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반려문화는 과도기를 맞은 듯합니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이 반려문화는 개인과 외부에서 보는 시각차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요. 특히 지난번에 있었던 개에 물려 사고를 당하여 목숨까지 앗아간 크고 작은 사건은 부정적인 시선으로 대중에게 다가왔습니다. 무책임한 반려인의 행태에 많은 여론이 뭇매를 퍼부으며 아직도 반려동물과 공생해야 할 반려인이나 비반려인의 책임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우리 개는 물지 않아요."
스페인이나 한국이나 어디에서 다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태도는 고쳐져야만 하지요. 그럼, 오늘은 스페인 사람들의 펫 티켓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
스페인은 옛 왕실에서도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키워왔습니다. 대표적인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인 벨라즈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의 작품을 보면, 왕의 사냥개 말고도〈시녀들〉(Las Meninas)이란 작품에서 전형적인 애완견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마치 스냅샷을 찍은 듯한 이 풍경은 자연스러운 가족적인 분위기로 1656년의 애완견이 주는 그 느낌이 지금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벨라즈케스의 [시녀들]
wikipedia.org
제가 처음 2004년, 스페인에 유학 와 느꼈던 놀라웠던 점 하나가 바로 이 반려견에 대한 문화였습니다. 물론, 지금 한국에서도 반려동물 등록제를 시행하여 제도화하고 있어 많이 일상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 느꼈던 이들의 반려문화는 조금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지점에 있어서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많은 불법 이민자와 난민, 망명인 등이 있는데요, 여러 도시에 나누어 그룹을 형성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번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개에게도 여권이 있는데, 사람에게는 왜 여권이 없는가!"
인권존중을 원칙으로 하는 유럽연합에 항의하는 그들의 청원으로도 볼 수 있는 이 팻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지요. 개에도 여권이 있다니! 비반려인이었던 저는 전혀 이해할 수 없던 문구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반려동물을 여권으로 통제하는 사실'은 반려문화를 정착시키는 조화로운 제도임을 알게 되었지요. 사실 그 당시에 유럽의 개는 여권 하나로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체류 허가가 없어 이동의 자유마저 없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제가 미안해질 정도였답니다.
스페인에서 반려인은 반려동물을 동반할 경우, 유럽연합이 정한 기준으로 유럽연합 수의사 협회가 인증•발행한 여권을 가지고 여행할 수 있으며, 개, 고양이, 족제비 등의 반려동물에게 여권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추측하건데, 유럽 연합 내 모든 국가에서 이렇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동물 유기나 학대에 대한 법이 주마다 다르고요, 유기 시 처벌법도 각양각색입니다. 과태료는 적으면 무르시아(Murcia) 지방에서 3,005유로, 마드리드(Madrid)에서 15,025.30유로, 까딸루냐(Cataluña)는 20,000유로까지 그 범위가 다양합니다. 그런데도 스페인에서도 유기하는 반려인들은 매년 생겨나는 실정이랍니다. (참고 1유로=1,250원)
그렇다면 스페인 내의 펫 티켓은 어떤 수준일까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노란 리본을 달거나 노란 스카프를 하는 개는 만지지 말자는 펫 티켓 캠페인이 시행 중입니다. 산책 줄에 노란 리본을 하면 아프거나 사람의 손길을 싫어하는 개임을 표시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노란 리본을 달지 않은 개는 막 만져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랍니다. 사회 구성원 간에 서로 지켜야 할 하나의 예의로 개에게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비반려인에게는 행복한 반려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시행하는 캠페인인 것이죠. 한마디로 펫 티켓을 지켜 구성원 간의 불협화음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지켜본 펫 티켓은 사회 구성원 간의 실질적인 행동과 반려견을 위한 시설까지 여러 방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도 요즘 많이 변해 시민들 간의 펫 티켓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일단 스페인은......
