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람들은 '여유를 즐기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여유를 즐긴다는 것이 가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호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긴, 직접 친구들에게 이런 일에 대한 태도를 물어봐도 사람들은 '일부러 혹사하기 위해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한답니다.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필요한 만큼만 돈 벌어 자신의 진짜 삶의 여유를 즐기는 쪽으로 더 관심이 있더군요. 어떻게 보면 경쟁에서 도태되기 쉬운 발상이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사는데 있어 행복하다면 최고라는 이런 관점은 가히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더군요. 그래서 쉬는 주말이나 휴가 때는 가능한한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지난 주 오랜만에 휴일 점심에 초대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발렌시아, 오토바이 경주, GP로 유명한 체스테Cheste에 위치한 친구의 별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 별장이라 하니, 어느 분은 아! 부자시군요, 하시는데, 사실 스페인은 한국보다 땅이 3배나 크기 때문에 이런 제2의 거주지는 보통 서민이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가족이나 친구 중심으로 모임을 자주 하기 때문에 도시 외곽에 제2의 거주지를 두고 여유로운 만남을 가지기도 한답니다.
산똘님이 2년동안 아마추어 수제맥주협회 회원이 되어 만난 다양한 나이의, 다양한 직업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도 부부동반 만남에 자주 이들과 만나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요, 이번에 2015년 스페인 전국 수제맥주대회가 발렌시아에서 주최되어 그 뒷풀이 같은 만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한국 제주도에 정착하신 맥주 마스터 보리스 씨도 참석하여 빛내 주셨던 터라, 한국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주도 보리스 흑맥줏집은 폐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게 세를 더 내라는 제주도민의 어마어마한 요구로 폐업까지 갔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보리스 씨가 태극 마크 달고 각종 맥주 경연 대회에 나가 상도 받으셨는데, 제주도는 이런 인재를 방치한 것 같아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그런데 아세요? 보리스 씨의 전세게 followers가 엄청 많다는 사실......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 스카웃 제의로 궁리 중이시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카몬 씨 초대로 그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생각하니, 스페인에서 휴일 점심 초대를 받으면 각오해야 하는 것들이 떠오르더군요. 아! 점심 초대! 그럼 이 날은 체념할 것은 체념하고 이 점심 초대에만 시간을 다 써야겠군! 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점심 식사 시간을 정해주지만, 스페인에서는 마스 오 메노스(mas o menos, 더하기 혹은 빼기)로 통합니다.
카몬 씨가 전화 약속을 잡습니다.
"점심은 2시이고, 그 전에 오면 맥주 더 마실 수 있고, 그 후에 오면 파에야와 바베큐 먹을 수 있을 거야."
여기서 점심 2시라고 하지만 말이지요, 스페인 사람들이 말하는 약속 관념은 딱 그 시간에 와서 바로 먹는다는 뜻이 아니랍니다. 스페인에서는 점심 약속을 하면, 그 전에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심을 같이 만드는 경우도 있답니다. 특히, 휴일에는 말이지요. (평일 저녁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한 친구가 점심에 와! 해서 갔더니 아직 밥도 하지 않고 있어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밥 하지도 않고 점심 초대는 무슨 뜻이지? 어리둥절했었는데, 이런 모습은 친한 사람이 같이 식사준비하는 것으로 보여주더군요.
"점심 2시이지만, 아침 11시에 와서 천천히 전식을 준비할거야."
점심은 2시이지만 우리는 오전 11시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33명이 오늘은 이곳에 모인답니다.
그래서 일찍 도착하여 인사 나누고 도움도 드리고......
산똘님 손에는 자신의 수제맥주가 들려있습니다.
오늘의 주인장, 카몬 씨......
난 할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겨우 48세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
"한국의 보리스 씨께 건배!" 하시면서 포즈를 취해주셨습니다.
보리스 씨가 제 블로그 보실까요?
33명이나 왔으니 우리는 돌아가면서 인사, 안부만 나누는 데에도 한 시간은 걸렸습니다.
헉? 진짜...... 이것은 각오하세요!
