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먹거리

우리 '식탁의 양심'에 대해 생각해볼 때..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6. 3. 1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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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제가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 하나를 하고자 합니다. 최근 몇 꼭지의 포스팅에서 저는 동물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습니다. 스페인의 성 안토니오 날의 동물을 위한 축제에서부터 동물이 다닐 수 있도록 비포장도로가 시골에서는 전형적인 모습인 이유까지 다양한 테마로 동물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칠면조를 키우며 보살피는 이유, 닭장의 암탉이 알을 낳아줘 기쁜 소소한 행복까지.......

그런데 어떤 분들은 포스팅의 본 내용과는 다르게 항의식 답글을 달 때가 있답니다.

"잔인한 스페인, 투우나 금지 해라"

"동물 학대나 하는 잔인한 인간들" 등등.

제가 투우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댓글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미디어로 알게 된 이런 정보는 결과만 보여주기에 잔인하기 그지없게 보입니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세상이 진실이 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투우의 수소가 얼마나 행복하게 산 소인지 아시나요?



이런 댓글을 다신 분은 분명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햄버거집에서 소고기 햄버거 하나쯤은 주문해 드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투우의 소와 햄버거집의 소를 인생 전체로 비교하자면 정말 불운하게 살다 간 소는 햄버거집 소이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육류 산업 특유의 그 통제하에서 살았기 때문이지요. 반면 투우 소는? 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려, 먹고 싶은 풀을 먹으면서 자라난 행복한 소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투우를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로 돌아가 우리는 왜 진실을 외면하려 하는가? 우리가 먹는 육류는 안정된 것이고, 남이 하는 투우는 잔인한 동물학대다? 우리는 왜 양심을 숨기려고 하는가? 여기서 저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음식 문화의 변화에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랍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잘 먹고 잘사는 시절은 없었다고 하지요? 생각해보세요. 불과 한 세기 전에는 고기가 먹고 싶어도 겨우 일 년에 한두 번, 무슨 명절이나 축제 날에나 가능했잖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원하기만 하면 어디서든 고기를 뚝딱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고기를 먹을 수 있다니?! 옛날 사람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노릇입니다. 그만큼 요즘 세상에서는 고기도 공장화되어 만들어낸다는 소리이지요. 파리에서 열린 OECD 세계 환경 대책 회의에서 자동차, 비행기 배기 가스량보다 많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육류 산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먹는 그 고기는 잘 키우기 위해 공장에서 기계식으로, 엄청난 먹이를 먹으면서(제삼세계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그런 먹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이산화탄소 배출을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 지구의 많은 부분이 비정상적인 순환을 겪고 있지요. 그렇다면 고기 줄이고 채소 먹으면 괜찮은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채소를 먹자고 겨울에 나지도 않는 신선한 상추며, 토마토며, 온실 속에서 자라난 그 채소를 공장화(?)하여 재배합니다. 오히려 채소 먹자고 외국에서 수입이라도 하면 그 수입하는 교통수단의 가스 배출량이 훨씬 많이 나오겠죠?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고기를 줄이는 것도, 채소를 적게 먹는 것도 아니랍니다. 우리 양심이 살아날 수 있는 식탁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식품이라도 그것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양심적 검열이 없으면 결과는 내 몸을 상하게 하는 식탁이 된답니다. 고기 맛있다고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채소가 몸에 좋다고 겨울에 나지 않는 것을 매번 먹는 것도 안 됩니다. 우리 식탁은 우리 양심의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동물 학대에서 식탁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네요.


다시 동물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미국 동물보호 단체에서 작년에 한국에서 30여 마리의 보신탕용 개를 구출한 사건이 이슈화된 적이 있죠? 아주 어두웠던 우리 사회의 한 면이었죠? 유기된 개를 환경이 열악한 철창에 가두어 놓고, 잔인하게 키우는 개의 이야기였는데, 저는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보신탕 문화의 찬반을 떠나 동물 학대의 그런 면은 개한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먹는 닭고기(돼지고기, 소고기 등)도 마찬가지로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고 죽임을 당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알고도 아주 당연하게 양심의 거리낌 없이 먹고 있습니다. 눈에 안 보이고, 모두가 묵인한다면 정상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그 닭장에서 얼마나 많은 인공조명과 호르몬이 닭을 비정상으로 삶을 살게 하는지 생각지도 못할 겁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받은 동물을 먹는데 과연 건강한 식탁이 될까요?  



(우리의 식탁은 공장이 아닌, 자연에서 얻어져야 합니다. 자유로운 토종닭▲)


언젠가 읽은 책, [오래된 미래]에서는 라닥인들은 집에서 키우던 동물을 죽일 때 동물의 희생과 죽음에 기도하고, 카르마를 잠재우며 감사히 먹는다고 했는데 그런 의식은 이제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만 국한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환경은 자판기에서 나오는 물건처럼 원하기만 하면 뚝딱 하고 바뀌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먹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참치, 새우, 채소 등등......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먹거리 앞에서 진정으로 내가 먹어야 할 것을 양심으로 찾지 못한 채,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동화 [돼지책]의 주인공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못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왜 다들 먹지 못해 안달일까?"



이렇게 좋아진 세상에 소박한 밥상, 내 양심이 즐거워하는 소박한 밥상은 어디 갔을까요? 제철 음식과 가끔 먹는 육류, 저장 음식, 슬로우 푸드, 음식에 대한 감사한 태도, 자연과의 조화에서 오는 진정한 소통...... 죽기 전에 한 번 크게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저도 요즘 지구와 육류, 인간의 음식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답니다. 양심의 식탁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고 있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서서히 양심 있는 식탁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답니다. 여러분도 "양심의 식탁" 한 번 같이 생각해봐요~!


재미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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