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이야기/교육, 철학, 역사

한국인이 흔하게 쓰는 표현 '혼혈', 스페인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

산들무지개 2020. 5. 2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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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에서 대중적으로 쓰는 단어 '혼혈', 스페인에서는 왜 이 단어를 보편적으로 볼 수 없을까요?




첫째가 태어난 후, 지인에게 아이를 소개할 기회가 참 많았습니다. 때로는 마을에서 장 보며 이웃에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들이 직접 찾아와 축하해주곤 했죠. 그런데 개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아~! 아이가 참 예쁘네요. 스페인 사람과 한국 사람의 'mezla(혼혈)'가 참 특이하게 예쁘네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평소 한국에서 자주 들어 온 '혼혈'이라는 말 때문에 아무런 반감이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평소 보던 아이들과 달라 예뻐서 그러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스페인 시부모님이나 지인들은 이 '혼혈'이라는 단어에 조금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쉽게 '혼혈 아기', '혼혈 모델', '혼혈 000' 등 수식어로 붙여서 사용하곤 하더라고요.

유튜브나 블로그에 심심찮게 '혼혈 아기의 2개 국어 습득'이라는 타이틀 등으로 본 적이 있어 정말 흔한 표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은 이 '혼혈'이라는 단어와 관련되어 부정적 느낌이 별로 없어 그런 것 같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좀 달랐습니다.



"Mezcla(혼혈)? 이 아이들이 '동물'도 아닌데 이런 단어를 써?"


"지금 어느 시대인데 '혼혈'이라는 단어를 써? 

인간은 유일하게 종이 하나밖에 없는데 혼혈이라고 해도 될까?" 등등


이런 식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더라고요. 백인 & 흑인 혼혈, 백인 & 황인 혼혈 등 이런 표현은 거의 쓰지 않더라고요. 더군다나 아기들에게도 '혼혈 아기'라는 표현은 더더욱 쓰지 않더라고요. 


그렇다면 상식 있는 스페인 사람들은 왜 이 '혼혈'이라는 단어를 꺼릴까요? 스페인에 18년 정착한 글쓴이의 소견으로는 역사적 배경에 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다름 아니라, 카스티야 왕국이 라틴 아메리카를 정복했을 때, 가톨릭 포교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1503년 하나의 정책을 발표합니다.


"카스티야 (스페인의 옛 왕국) 인과 원주민 간의 후세는 

본토인과 같은 합법적 권리와 대우를 누리게 된다"


이런 정책으로 초기에는 원주민 혼혈 자식과 카스티야인 자식들이 같은 위치에서 권리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흐르면서 '악랄했던 그 당시의 시대상을 유추해 본다면' 상상하듯이 절대 평등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답니다. 자연스럽게 신분 계급으로 나뉘게 됐던 것이죠.


그래서 카스티야인은 순수 혈통이 되고, 그렇지 않은 흑인과 원주민, 카스티야+원주민 혼혈 등으로 나뉘어져 신분제가 유지되었답니다. 대표적인 호칭은 여러분이 아시듯이 메스티소(mestizo)와 물라토(mulatto)가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내용을 잠시 요약하면 메스티소는 이렇습니다. 


대개 라틴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는 유럽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인종적 혼혈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원래 에스파냐어로 에스파냐 제국 시대에 라틴 아메리카의 유럽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혼혈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오늘날에도 이런 의미로 계속 쓰이고 있다.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우 해당 지역 토착민과 유럽인 사이 혼혈을 뜻하기도 한다.

물라토는 다음과 같고요. 

물라토(mulatto)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을 말한다. 외모가 다양하여 검은 피부와 매우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물라토가 흑인보다 조금 더 처우가 나았다고 한다. 19세기 아프리카에서 물라토는 백인과 흑인의 중간자적 역할을 하였으며, 백인들은 이들을 잠재적 아군으로 보았다. 이런 현상은 흑인들이 서로 피부색을 기준으로 '더 하얀' 쪽을 우월함의 기준으로 삼는 부작용을 낳았다.

위의 내용에서 보셨듯이 이렇게 피부 색깔에 따라 명칭이 달라졌답니다. 그런데 혼혈 비율 정도로 세부적으로 명칭이 달라지기 시작했답니다. 다음은 계보 맵인데요, 그 당시 혼혈 명칭을 참고해보시길 바랍니다. 


참고 맵: De Daniel Riaño Rufilanchas - Trabajo propio,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4172214



여러분, 어때요? 정말 다양한 명칭으로 계급이 분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그런데 에스파냐 왕국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통치하던 많은 강대국에서 같은 형태의 계급 분류를 했더라고요. 


어쨌거나 이런 역사적 사실로 여러분들은 금방 짐작하셨을 거예요. 이런 혼혈 비율 명칭 구분은 당연히 인종차별을 유발했다는 것을...... 당시 피부가 흰 그룹은 상위였고, 검을수록 열등한 집단에 넣었지요. 차별과 멸시, 단지 피부색으로 신분을 결정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미 지나 되돌릴 수 없지만) 참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랍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 정복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정복'보다 '발견'이라는 용어로 회개하고 과거의 역사를 바로 보려고 한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이런 의견을 보이더라고요) 


어쩌면 이 '혼혈'이라는 단어가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인종차별의 또 하나의 표현이 되니까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없어 '혼혈' 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 차별적 언어를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스페인서는 이런 단어 자체를 요즘에는 쓰지 않고 꺼린다는 것 또한 알려드립니다. 


요즘에는 국제적 에티켓의 시대라 소소한 표현 방식에서도 이렇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 여러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서양인들의 눈을 찢는 행위를 싫어하는 것처럼 그들도 한국인이 '혼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그런 소소한 에티켓 말입니다. 


'혼혈'이라는 차별적 표현, 더는 쓰지 맙시다.


이제는 이런 차별적 단어를 조심하면 어떨까 싶어 글을 써봅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 보내시고요, 저는 정말 더 자주 찾아뵙도록 노력할게요. 요즘 아이들 휴교령에 컴퓨터 점령당해 매일 미루다 보니...... ㅠㅠ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자주 포스팅 올리도록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 


* 이 글은 누가 인종차별 더 많이 하고, 적게 하는지 논쟁을 벌이자고 쓴 글이 아닙니다. 스페인 현지 생활을 하면서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쓴 글입니다. 소모적인 논쟁이나 혐오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자고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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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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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들

스페인 해발 1200미터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서 펼쳐지는 다섯 가족의 자급자족 행복 일기세 아이가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향해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간다. 무슨 꽃이 피었는지, 어떤 곤충이 다니는지, 바람은 어떤지 종알종알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들은 종종 양 떼를 만나 걸음을 멈춘다. 적소나무가 오종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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