► 일단 남의 집 아이 함부로 만지지 않듯이, 남의 집 반려견도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귀여운 강아지에 다가가 "어구구 예뻐라!" 하며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굉장히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유럽에 오면 조금 당황스러운 부분이기도 하지요. 강아지가 아무리 예뻐도 주인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면 안 됩니다. 주인에게 먼저 물어보거나 허락을 했더라도 강아지의 특성에 대해 인지한 후에 만져야 합니다.
► 외출 시에는 꼭 목줄을 하며, 특정 맹견인 경우에는 입마개는 필수다 .
한국에서도 요즘 목줄과 입마개의 범위를 늘려 의무화하는 법이 도마다 강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에서는 특정 맹견 인 경우에는 입마개가 필수이지요. 또한 아무리 순하다고 하지만, 여행을 하거나 기차를 탈 경우에도 입마개는 필수랍니다. 대표적으로 근거리 기차인 렌페 세르카니아스(Renfe Cercanias)를 탈 때와 바르셀로나 지하철을 탈 때는 모든 개는 입마개를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 외출 시 입마개.
사진: fundacion affinity
► 제도적으로 모든 공공장소에 개의 출입 여부를 안내판으로 표시하도록 한다.
반려인이나 비반려인을 위해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안내판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령 집 앞 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안내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죠. 푸른 공원에서 개가 뛰어노는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하지만, 스페인 공원에서는 목줄을 해야만 출입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심지어 완전히 출입을 금지하는 곳도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인 경우에는 더욱 말입니다.
공원 입구 개출입여부 표시판 - "개는 잔디 출입 금지"
어린이 놀이터의 대표적 반려견 출입금지 표시
보통 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놀거나 저렇게 맨발로 노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 반려인은 배변 봉투를 반드시 챙긴다.
개를 데리고 산책할 때 양심적이지 않은 사람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개가 배설한 똥을 아무 곳에나 두는 일은 요즘 꽤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이건 당연한 에티켓이겠지요? 도시 미관을 해치며 고약한 악취에 재수가 없다면 밟는 일까지 생기니 반드시 배변 봉투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요즘은 똥 밟는 날에는 온종일 기분이 나쁩니다. 그래서 그런지, 스페인 도시는 밤에 거리 물청소를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답니다. 아마도 반려개의 크고 작은 배설물 처치를 위해 물로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스페인에는 개가 똥을 누는 화장실이 따로 있으며, 그 똥을 수거하는 쓰레기통마저 따로 있는 곳이 있습니다. 화장실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물이 있는 게 아니라, 개들이 오가면서 볼일을 많이 보는 장소를 정하여 한곳에서 집중적으로 배변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또한, 반려인이 수거한 배변 봉투는 일반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지만, 도시의 악취 제거와 위생을 위해서도 좀 더 작은 전용 반려견 배변 수거함을 사용합니다.
▲ 공원 내 개화장실 모습
▲ 우리 동네에 있는 개 배설물만 따로 버리는 수거함
► 반려견을 위한 교육과 사회화는 필수다.
어릴 때 강아지를 교육한다며 집에서 신문지 위에 배변하도록 훈련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보니, 강아지는 집안에서 훈련을 시키는 게 아니라 집 밖에서 훈련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외출 시에만 대소변을 누게 하는 철저한 교육과 타인을 만났을 때에는 일방적으로 다가가지 않도록 자제하는 교육도 매우 중요해 보였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개에게 절대로 넘치게 음식을 주지 않으며, 음식은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개가 있어야 할 위치는 반려견 침대 등의 같은 장소로 인식시켜 주는 교육을 합니다. 그래서 한 침대에서 개와 함께 자는 일은 대체로 없었습니다.
▲ 개를 묶지 않고 놓아두고 다른 개와 함께 섞여 노는 반려견 놀이터
▲ 반려인들도 공통의 관심사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지요.
한국 예능 보다가 개가 침대에 올라가 주인과 함께 자는 모습이나, 고양이가 식탁에 올라가 주인 물컵을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을 본 남편은 경악을 금치 못했지요. 한국에서의 훈련은 스페인과 다른 거야? 하면서 말입니다. 자고로 반려동물의 위치는 반려인이 잘 정해줘야 한다는 게 이곳 사람들 생각입니다.
