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남편은 총 4주의 휴가를 냈습니다.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에 사는 우리 가족은 한국에도 가고 싶었고, 동남아에도 가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한국에 못 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어디에 갈까 고민하다, 아이들 침대를 파는 카디즈(Cadiz)라는 스페인 남부로 여행가게 되었답니다. 2주를 카디즈에서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1주일 보내고, 나머지 남은 일주일은 스페인 북부로 여행 가기로 했답니다.
2018/07/30 - [한서 가족의 여행기/2018년 여름, 안달루시아 여행기] - 뜬금없이 예정 없던 곳으로 휴가 가게 된 사연
그런데 우리에게는 집을 비울 때 드는 불안감이 아주 컸답니다.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 인적이 드문 이곳, 사람들이 많지 않아 도둑 때문에 고민될 때도 있답니다. 물론, 이곳에 살면서 한 번도 도둑을 맞은 적은 없답니다. 스페인의 치안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유럽이 개방된 곳이라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도둑을 일삼는 일이 적지 않아졌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러시아 군인 출신의 조직이 외진 집만 털어간 적도 있다고 하니 그냥 넘겨 들어서는 안 될 일로 변하고 말았답니다.
이 외진 곳까지 와서 도둑질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지만, 휴가 떠나기 전, 우리 집 건너 한 집에서 왕창 도둑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걱정을 놓을 수는 없었답니다. 세상에~! 이 외진 고산까지 와서 훔쳐 가다니!
그런데 여름 휴가철이 되면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매년 여름이면 마을에서도 누군가가 도둑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하니...... 결국 마을에서도 거리마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까지 생겼답니다.
사실, 우리 집에는 훔쳐 갈 게 없습니다! ㅜㅜ 가진 것이 없기에 훔쳐 가도 다 괜찮은 물건들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몇 년 전에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제가 무게 나가고 값나가겠다는 금딱지를 다 모아서 어디엔가 숨겨놓은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건망증 때문에 어디에 숨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으니 도둑도 못 훔쳐 가겠다 싶습니다. ㅡ,ㅡ; (도둑아~! 제발 찾아주라~!)
이놈의 건망증!!!
하지만,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는 건 정말 무섭고도 불안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집을 비울 때 좀 걱정이 들었지요.
"나는 상관없는데...... 가진 것도 없고...... 중요한 물건도 없으니......!"
이렇게 남편에게 말해줬죠. 하지만, 남편은 해결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친구들에게 우리가 없는 동안 사용해달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상주하겠다는 친구가 없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이 외진 곳에 와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그렇게 휴가를 그냥 떠났습니다.
하지만 꼼꼼한 남편인 산똘님은 휴가지에서도 집 걱정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어서 털려도 괜찮다고 하는 건 안 되지! 내 것은 내가 지켜야지!"
일념 하나는 강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키냐고 냐고 냐고 냐고~~~ 아고~~~
"걱정하지 마.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하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열심히 해결책에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전구가 밝혀지는 듯한 표정으로.....
"맞다! 휴가 동안 나를 대신할 동료가 이곳에 올라온다고 했지! 그럼 그 동료에게 우리 집에서 보내라고 하면 되겠네~!"
그럽니다. 모르시는 분을 위해 잠깐 설명해드리자면, 남편이 일하는 곳은 자연공원이라 외지에서 대체 공무를 처리해주려고 온답니다.
"아~~~ 남편! 그런데 그 동료를 잘 알아?"
"아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 누군지도 몰라."
뜨악~~~ 모르는 이에게 우리 집을 다 내주자고? 순간 도둑보다 더 걱정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집 청소 잘 정리하지 않고 나왔는데......, 우리 집 불편하지 않을까? 등등
"뭐, 어때? 그 친구한테 전화 한 번 해봐야겠어."
하면서 전화를 하니, 정말 남편의 직장 동료는 발렌시아 도시에서 올라와 남편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게다가 자연공원 내 수도원 도미토리 방을 빌릴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옳거니!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가서 내 휴가 기간 내내 거주해 주세요. 방 빌리지 않아도 되고, 집에 있는 물건 다 써도 되니 괜찮아요. 우리는 도둑이 걱정되어 부탁하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요."
그렇게 하여, 그 안면 없는 남편의 직장 동료는 우리 집에 4주간 머물게 되었답니다.
"남편, 나는 모르는 사람한테 집 빌려주는 게 너무 이상한데?"
이런 소리가 제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 소릴 듣고 있던 아이들도 한 마디 합니다.
"아빠, 그 아저씨가 우리 거 훔쳐 가면 어떻게 해?"
역시,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합니다. 남편은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면서 이런 소릴 합니다.
"그 아저씨가 훔쳐 가면 가서 따지면 되지! 왜 훔쳐갔냐고. 우리 회사 사람이니까 누군지 이미 알잖아. 하지만 도둑은 만나서 따질 수도 없으니 이 아저씨가 훨씬 나아~~~"
그제야 우리는 안심하고 휴가를 즐길 수 있었지요.
그리고 휴가 2주 지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2주의 휴가가 남았기에 남편이 부탁한 그 직장 동료를 드디어 집에서 만날 수 있었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모르는 이가 우리 집에서 집을 지키고 우릴 반기는 모습이......! 그런데 아주 자연스럽더라고요.
전에 만난 사람들처럼 남편과 그 직장 동료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더라고요. 덕분에 우리 집 고양이와 닭은 보호를 받았고, 지나가는 이들도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함부로 집 근처에 어슬렁거리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분도 아이 둘 키우는 아빠이고, 공통점 많은 자연애호가였습니다. 정말 좋은 인연이 되었네요.
살다 보니, 뜬금없이 어떤 일이 생기고, 어려울 것 같은 인연도 가끔 찾게 됩니다. 매사에 부딪히는 문제를 열린 마음으로 풀어가는 남편 덕에 이번에도 좋은 경험 하나 했습니다. 세상은 그냥 훌훌~ 자유롭게 살다 가는 그런 여행지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 것이 뭐가 중요하다고...... 내 것이 중요하다면, 남과 나누는 것도 내 것을 지키는 한 방법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네요. 모르는 이에게도 서슴없이 우리 집을 나눈 남편의 한 수가 딱 통했습니다!
남편이 내준 우리 집이 손님 덕에 더 풍요로워진 듯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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