소리가 아니지요.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사실은 가장 좋은 교육인데 말이지요...... 

이번에 북한 병사 탈출 사건에서도 저는 꽤 충격적인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놀랐습니다. 물론 한국을 떠나 스페인에 산 지 너무 오래되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나, 한국을 의료 선진국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하도 많아 더 충격을 받았지요. (저는 아직도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입니다) 많은 분이 스페인 의료체계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한국에서 치료를 받아라~ 라고 조언을 해주셨지요. 한국 의료체제 정말 잘 되어있다~ 라고...... 저도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2015/04/17 - [스페인 이야기/시사, 정치] - 스페인에서 병원 한 번 가기 어렵네요

위의 글은 스페인 의료체제의 단점을 다룬 글입니다. 그렇다고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제게는 더 큰 장점이 있는 곳이 스페인 의료체제입니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얼마나 "눈 가리고 아웅~"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의료선진국인 한국에서 왜 의사가 응급헬리콥터 비용을 대야 하는지....... 왜, 생명부터 먼저 살리겠다는 의사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는지 저는 참 참담했습니다. 북한 병사를 살려내신 이국종 의사 선생님 이야기는 모든 분이 알고 계시죠?

의사라는 직업이 정말 어려운 직업이라 유럽에서도 남미에서 온 의사들이 참 많습니다. 그만큼 일이 많고 희생이 강요되어 현지인들도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들의 그 직업의식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두 해 전, 스페인 의대 학장님을 만나 인터뷰한 일이 있었죠? 

그분은 스페인 의사이기도 합니다. 심리를 다루는 의사이신데요, 여기서 스페인 의료 정책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의사는 공무원입니다. 


의사가 공무원?! 대단하죠?

제가 그랬죠. 한국은 의료 공무원이 아주 적다고 말이지요. 겨우 보건소나 군의관이 공무원이랄까요? 하면서 말이지요. 

한국에서는 의료 정책이 의료 보험과 개인 부담, 이렇게 나누어진다고 했었죠. 

(스페인에서는 대부분 공립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요, 본인부담이 전혀 없습니다. 대신 매달 사회의료보험비만 내면 됩니다. 큰 수술일 경우에 전액 무료로 수술과 치료, 입원을 합니다.)

라파엘 바예스테르 아르날(Rafael Ballester Arnal) 

스페인 카스테욘 자우메 프리메로(Jaume I) 대학교 의대학장 


스페인은 의대를 나온 이들이 꿈꾸는 일이 바로 "의료 공무원"이 되는 일이랍니다. 중요한 것이 "Público(공공장소)"에서 일하는 것이지요. 아니,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의사들이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고 질문을 했어요. 

"맞아요.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하죠. 그런데 한국은 사립이나 국립이나 가난한 이들이 돈이 없으면 치료받을 혜택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스페인의 공립 병원은 국적을 막론하고, 종교를 막론하여, 돈 있거나 없거나 다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저와 종교 이념이 다른 사람이 온다 해도 전 거절할 수 없지요. 

만약, 살인자가 다쳐 온다고 해도 거절할 수가 없어요. 

만약, 테러리스트가 온다 해도 거절할 수가 없어요. 

만약, 지지리도 가난한 이가 온다 해도 거절할 수가 없어요. 

반면, 한국과 같이, 미국 포함해서요, 돈이 우선되는 곳은 돈이 없으면 사람을 받지 않는 곳도 있잖아요? 

그래서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스페인 정부에서 병원을 사립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어요. 사립화되면 인류 보편적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스페인의 자랑인 이 의료 정책이 무너지면, 오로지 돈만 보는 사람들만 생겨날 거에요."

아! 전 이 말씀을 듣고 전율했습니다. 스페인 국민들이 하나같이 자랑스러워하는 이 의료 정책이 무너지면 안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립화된다고 의사의 그 희생 봉사 정신이 돈 따라간다는 말은 아니라고 보긴 했지만 말이지요. 사립 병원에서도 의사 본분을 다하여 환자를 다루시는 분이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학생들도 이런 사명감으로 공부하여 의사 되기를 바라지요."