참고. 어떤 분이 이의를 제기하셨네요.
여러분도 이분 말씀에 동의하시죠? 저도 그랬습니다. 같이 식구처럼 여기는 반려견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스페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한답니다. 물론, 낮에는 강아지와 소파에서 같이 뒹굴면서 놀기도 하지만요, 밤에는 함께 자는 일이 대체로 없답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요, 없을 리가 없죠.)
강아지 침대가 있는데 왜 인간 침대에서 자느냐고 합니다. 강아지 침대를 사서 그곳에서 자게 교육을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개가 예방 접종을 하였다 해도 개와 인간이 종부터 다르고, 각자가 접촉하는 바이러스도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로 조금은 거리를 둔답니다. 제가 스페인 사람들이 다 옳다고 쓴 게 아니라, 이 사람들 사고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예방 접종을 자주 하여 반려견이나 반려인의 건강에 힘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방 접종을 매번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도 모르는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된 상황에 대비하려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게다가 입식 문화를 하는 이곳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외출한 후에는 일일이 반려견의 몸과 발을 닦아주지 않습니다. 외출(집안에만 가둬두지는 않는 스페인 생활상)은 하루에 두 번 이상 하는데, 거리에서 흙이나 잔디에서 뒹굴다가 들어온 개가 침대에서 함께하는 일은 꺼려지는 게 정상이겠죠. 개에게 들러붙을지도 모르는 진드기와 흙 등이 함께하기에는 부담스러우니 그렇지요.
개는 아주 사랑하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그 사랑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더 강하답니다.
아무튼 게시자께서도 본인의 반려견을 아주 사랑하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고요, 아무쪼록 제 글에 개의치않고 본인 방식대로 무한대 사랑을 베풀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저는 게시자님께 아무런 이의도 없습니다. 본인 방식이 맞다고 한다면 그것도 맞습니다. (남에게 피해 안주고 본인 방식으로 사랑하는 일을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또한, 개 훈련장이 따로 있어 주말이면 야외에서 다양한 훈련을 통해 다른 반려견과의 화합과 접촉에도 무리가 없도록 합니다.
► 비반려인은 아무리 개가 귀엽더라도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
개는 본능적으로 공격적인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적대적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동기가 되는 행동은 삼가야만 하지요. 또한, 반려인도 개가 함부로 타인을 향해 뛰거나 짖지 않도록 매너 교육도 함께 해야 합니다.
이상 스페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 행동하고 있는 펫 티켓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스페인의 반려문화는 제도적으로 마련된 환경이 시민 행동의 명확한 에티켓으로 작용하여 혼동을 없애 참 좋았습니다. 제도가 잘 되어 있어 혼동을 없애는 문화의 한 면모이기도 하죠. (간혹, 스페인만 그런 게 아니에요~ 하실 분이 있으나 제가 다른 나라에는 살아보지 않아서 스페인 관련 펫 티켓만 다루었습니다.)
한국도 요즘 펫 티켓 캠패인이 진행되면서 시민의 인식 또한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반려동물은 개인의 변덕이 아닌 책임으로 키워야 함은 마땅하고, 반려문화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구성원 간의 조화로운 에티켓으로 함께하는 미래 삶의 한 방향입니다. 서로에게 도움과 행복이 되는 환경으로 키워나가야 할 우리의 작은 과제이기도 하지요. 요즘 반려인의 인구가 늘면서 한국의 반려문화도 굉장한 속도로 변화되어 나가는 듯합니다. ^^
'스페인 이야기 > 교육, 철학,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엄마들이 아이를 혼낼 때 주는 벌 (18) | 2018.02.24 |
---|---|
나를 당황하게 한 스페인식 나눗셈, 한국과 조금 달라요 (48) | 2018.02.22 |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아이들 대화로 본 스페인 교육 (20) | 2017.12.23 |
일반인도 야생동물 구조가 가능한 스페인 환경정책 (12) | 2017.08.23 |
스페인에서 배운 '새'를 사랑하는 법 (10) | 2017.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