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언니나 여동생,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통적 문화생활 양식이 된 것처럼 제 어머니께서도 아버지가 벌어오시는 월급을 관리하셨지요. 그래서 보통의 한국인들은 이런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부부마다 독특한 자신만의 돈 관리법이 있긴 있겠지만 말이지요.
어제 읽은 어느 한 포스팅에서 국제부부의 돈 관리가 따로따로 진행된다는 것을 보고 아주 흥미로워 산똘님께 물어봤습니다. 스페인에서도 부부가 돈 관리를 따로 하는지 말입니다. 대답은 스페인 사람 유형이 아주 다양하여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국처럼 여자가 대부분 관리한다, 는 이런 인식에 대해서는 "아마도 과거에는 스페인도 그랬을 거야."란 대답만 하더군요.
특이한 것은 이 산똘님 부모님 세대에는 부부가 통장을 공동 관리했다는 것입니다. 두 분이 맞벌이하셨는데 벌어온 돈은 고스란히 공동 통장으로 들어가 살림과 교육 등에 쓰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럴까요? 우리 부부도 결혼했을 때부터 이런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어제 곰곰이 다시 따져보니 우리 부부가 공동 통장을 관리하는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몇 가지 보였답니다.
스페인 결혼법, 은행의 착취(?), 가족 전통......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더라구요.
☞ 그럼 스페인 결혼법으로 먼저 볼까요?
스페인에서는 결혼하자마자 재산이 공동 소유로 된답니다. 재산 분할 동의안에 대한 서명이 없는 한, 결혼한 부부는 50:50의 재산권을 가지게 된답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이 결혼하기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와 결혼하여 돈을 착취하는 심경이 들기 때문이지요.
집 명의, 차 명의 등이 남편 이름으로만 되어도 이혼 시에는 절반은 아내의 몫이 된답니다. 이 법은 결혼하고 육아와 살림으로 돈을 벌지 못하던 여성을 위한 보호 차원에서 시행되었다고 하는데요, 요즘은 이혼 시 남자들에게 큰 사슬이 되어 힘들게 한다네요. (이혼 시, 재산 절반을 떼어주고, 아이들 교육비도 부담해야 하니 말이지요.)
그래서 자고로 남자가 돈을 벌든, 여자가 돈을 벌든, 다∼부부의 공동 재산이 되는 것이지요. 세금 신고 기간에도 이런 장점을 이용하여 부부는 공동 세금 신고서를 내면 훨씬 이득을 볼 수 있답니다. 우리 부부는 자고로 돈을 벌어 같은 통장에 넣고 세금 신고할 때도 같이 하여 가족이라는 명분에 따라 세금 공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이 평생 돈을 벌지 않고도 (가사일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여) 남편이 일하고 퇴직한 후에도 남편 연금으로 생활하고.... 그 후 남편이 사망한다면 남편 연금을 물려받을 수가 있답니다. 신기하죠?
☞ 다음은 은행의 횡포(?)가 되겠습니다.
산똘님과 제가 통장을 공동으로 갖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은행의 유지비가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니, 은행 통장 갖는 것도 유지비를 내야 하는 일입니까? 처음엔 그러질 않았는데 최근 1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온 것이 스페인 은행이랍니다.
스페인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은행 등에서 새 정책을 쓴다 어쩐다 하면서 통장 관리비를 엄청나게 많이 올렸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관리, 유지비는 1년에 약 90유로(13만 5천 원) 정도가 나갑니다. 통장 유지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카드 사용료도 있습니다. 한 달에 약 6유로(9천 원 정도)...... 그러니 우리 짠돌이, 짠순이 부부가 결정한 것이 다른 통장들은 다 없애고 하나만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수입, 남편의 수입은 한 통장으로 다 들어간 것이랍니다.
산똘님은 이 통장마저 없애려고 합니다. 인터넷 통장을 개설하여 유지비를 줄이자는 명목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여기는 스페인 고산이라 마을에 있는 유일한 은행을 사용하는 편리를 위해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답니다.
☞ 가족의 전통
서양인이라고 해도 다 자기 돈은 자기 것, 당신 돈은 당신 것!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산똘님은 아내에게 자신이 번 돈을 다 주고 용돈만 받는다면 진정한 가사 분담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더군요. 자신도 가사 분담을 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통장에 얼마의 돈이 쌓이고, 얼마의 지출이 필요한지 한 눈으로 보고 싶었나 봐요. 마트에 가서 꼼꼼히 분석하고 체크하여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것, 한마디로 이제는 가정을 생각하는 그런 지출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생각나 자기를 위해 함부로 돈을 쓸 수 없다네요.)
이 전통은 산똘님의 스페인 가족으로부터 전해지는 것 같네요.
산똘님 할아버지께서는 돈을 직접 관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께 생활비를 드리면서 관리를 하셨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먼저 세상을 뜨시고, 통장의 돈을 찾으러 간 가족은...... 은행 통장에 할아버지 명의만 되어 있어 가족 누구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다 은행의 횡포(?)이네요. 통장주가 상속인이나 공동소유자 등을 정하지 않아 이런 불행이 온 것이지요. 그래서 그 돈은 다 은행의 소유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사건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사건이 제 결혼 초에 일어났는데요, 산똘님에게는 충격이었나 봐요. 그래서 통장도 공동명의로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스페인에서는 공동명의가 되어 입출금할 때, 두 사람이 안 가도 되고, 한 사람만 가서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신용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답니다.)
물론 스페인 시부모님께서도 일찍이 이런 공동 관리를 운영해오셨습니다. 산똘님이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같은 부부이면서도 각자의 통장을 갖고, 통장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그런 부부의 삶이 참 신기하다는 것이에요. 일단 부부의 연을 맺으면 적어도 생존에 관한 이런 사안은 훤히 밝혀져야, 부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물론 이것은 산똘님 개인의 생각이랍니다. 부부마다 운영하는 방식이 개성적이니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그르다는 생각은 전혀 없답니다.
저도 제 개인 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1년 전부터 제 통장을 없애고 남편 것과 통합을 했습니다. (한국 통장만 유지하고 말이지요. 물론, 한국 통장에 입금되는 수입금 (돈) 내용도 남편에게 다 공개하면서 말이지요.)
남편이 벌어오는 모든 돈, 내가 버는 모든 돈을 한 통장에 넣고 관리를 시작한 것이지요. 좋은 점은 우리 가족의 수입, 지출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나쁜 점은 사고 싶은 것을 막 살 수 없는, 충동구매 없는 것이 단점(?)이 되겠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딸 셋을 두고 있어 부부 사이의 신용은 더 강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 아이들이 학교 간 후, 남편과 오붓이 먹은 영양 라면입니다.
어쩌면 산똘님 경우가 특이한 것일 수도 있네요.
자신이 벌어오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가족 모두의 돈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히는 남편 말이에요.
외국인 아내가 무직 상태에서도 기죽지 않게 공동 통장을 운영하면서 생활비를 꺼내어 쓰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말이에요. (서양인이 이런 태도를 보이기가 쉽지 않다고들 하던데...... 그러고 보면 산똘님은 타고난 가정적 남자네요. 앗! 남편 자랑으로 끝나고 싶지 않은데...... 아무튼, 그래서 꼬치꼬치 지출을 따지는 남편은 짠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500유로 벌고, 남편이 2,000유로 번다고 해도 2,500유로는 우리의 것이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남편이 참 고맙기까지 하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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