게다가 스페인 인사는 뺨키스이기 때문에 33명을 돌아가면서 해야 하니.....
진짜 각오할 만 하죠? 상황이......
우리 보다 일찍 오신 분들이 이것저것 준비를 하십니다.
담소를 나누면서 이렇게 치즈와 과자로 분위기를 잡습니다.
주인은 장소를 제공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는 초대는 가끔 초대객이 음식을 합니다.
이번 모임에 우리는 멀리서 참석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별로 주문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후식이나 음료 등은 초대객이 준비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 만난 친구들은 우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각자 맡은 음식을 척척 해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33명의 초대객 식탁 준비하는 데에도 참 진빠질 텐데...... 스페인 사람들은 알아서 각자 재료를 가지고 와 이렇게 음식을 선보입니다. 그러니 주인 되는 사람은 장소만 제공하고 자질구레한 준비물만 챙겨주면 됩니다.
오늘의 메인 요리, 빠에야를 선보이실 두 사람!
두 사람이 빠에야 대회인 듯,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준비해주셨습니다.
이 빠에야 판은 아주 작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15인분입니다. ^^
빠에야의 달인이라면서 스스로 자처하여 30분 내에 만들겠다 하셨죠.
그리고 이것은 무엇이더냐?
스페인에서 유명한 까레타 데 세르도!
즉, 돼지머리입니다.
이곳에서는 돼지머리를 살살 잘 벗겨 이렇게 바베큐 하는 것을 최고로 치죠!
바싹하게 구워진 돼지머리를 잘게 잘게 잘라 시식을 합니다.
대파처럼 생긴 이것은 칼솟(Calçot)입니다. 대파가 맞는 것 같은데......
이것은 까딸루니아에서 전통적으로 이렇게 잘 구워먹는 음식이지요.
통째로 구운 칼솥, 칼솟(발음상 칼솟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먹을까요? 계속 포스팅을 읽어주세요.
자 칼솟이 다 준비되면 뜨거운 기운이 사라지지 않게 이렇게 잘 싸줍니다.
기가 막히게 오래가서 나중에 먹을 때 아주 뜨거웠습니다.
이것은 소고기보다 비싼 양고기 갈비 구이입니다.
양념에 잘 재워 구워낸 이 바베큐는 전식으로 다 먹었습니다.
대단하다...... 하긴 이렇게 음식 준비하고 대화 나누는데 3시간은 지나가니......
중간중간 이렇게 먹어주는 것이 기분도 좋게 하고 사람들도 즐거워하는 것이 참 좋더군요.
환상적인 홉합탕......!
이런 모든 음식을 주인이 아닌 초대객이 준비한다는 사실,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정해진 룰이 없는 것 같은 만남, 그런데 식사 때는 또 달라요.
식탁 준비는 모두 다 같이 합니다.
스페인에서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음식이 차려지기까지의) 손님의 협조가 요구되는 나라입니다. 손님이라고 차려주는 음식만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손님이 돕는다면 아주 좋아한답니다.
메인 요리인 빠에야가 완성됐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손님들은 우루루 몰려가 흩어진 의자와 식탁을 붙여서 큰 식탁을 만들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들 분주히 자기가 할 일을 알아 준비하더군요.
식사 시간 만큼은 흩어진 무리가 다 모여 다함께 공손히(?) 앉아 음식을 먹습니다.
손님의 환상적인 농담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식사를 합니다.
사람들 표정이 하나같이 즐겁지 않으세요? ^^
산똘님도 빠에야를 받고 좋아서 한 컷!
여기서 드디어 칼솟의 정체가 나왔습니다.
아! 저 시커멓게 태워진 대파를 어떻게 먹는거야? 하고 놀랐지만,
저는 이미 이 정체를 알고 있어 웃었지요.
이 칼솟은 샘킴님이 출연하셨던 EBS 세계견문록, [아틀라스]에도 나온답니다.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턱받이나 앞치마하고 먹는 음식이지요.
자, 시커먼 부분을 꽉 눌러 밀면서 까줍니다.
자연스럽게 까지더군요. 그럼 하얀 부분이 나타납니다.
