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유럽이라 해도, 아무리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라고 해도, 직장 상사를 어려워하는 건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한국보다는 덜한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요, 직장 상사에 대해서는 다들 피하는 모습은 한국과 같답니다. 정말 말이 잘 통하는 개인적 관계면 몰라도 직장 외에 따로 만나 관계를 나누는 일은 그다지 흔하지 않답니다. 저도 스페인에서 직장 생활을 몇 년 해본 적이 있어, 다들 피하면 피했지, 일부러 시간을 내 직장 상사와 만나 자기 생활을 망치려(?)고는 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스페인 남편이 자신의 직장 상사를 집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것도 1박, 잠자리 제공과 저녁 식사와 아침 식사 포함해서 말이지요.
사실, 남편의 직장 상사는 자연공원 관리 공단장이라고 해야 할까요? 최고의 행정 관리를 하시는 분이라 대외적으로 정치가, 지역 주민, 신문사, 방송국 등 자연공원 대표로 만나 일을 처리하시는, 한마디로 권위가 있으신 분입니다. 권위가 있다는 것과 권위적이라는 말은 구분해야 하겠지만, 권위가 있으신 분이 오신다니, 괜히 걱정되었답니다. 권위적인 관료가 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사실, 이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자연공원을 순회 방문하십니다. 그래서 마을 호텔에서 1박 2일이나, 2박 3일 정도를 예약하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일을 보십니다. 그런데 가끔, 마을 호텔에서 위생 정비 등의 문제로 1주일씩 문을 닫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답니다. 그러니, 남편이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직장 상사를 초대한 것이죠!
"호텔이 문을 열지 않으니, 우리 집으로 오세요!"
그도 그럴 것이 해발 1,200m인 이 고산 마을에서 적당히 잘 곳이 어디 있나요? 게다가 다른 직원들은 이웃 마을에 집이 있으니 더 어렵고 말입니다.
"남편~! 어떡하지? 걱정이네. 저녁은 뭐로 준비하면 좋을까?"
"걱정하지마. 뭐든 잘 드셔."
사실, 남편의 직장 상사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상사랍니다. 행정 차원에서 봐 주는 것 하나 없이 정확하고 깔끔하게 법에 근거하여 일을 해결하시는 분이라고......
그러니 더 걱정되었지요.
하지만, 그날 우리 집에 오셨을 때는 그냥 평범한 60대의 남성으로 보였답니다. 물론, 권위가 살아있어 어려웠기는 했지만......
하필 그날 저녁에 한 음식이 카레 오믈라이스였는데...... 이곳 사람들에게는 생뚱 맞는 음식으로도 보일 만한 데 아주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저녁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니......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나시더니, 싱크대에 가서 설거지를 하시는 것이지 뭡니까!
'어?! 설거지하시려나......!'
모른 척하고 저는 딴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남편과 직장상사의 대화를 들어보니......
"이렇게 숙식 제공 받는데 설거지라도 해야지."
하시는 겁니다.
저는 우리 집에 오신 손님 중에서 이렇게 나이 드신 분이(특히 남자 손님 중) 설거지를 한 사람이 한 번도 없어서 속으로 굉장히 놀랐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남편이 지난주, 두 번째로 또 자신의 직장 상사를 초대했습니다. 저 날도 같은 이유에서 초대되어 오신 거죠.
그런데 우리는 요즘 아이들 놀이방 페인트칠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짐을 옮기고 벽에 페인트칠하고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답니다. 이날 남편은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하더라고요.
"여기 이 책상 옮겨야 하는데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하여 이날 저녁에도 남편의 직장상사는 짐도 옮겨주시며, 같이 도와주시며 그렇게 우리와 시간을 보내셨답니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시는 이 관료께서 이렇게 고분고분 도와주시는 모습이 저에겐 참 큰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매번 오실 때마다 맛있는 과자와 특이한 음식 등을 싸 오시던데,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줄 야자 대추와 맛있는 아침 식사용 말린 과일 등을 챙겨오셨답니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이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느낌이 듭니다. 항상 친절해야 할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고, 굽신거릴 필요도 없고, 공적인 일에서 벗어났을 때는 정말 아무리 권위적인 직장 상사라 해도 호의를 받으면 그 호의에 보답하는 그런 배려는 참 보기 좋았습니다.
어른이라고, 높은 직위의 사람이라고 아랫사람들이 해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의 모습이 합리적이라 참 좋았습니다. (물론, 스페인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분명히 있지만 말이지요.)
남편도 직장 상사라고 아부하거나 아첨하는 일 없이 평소의 모습 그대로 상사를 대하니 이 또한 좋았고요. 정말 이런 모습을 보면, 사람하고의 관계는 부담이 없는 스페인이 참 편안하게 받아집니다.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저도 더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쥐어짜서 다음에 또 만날게요. 아디오스~!
<추신> 산들무지개가 여러분과 자주 만나고 싶어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유튜브 산들무지개 채널에 오셔서 구경하고 가세요. 다양한 에피소드의 영상이 많거든요. 그래서 가끔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영상으로 제작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해발 1,200m의 소소한 스페인 고산 생활을 담담하게, 화려한 기법이나 럭셔리한 생활 모습이 아닌 진솔한 모습으로 친구 만나듯 여러분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냥 가끔 오셔서 진솔한 소통 함께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Copyrightⓒ산들무지개 all rights reserved
♥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 ♥
☞ 스페인 고산평야의 무지개 삶, 카카오스토리 채널로 소식 받기
'뜸한 일기 > 이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친구가 만들어 준 유럽식 육회 (7) | 2018.11.15 |
---|---|
맞교환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 (6) | 2018.11.05 |
한국말이 재미있어 박장대소한 남편과 그의 친구 (9) | 2018.08.30 |
안면 없는 직장 동료에게 집 내준 남편 (24) | 2018.08.09 |
직장인 스페인 친구의 도시락, 어떤 음식 구성일까? (20) | 2018.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