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자연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산들무지개 2022. 3. 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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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200m 스페인 자연공원에 근무하는 남편 산똘님이 퇴근하다 길에서 새 한 미라를 발견했어요. 파닥파닥 날지 못하고 뱅뱅 도는 새가 도롯가에 있었다고 해요. 자세히 보니 머리에 피가 조금 흘렀고, 감긴 왼쪽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네요. “세상에! 이 작은 새는 어떤 사고로 이렇게 됐을까?” 산똘님은 지나가는 차에 새가 부딪혀 도롯가에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었어요.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큰 사고(새의 입장에서)를 당할 이유가 없다면서요.

 

우리 가족은 때 되면 가끔 다친 새를 구조해 와 보살핍니다. 죽은 새를 가져와 관찰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구조돼 온 새들은 무사히 잘 살아 돌아갔어요. 작은 보살핌으로 기운 차린 새들은 한두 시간 안에 날아가기도 하고, 며칠 정도 머물다 날아가기도 했어요. 이렇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흐뭇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구조한 새는 걱정이었어요.

 

 

구조한 새는 솔방울의 열매를 먹고사는 잣새입니다. 한쪽 눈을 크게 다친 것 같았어요. 하루 지나니 부운 눈의 붓기가 사라져 괜찮아진 듯 보였어요. 그런데 삼일째 되는 날, 새는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물 잘 받아마시고, 준비한 잣물(모이)도 잘 먹었어요. 게다가 기운을 낸 듯 날개를 파닥이면서 엄청나게 날갯짓을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힘을 쓰지 못하고 머리를 날개 죽지에 파묻고 있었어요. 그러다 저녁무렵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산똘님은 머리에 이상이 생겨 그런 것 같다고 해요. 날개도 멀쩡하고, 두 발도 멀쩡한 상태였거든요. 눈이 보이지 않아 방향 감각이 없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괜찮다고 생각한 새가 보는 것 이상으로 크게 다쳤다는 걸 알았어요. 어쩌면 뇌출혈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나고 자라 이런 생태적 순환에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좀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물론, 내가 잘해주지 못해 죽은 것 같은 죄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보살피는 법을 잘 몰라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죄를 묻거든요. 하지만, 인터넷을 뒤지고, 조류학자에게 문의하면서 새를 살리려고 했지요. 그렇게 최선을 다했어요. 

 

역시 이번에도 자연의 법칙 하나 알았네요.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온 우주의 기운을 다해, 원하고 바란다고 모든 일이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것...... 누군가는 그 기운의 바깥에서 희생도 되어야 이 순환적 삶이 이유가 있는 거죠. 아니, 희생이라기보다는 단순하게 바라는 일에서 제외되더라도...... 그 의미는 상당하다는 걸요. 

 

남편과 첫째가 만들어 놓은 새 먹이통에 찾아온 새 - 비 오는 날 큰 위안이 된 먹이통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는 것. 저도 겸허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만약 나에게 불행이 온다면 그것도 감수하면서 의미를 되새기며 가치를 부여해봐야겠다 여깁니다. 예전에 [죽음의 수용소]를 읽고 크게 감동 받은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지요. 유대인의 입장에서 수용소에서 죽음을 넘나들며 우리는 왜 죽어야 하나... 괴로워했던 저자가... 나중에 이 죽음으로 세상의 온전한 정의가 바로 설 수 있고, 역사에 기록될 것임을 알기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네요. 유대인이라는 한 개인의 죽음은 그냥 가치없이 사라진 게 아니라, 세계인이 옳고 바른 사고로 살 수 있도록 해줬다는 것...

 

나에게만 온 불행은 온전히 나의 탓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의 행운을 뺐은 것도 아닙니다. 남의 행운을 질투해서도 안 되고... 내 불운은 어떤 의미가 반드시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조금의 위로를 나에게 합니다. 오늘 새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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