저는 어쩐지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왜 의사들이 이렇게 자긍심이 강한가 하고 말이죠. 한국에서는 고샐러리 직업으로 쳐줘서 그렇다는 인상이 있었는데(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요.) 여기선 도대체 얼마의 월급을 받기에 이렇게 자랑스러워할까 했었지요. 


그런데 월급은 공무원 월급입니다. 


한국 의사 월급이 상당하다는 것은 여러분 아시죠? 물론 통계에 보면 다른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국가와 비교하면 낮지만, 말입니다, 국가 GDP와 복지 등을 고려한다면 비율적으로 의사 월급은 대단합니다. 대신 의사 진료 시간도 한국은 상당합니다. 

"아니, 한국 의사들은 그렇게나 많이 월급을 받아요? 여긴 공무원 월급입니다. 그래도 이 공무원이 되길 바라지요. 실제로 공립 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해요. 그리고 사립에서는 아르바이트 식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립에서는 돈 많다고 부유한 이를 더 일찍 진료해주는 것도 아니고, 다 순서를 동등하게 기다리며 진료하죠."

실제로 저도 제가 다니던 병원의 산파가 사립에서 일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국립에서 일을 확실히 연마하면서 이름이 알려지면 사립 병원에서 파트 타임식으로 일을 한다네요. 돈이 부족하여 아르바이트하는 것이 아니라, 명성이 알려지면서 더 많은 시술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지요.  

스페인 병원의 행정 처리가 느리고 불친절하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에서 서비스하는 일개인의 문제로 보이고요, 경제 악화로 교육, 의료 등의 예산을 절감하면서 나타나는 인력 부족이었습니다. 물론 병의 성격과 상태에 따라 의료 혜택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예, 성형 수술, 낙태 수술(낙태 금지, 정당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의료 혜택을 봄), 라식, 라섹 수술, 치과의 임플런트 등등

"만약 스페인 정부가 부패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훨씬 달라져 있었을 거예요. 그 정부(우익)가 제대로 공립을 육성시키지 않아 그래요. 그 사람들은 돈이 있으니 자녀들을 사립 병원에 보내고, 사립 학교에 보내고, 사립에 다 투자했으니 공립의 그 우수성을 몰라요. 공립 학교나 병원은 유니버셜한 법을 가지고 있잖아요? 교육의 질이나 의료가 나쁜 것이 절대로 아니에요. 착각하시면 안 돼요. 국적 불문의 모든 이들에게 개방된 곳이 스페인 공교육이며, 의료정책입니다. 이런 이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 많은 부분 시간과 노력, 투자가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나, 돈이 없다고 교육 못 받고, 돈이 없다고 수술까지 못 받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는 돈이 없으면 당연히 치료 못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저에게 생각을 바꾸게 하였습니다. 스페인에서 국민들이 그래도 기댈 수 있는 하나가 바로 의료체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돈 없는 이들도 헬리콥터를 타고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고, 돈 없는 이도 동등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는다고 자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스페인 국민들은 여전히 이 의료체제를 지지하고, 매달 내는 국가 사회의료보험비에 불만이 없습니다.  

▲ 스페인 시골 마을에도 이렇게 헬리콥터가 날아와 응급구조 & 치료에 나섭니다. 우리 마을 응급 사태.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그럼 스페인은 파라다이스이네요?"

아닙니다. 파라다이스가 아닙니다. 공립이라는 점을 여기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혈세가 골고루 나누어진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가난한 이나, 부유한 이나, 이민자나 불법 이민자나 사람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숨 돌리게 된다고 말이지요. (스페인은 경제 악화 이후로 무상의료체제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주마다 의료 정책이 달라졌으나 응급환자인 경우는 무조건 받고 보는 실상입니다.) 

저는 이국종 의사 선생님이 중증외상센터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면서도 병원에 적자가 된다고 눈총을 받는다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의사는 결코 돈보다 사람이 먼저이거든요. 왜 그런 환경이 되었는지, 한국에서는 왜 의사가 돈을 걱정해야 하는지...... 이 충격적인 시스템이 어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아픈 이들이 돈이 없어도 마음껏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국종 의사 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좀더 편안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Vale mas la vida de un ser humano que todo el oro del hombre mas rico del mundo.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모든 금보다 인간의 생명이 더 가치가 있다.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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