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먹거리

우리 모녀 향한 외국인 남편의 쌀 고문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5. 3. 2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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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고립 상태 5일째입니다. 비가 너무 내려 어디든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요. 흙은 진흙이 되어 차로는 도저히 평야를 가로질러 나갈 수 없고, 물은 흙길을 봉쇄하며 차오르고 있어 나갔다 봉변당하기 일쑤입니다. 날 좋은 봄날 이것이 무슨 일이냐구요? 스페인은 4월에 비가 가장 많이 내립니다. 그래서 4월은 아구아스 밀(Aguas mil, 천개의 물)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뜻은 4월에 내리는 강우량이 많다는 뜻입니다. 비가 잘 내려주지 않는 발렌시아에서는 '4월에 내리는 (적은) 비는 1년 쓰기에 적당한 비'라는 말이 있답니다. 4월에 비가 내려주는 것만으로 1년 비로 충분하다는데....... 그래서 우리 집 물저장탱크가 빵빵해져 행복합니다. 그런데 4월도 아니면서 무슨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느냐 말이에요. 3월이나 4월이나 봄 오는 시기이니 비슷하리라 보고 이렇게 제가 주절이 말씀드려봅니다. 


문제는 아빠와 아이들이 지금 5일째 감기 바이러스 동굴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않는다는 겁니다. 아! 저기 출구가 보인다, 하는 징표도 없이 다 시커먼 터널에서 골골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 왜 이렇게 튼튼하냐 말이에요. 밤새 병시중 다하고 일어나도 이렇게 거뜬하니 미치겠네요. ^^ 사실 지금 낮잠 다 재워놓고 여러분께 이렇게 안부 포스팅을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립 상태가 되니 비상식량 때문에 우리는 지금 한치래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특히 밥 좋아하는 누리가 말이에요. 


우리가 고립되기 전, 남편이 도시의 중국 식료품 가게에서 쌀 한 포대를 사온 것이 있어 안심하며 있었는데요, 며칠 전, 쌀이 다 떨어져 이 중국산 쌀을 먹게 되었어요. 남편은 2킬로나 되는 중국 쌀이 한국 쌀과 비슷할 것으로 보고 사온 것인데...... 이 남자가 상표도 안 보고 사 와 문제가 되었답니다. 


문제는 그 쌀이 한국 산도, 중국 산도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럼 어디? 바로 태국 산......!


밥을 하니 훌훌 날리는 쌀



저는 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태국산 쌀을 정말 한 번도 집에서 해본 적이 없어 어떨까, 했지요. 

하루 먹으면 참 맛있는데, 이 쌀을 여러 날에 걸쳐 먹는 것이 좀 힘들더라고요. 남편에게 발렌시아 쌀을 사러 가자고 타이르기까지 했답니다. 그때가 고립 직전이었지요. 


"뭘, 태국 쌀이나 한국 쌀이나 다 똑같구만! 뭐가 다르다고 그래? 이왕, 쌀 사온 것, 다 먹고 우리 다른 쌀 사자."


안습똑같긴 뭐가 똑같아! 뭘 몰라 하는 소리지!


전 이렇게 불평을 했어요. 아무리 외국인이라 해도, 스페인에서도 쌀 나서 이 남자가 쌀 맛을 좀 알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어요. 스페인 남자라고 해도 쌀을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쌀 구분이 잘되지 않는 것이었어요. 물론, 본인은 파에야용 쌀과 한국 쌀 구분은 철저히 한다고 우기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안습그리고 밥 맛을 보면 그것이 오래된 쌀인지,햅쌀인지 난 구분도 할 줄 안단 말이야.  


이 남자가 한식은 좋아하지만, 결코 매일매일 한식만 먹고 살 수 없다는 남자입니다. 또, 한식이 다 똑같다고 우기는 사람입니다. 밥-국-반찬, 반찬을 다르게 놓아도 다 같다고 여기니 한식은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 우기기도 한답니다. (물론, 제가 심술 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밥 맛으로 어떻게 오래된 쌀과 햅쌀을 구분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5일째, 고립에 들어가면서 파스타 바닥나고, 소면 바닥나고, 라면은 없었고,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 태국산 쌀밖에 없어 매일 먹게 되었습니다. ㅠ,ㅠ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이 쌀맛을 아는지 먹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양한 반찬을 해도 밥만 빼고 먹는다는 것입니다. 헉?! 


대답해이것 봐라, 남편! 아이들도 쌀 맛을 아는데, 우째 당신만 모르는 것이여? 

평소 국밥이든, 파에야이든, 한식이든 척척 먹는 누리!

먹는 신이 강림했는지 이 아이는 아파도 먹을 것은 다 먹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태국산 쌀에 화까지 내며 밥을 거부합니다. 


 화까지 내면서 밥 거부하는 아이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 남편! 우리 모녀한테 쌀 고문 확실히 했네. 

우리, 어서 고립에서 해방되면 쌀이나 먼저 사자! 아이가 이렇게 화 내니 무섭다. 


이리하여 산똘님은 크게 뭘 배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밥맛 구분에 대한 원초적인 입맛이랄까....... 쌀이라고 다 똑같은 밥맛을 내지 않는다는 그 절대적 진리를 말입니다. 그리고 쌀을 더 많이 먹고 산 이 한국인 아내의 '밥맛으로 쌀 구분하는 그 마법 같은 오묘한 입맛'에 대한 진실까지 가슴 깊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밥을 빵보다 더 좋아하는 고작 만3세인 자신의 딸, 누리의 저 밥맛의 다름을 이해 못한 아빠의 죄책감까지 느꼈다는 그 사실...... ^^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어서 이 흐린 하늘에서 해방되는 밝은 날을 기대하며 아자! 파이팅!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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