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갔던 에르바스(Hervás)는 옛날 유대인이 살던 지역으로 지금은 서민 정서가 흠뻑 넘쳐나는 정감있는 마을입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해드릴 도시는 서민 정서는 저리 가라, 장엄하기 그지없는 육중한 중세의 귀족 도시였던 카세레스(Cáceres)입니다. 카세레스는 옛날 상류층이 한 도시에 살면서 사회적 관계를 하며 친분(?)을 쌓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성벽으로 높게 쌓여있고, 건물도 석조 건물로 단단하기 짝이 없습니다. 중세 시대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으로 골목골목을 거닐 던 그 느낌은 발랄하기보다는 오들오들 마치 못 온 곳에 온 듯한 느낌이 났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요.
"저 서민을 당장 내쫓아라~!" 하는 환청보다는 장엄한 건물 사이의 왜소한 제 몸이 먼저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카세레스 옛 도시 입구로 들어가는 성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세 개의 엇비스듬한 아치가 참 독특했습니다.
옛날 마차가 들어오고 나갈 때 굽어진 길에 따라 이런 모양이 나왔네요. 왼손이 굽어지는 듯 길이 바로 굽어지므로 이런 형태가 나왔으니 참 그 지혜가 훌륭합니다.
이곳은 1986년 11월 28일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와, 오래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구나~!
우리는 도시에 진입하기 전, 한눈에 보이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성벽으로 꽉 둘러싸인 이곳이 진짜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저 건물들 하나하나 지금도 방치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니......! 꽤 긴 역사를 자랑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느낌은 딱 중세에서 멈춘 듯한~ 이 도시는 사실은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하던 이베리아 고유의 도시랍니다. 이곳은 이베리아 시대, 로마 시대, 무슬림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 세력이 지배하던 시대에 이런 모습의 전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관광 안내소에서 받아온 지도입니다. 우리는 이 지도를 들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안에서 한가하게 거닐었답니다.
자~ 상상해보세요.
저 옛날, 저 성곽 안에는 귀족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성곽 밖에는 농민과 하층민들이 농사하면서, 돼지 키우면서 삽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납니다. 누군가 쳐들어오게 되면 이들은 생계를 뒤로하고 성안으로 모여듭니다. 안전한 보호막을 찾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성 문은 꽉 닫히게 되고...... 전쟁이 선포됩니다. 성 안에 고립된 사람들은 과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재미있게도 이 도시에는 성 안 사람들이 마시고 사용할 수 있는 물 저장 탱크가 여러 곳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답니다. 그 물 저장소는 쭉~ 이 글을 읽으시면 나중에 절로 찾을 수 있답니다. ^^
우리는 천천히 옛날 도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좁은 골목골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저 작은 구멍이 뚫린 데코레이션이 전혀 없는 동그란 석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랍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15세기의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Carvajal 성을 사용하는 가족의 집과 탑이었다고 합니다.
또 산타 마리아 성당 귀퉁이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귀퉁이 모서리를 저리 깎고 형상을 채워 넣는 미가 아침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성 뻬드로(세인트 피터) 형상이라고 합니다.
이 성당은 르네상스 시대풍의 건축물이고요, 지금 위로 보이는 저 Gárgola들은 꽤 유명하답니다. 지붕 위에서 포효하고 있는 저 형상들은 지붕의 빗물을 받아 입으로 내뱉는 괴물 꼴 홈통 주둥이입니다.
스페인 건축법 중 하나는 파차다(fachada, 건물의 외면)를 상하지 않고 유지하도록 법이 있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은 어떠한 경우에도 파차다를 훼손할 수 없답니다. 저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면서 보니, 정말 간판도 없고, 특이한 장식도 없는 이런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성당에서 학교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뭘 하는지 보고 싶었지만, 워낙 진지해서 방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수학적 도형을 건물에서 발견하는 것인지, 건물을 그리고 수학적 계산을 하는 신기한 수업이었습니다.
같이 간 한국 친구가 물어보더군요.
"이곳은 장식만 도시인가......? 실제로 사람이 살기나 하나?" 하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스페인은 장식형 도시가 아니라 실제로도 사용하는 도시랍니다. 위의 스페인 국기가 달린 건물은 이곳 카세레스 도의회 건물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쓰이는 오래된 대문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나무로 현관을 만드는 스페인이 신기했는지, 친구는 또 유심히 봅니다.
"저렇게 굵게 단단하게 나무로도 현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
그러네요. 친구는 스페인식 건물의 모든 문이 이런 나무로 된 문이라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산 호르헤(San Jorge) 광장을 지나 예쁘게 솟아오른 성당으로 갑니다. 정말 예쁜 느낌이 나서 정보를 찾아보니 예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성당은 18세기 바로코 시대에 세워진 산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성당입니다. 아하~! 바로코 시대~! 역시 카세레스는 지나가는 건물 하나하나가 역사적 산물이구나~!!!
우리는 계단을 올라 산 호르헤 상을 보러 갑니다.
