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이야기/생활, 문화

스페인 사람들의 남의 옷 물려입기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5. 1. 2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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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옷 물려 입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스페인 사람들 



제목만 보면 참 정겨운 스페인 사람들이죠? 사실, 어제의 포스팅에 우리 부부의 친구 가족이 항상 아이들 옷을 물려준다는 내용을 썼습니다. 그 내용을 읽으신 몇몇 분이 스페인 사람들 참, 정겹다고 해주셔서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정겨운 것도 있지만, 사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뜨악한 부분도 있었답니다. 


뭐,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그런 말이 있듯이 제가 처음에 스페인에 살면서 경험한 몇몇 부분들을 소화한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를 해드립니다. 소화가 다 되어, 전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옷 물려받는 방법인데요, 여러분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실지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아이들 옷 물려받는 것은 한국이나 스페인이나 비슷하다.


물론 남의 집 자식 옷 물려받아 입히고 싶지 않으신 분들도 많겠습니다. 개인적 취향이라 결벽증 같은 성격을 가지신 분들은 남이 입던 옷을 자신의 자식에게 입히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부분이죠.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에는 다들 넉넉한 성품의 친구, 이웃들이라 아이들 옷을 물려 주고 물려받는 것을 아주 당연시한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딸만 셋인데요, 이 의류비에 상당한 지출이 갔을 텐데요, 고맙게도 친구나 가족 중 아이들 나이보다 많은 자식분을 가진 사람이 많아 항상 옷을 물려받습니다. 몇 번 빤 옷은 새 옷보다 더 깨끗하다고 누군가 전해준 것을 보니 한국에서도 이 물려 입기를 애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른의 세계에서도 물려 입기가 있을까요? 



스페인 고산 이웃이 즐기면서 옷을 물려 입는 방법은 바꿔입기이다. 


우리의 스페인 고산 이웃은 옷을 경매에 부치기도 하고 바꿔입기 등으로 자신의 옷을 처분한답니다. 특히 이곳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유행에 떨어진 옷은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은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모은 옷을 가지고 아무개 집으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옷 꾸러미를 펼치고 쇼(쑈! 쑈! 쑈!)를 한답니다. 


한국식으로 골라! 골라! 그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환호를 하면서 여자끼리 얏호! 옷 꾸러미를 열죠. 그럴 때면 남자들은 밖에서 기웃기웃거리다 잠시 들어와 의견도 내고 또 자기한테 맞겠다 싶을 여자 옷도 골라보죠. ㅎㅎ 너무 웃기죠?

 

그렇게 옷을 득템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photo: noticias.mujer.es)


내 옷을 모니카 씨가 입고, 마리아 호세 씨의 옷을 내가 입고, 여자 시장님 벨렌 씨의 옷을 로시오 씨가 입는 식으로 그렇게 바꿔입는답니다. 옷 바꿔입기가 끝나고 며칠 후의 풍경에 우린 하하하! 너무 잘 어울려~하면서 배를 잡고 웃기도 하죠. 옷은 돌고 돌아서 내 옷이 몇 사람 손으로 거쳐 갔는지 모를 그럴 희한한 풍경을 접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다 영~ 인기 없고 유행에 따라가지 않을 옷은 옷 재활용 수집 장으로 직행을 한답니다. ㅎㅎ


(비스타베야 오시는 여성분들, 이 옷 바꿔 입기, 너무 재미있으니 한 번쯤은 참여해보실래요?)


이런 모습들은 저에겐 참 좋은 풍경이랍니다. 그런데 저를 뜨악하게 한 풍경은 다음과 같답니다. 



쓰레기장에서 발견한 옷을 입는 친구도 있다. 


여러분 상상이 가지 않죠? 아니, 쓰레기장에서 옷 발견하고 그것을 입어? 저도 처음엔 뜨악했습니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이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은 별로 보지 못해 저도 뜨악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쓰레기장에 삐져나온 옷을 발견하더니 그럽니다. 

"오우! 거의 새 바지야! 싹 빨아서 내가 입어야겠어. 치수도 내 건데?" 

헉! 헐~! 소리가 막 나서 "넌 거지도 아니고, 이게 뭐니?" 했더니 친구는 저를 더 이상하게 보더군요. 

"뭐가 어때서? 깨끗하게 빨면 되지. 이것 봐. 새것이잖아?" 합니다. 