슬슬 돌려가면서 소스를 묻힙니다.
그리고 고개를 위로 향하게 하고 입에 쪽 넣어버립니다.
파란 부분은 먹지 않고 그냥 버리고요.
(시커멓기 때문에...... ㅠ.ㅠ)
자, 산똘님 표정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식사, 후식 먹을 공간은 꼭 남겨두세요.
전 스페인에서 음식 먹고 끝인 줄 알았는데 후식이 나와 정말 힘들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메인을 배터지게 먹고 이제 좀 진정하는가 싶은데...... 우악! 후식이?!!! 스페인 사람들의 후식 사랑도 참 대단합니다. 이번 초대에도 메인 요리보다 더 많았던 후식입니다. 손님들이 가져온 것 대부분이 후식이어서 결국 풀지 못한 손님도 있었지 뭐에요.
쿠키로 만든 독특한 후식
티라미수와 코코넛 비스코쵸
안드레이(남자)가 한 후식, 정말 대단해요.
남자가 뭔 능력이 이리 좋으누?
사진에는 네 개밖에 없지만 사실은 후식 4개가 더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배가 부른 손님들은 맛볼 공간의 도를 넘어선 듯했습니다.
(저는 커피만 마셨습니다.)
´후식도 끝나고, 이제 집에 갈까?´가 아니라 세월아~, 네월아~ 대화하는 손님들
우리는 점심 식사 다 끝나면 집에 가는 것으로 아는데 스페인에서는 휴일 날 잡은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점심 후에도 놀다 가라는 의미이기 때문이지요. 노는 의미란?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다 풀어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스페인에서 휴일 점심 초대를 받았다면 이 부분은 꼭 각오하세요. 가끔 지루해질 수도 있습니다. 스페인어가 익숙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말이지요. 워낙 말도 빨리 하고, 대화 거리도 많고....... 머리와 꼬리가 일치하지 않는 테마가 수두룩하니 이것은 각오 철저히 하지 않으시면 좀 힘들답니다.
그런데 전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이번 모임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요,
스페인에서는 이렇게 자유와 여유가 넘쳐난다는 겁니다.
손님으로 와서 저렇게 잔디 위에 벌러덩 누워 시에스타까지 하니 말입니다.
사실 하루종일 버티려면 이 식후졸음증은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다들 눈 좀 부치고 다시 하자, 는 분위기로 됩니다.
정말 재미있죠?
산똘님도 가세하여 낮잠을...... ^^
사실, 저도 엄청 졸려서 그 옆에 누웠습니다.
잠깐 눈 부쳤는데, 정말 대단한 에너지가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오래도 버틸 수 있었지요. ^^
점심에 초대 받았는데, 헤어지는 것은 밤! 대단하다.
제가 항상 놀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점심 초대 받고 갔는데 돌아오는 시각은 밤이라는 것.......
하루종일 놀다, 가라는 말과 상통하듯 들립니다. 물론, 할일이 있어 오래 못 버티는 사람들은 일찍 돌아가지만 말이지요, 달리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사람들은 밤이 늦도록 같이 대화하면서 메리엔다(간식)까지 먹고 간답니다. 헉? 대단하죠?
이렇게 우리는 별별 다양한 테마의 이야기를 하다 밤이 되자 배가 출출함을 느낍니다.
수다떠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
지칠 것 같은 만남은 여전히 즐겁습니다.
다들 표정이 아주 즐거워요.
그리고 우리는 못다한 후식을 꺼내어 먹기 시작합니다.
만남이란 사람과의 교류이며, 그 교류는 관심과 대화가 아닐까 합니다.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관심 가져주고, 이렇게 맛난 음식으로 서로에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방식이랍니다. 이렇게 온종일 만나 무슨 이야기할 것이 그렇게도 많을까? 싶은데...... 이런 만남과 음식 문화는 여유로움에서 오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일을 덜하고 자주 사람 만나기를 원하는 이곳 사람들의 만남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지요.
※ 추신하자면, 이 포스팅은 제 경험에 따른 것이고, 지역마다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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