앗~! 용을 찌르는 저 모습. 딸 아이가 그러네요. 왜 용을 죽이냐구요?
우리는 용이 아주 좋은 동물로 알고 있는데...... 얘야, 너무 좀 크면 동과 서의 문화 차이를 이제 알게 되겠지?
성당 앞에서 내려다본 산 호르헤 광장입니다. 역시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부를 하고 있고, 작은 카페테리아가 눈에 띕니다. 작은 기념품 가게가 전부인 이곳이 그렇게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 타워(성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 귀족들이 소유하던 것들인데요, 어떤 귀족은 왕에게 반대했다는 이유로 타워의 반을 헐어 내렸다고도 하네요. 우와, 귀족들도 모여 살면 이런 참변이 있구나......
가끔씩 보이는 현지인들의 차~! 좁은 골목에서 차는 지나가야 하니 저렇게 벽에 꽉 대고 주차하네요.
이제 우리는 아주 흥미로운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Palacio de las Valetas라는 곳입니다. 옛날 발레따 성을 쓰던 가족의 대저택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카세레스 도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 유물, 유적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그 유명한 물저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16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요, 아랍 형식의 알히베(Aljibe, 물 저장소, 물 저장탱크)가 이미 세워져 있었습니다. 사실은 16세기에 만들어지기 전, 이미 무슬림 성이 있었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 건축물 특징 중의 하나가 모스크 위에 로마 카톨릭 형식의 성당을 짓는 그런 묘한 건축물을 가끔 볼 수 있지요.
우리는 역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눈여겨본 많은 것 중 예수가 태어나기 전, 이베리아 반도에 있었던 사람들의 유물이었습니다. 그 시기에도 다양한 기술로 많은 것을 제작한 것이 눈으로 보여 그저 신기했답니다. 여기서 잠시 보여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화살촉 및 농기구, 토기, 점토를 구워 만든 형상, 페트로그리포(돌에 새긴 이상한 형상) 등...... 이곳에서도 이런 문화적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습니다.
엑스트레마두라(Extremadura)답게 역시 그 당시에도 돼지가 있었네요. 사암으로 깎은 이베리아 돼지입니다. 이 지방은 도토리 먹은 돼지를 기르는 지역으로 꽤 유명하니 말입니다.
우와~! 옛날에도 저렇게 돌로 지반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길을 닦았습니다. 오늘날 하는 포석 작업과 같은 형태입니다. 역시~!
집안에서 쓰이는 자질구레한 물건과 소품들...... 정말 신기합니다. 로마 시대 전에도 저런 찬란한 것들이 있었네요. 섬세한 바늘과 유리 잔, 경첩, 오늘날 쓰이는 것 같은 철프라이팬(?)......
저는 너무 신기하고도 놀라워 입이 쩍 벌어져 감상했답니다. 물론, 로마 시대, 이슬람교도 시대, 크리스천 시대 등 다양하게 볼거리를 다 봤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문화 유적을 보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움이 됩니다. 그 당시 이 지역의 속속을 보는 듯해서 말입니다. 위의 사진 중 네 개의 다리가 있는 잔은 너무 특이해 한 번 올려봅니다. 아주 예쁘고 독특하네요. 저 시대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기원전입니다.
그리고 기원후의 유적들도 깊이 감상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혹시 카세레스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여운은 남겨둬야 하니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전쟁 상황 때, 성 안 사람들을 살렸다는 물 저장실로 갑니다. 아주 놀라울 정도로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방문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좁은 계단을 따라갔습니다. 연한 조명으로 보이는 기둥과 반사되는 물빛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아치형으로 무게를 견디는 저 기둥들이 무슬림의 계산이란 것을 이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물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 지하에 저런 물 저장실을 만들어 놓았네요.
스페인의 물 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아시죠? 비가 적게 내리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이 물 저장실도 빗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둥은 돌로 깎아서 만든 것이고요...... 무슬림의 영향으로 잘 계산된 이런 물 저장실이 한국의 첨성대만큼이나 저는 대단하게 느껴졌답니다.
지금은 물을 받을 이유가 없어 저렇게 물이 조금밖에 없지만, 예전에는 이 저장실 가득 물을 채워 넣고 전쟁에 대비했다고 합니다. 우와~! 대단하다.
그렇게 우리는 옛사람들의 경이에 감탄하면서 왜 카세레스가 세계인류문화유산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곳은 모든 것이 퇴적층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퇴적층 한 겹을 벗기면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또 한 겹을 벗기면, 또 새로운 것이...... 이렇게 반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은 이베리아 시대라는 퇴적층을 벗기면 그 시대가 고스란히 보이고, 로마 시대, 고트족 시대, 무슬림 시대, 크리스천 시대, 포르투칼 시대, 카스티야 시대 등등...... 다양한 퇴적층의 문화 유산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러니 세계문화유산이구나~!
우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성벽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광장 앞 카페테리아에서 은은한 커피 향에 취해 다시 여운에 잠겨봅니다~!
스페인의 문화가 찬란했던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구나, 새삼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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