이런 경우엔 정말 문화 충격을 받고 어쩔 줄 몰라했답니다. 아마도 젊은 시절이라 젊은이들이 돈에 궁색해서 그랬지 않았나 지금은 생각이 된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뜨악한 옷 물려 입기도 있었답니다.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어보세요.



돌아가신 분의 옷을 물려 입다니?!


어느 날, 스페인 이모님 내외가 우리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날은 선선한 날이라 두꺼운 옷을 필수로 입으셔야 했죠. 이모부님이 아주 좋은 재킷을 입고 있으시길래, 역시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이 한국인 조카가 이런 말씀을 드렸답니다.

"오......! 이모부님! 재킷이 너무 멋져요!"


그랬더니 이모님이 하시는 말씀, 

"으응, 이 옷은 우리 직장 동료 남편의 옷이야. 글쎄 오십 줄에 급작스럽게 저세상으로 가서 내 친구 미망인이 됐어. 옷장에 남편 옷이 수두룩한데 그냥 버릴 수도 없고, 또 아주 좋은 옷들이라 아는 사람들한테 선물로 줬어~. 그래서 받아온 옷이 바로 이 재킷이야. (카톨릭식 성호를 그으면서) 아! 잠든 이가 평안하소서!" 하십니다. 


앗! 전 처음엔 충격을 받았답니다. 

한국에서는 죽은 이의 옷은 터부시 되어 물려 입기는 커녕 항상 꺼리는 그런 일종의 거부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니 이것이 무슨 조화인가, 하고 놀랐답니다. 여러분은 놀랍지 않으세요?


그런데 남편도 어느 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새 양말과 손수건을 가져오더니 그럽니다. 할아버지와 내 이름의 이니셜이 같아서 이렇게 "J 표시"가 있네~, 하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물론 남편의 경우에는 할아버지의 온정이 느껴져 좋아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좀 달랐답니다. 스페인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때였답니다. 


스페인 시어머님께서 저에게 돌아가신 외할머님의 유품을 보여주시면서 그러십니다. 이것은 네가 가져라, 하고 말이죠. 상자에 봤더니 외할머님께서 고이 간직한 수많은 옷들이 들어있었답니다. 어떤 것은 한 번 입으신 고운 옷, 어떤 것은 한 번도 입지 않으셨던 새 옷, 여성성이 돋보이는 유럽 전형적 치마 잠옷, 오! 보기엔 참 예쁜 옷이었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분의 옷을 입는다는 게 좀 어정쩡 이상했답니다. 아! 난 극복을 할 것인가, 하면서 받아온 옷들......!


그런데 결국은 세월이 지나면서 그 옷들은 한둘 씩 다 입었답니다. 


손주 며느리가 입으실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셨을까요? 손수 뜨개질한 고운 옷, 유행에 지났지만, 외할머니의 유쾌한 성격이 들어간 가디건, 출산 전에 입었던 아주 고운 분홍색 잠옷(아마, 손주 며느리가 출산할 때 입으라고 일부러 남겨주신 듯 널널한 그런 치마 잠옷이었답니다.), 이 모든 옷을 한 번씩 입을 때마다 외할머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처음엔 너무 뜨악했던 이 스페인식 사고가 이제는 저에겐 그 장벽을 허물게 했답니다. ㅎㅎ

(그런데도 위의 이모부님처럼 돌아가신, 모르는 분의 옷을 물려 입는 것은 아직도 뜨악하답니다. ㅠ.ㅠ)



얼굴 표정은 보지 마시고, 제가 입은 옷만 보세요~. ㅎㅎ

첫째 딸 임신 때 입은 외할머님께서 직접 짠 옷입니다. 

오른쪽은 제가 아직도 사용하는 스페인 외할머니의 잠옷이죠. 

세 아이의 출산 때 입은 추억의 잠옷이기도 하답니다. 


가끔 스페인 친구가 재활용 센터에서 구입해온, 남의 옷을 입고 좋아하는 풍경을 종종 목격할 때가 있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사고가 조금 열린다면 이 풍경도 정겹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사고를 깨는 스페인 사람들 일상의 한 면이었습니다. (물론, 세계 어디서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 아시죠?) 


 이 글은 [스페인 고산평야의 무지개 삶] 제 블로그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by 산들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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