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부부

스페인 남편이 '세계 여성의 날'에 한 일

산들무지개 2018. 3. 9.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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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남편이 고민합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인데, 그날 온종일 시위와 오전 2시간 시위가 있다고 하는데 하나를 선택할 수가 있다네." 

이게 무슨 고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인 남편은 이날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있잖아. 하루 종일 시위하고, 회사에 나가지 않으면 약 100유로(13만 원 정도) 정도가 월급에서 깎여. 그리고 두 시간 시위에 나가면 그만큼이 계산이 되어 깎이고......!" 

그냥 회사 나가지 않고 시위하면 되잖아? 싶기도 한데요, 여기는 해발 1,200m의 스페인 고산이라 시위 나갈 장소도 없고, 나가더라도 알아주는 이도 없답니다. 단지, 회사에 연락해서 시위 참여했다고 연락하고 월급 깎이면 그만이랍니다. 

"아~~~! 남편, 그거 고민이구먼!" 

남편 입장에서는 참 큰 고민이죠. 회사에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깎이는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니고, 마음 같아서는 '그냥 고산인데 회사 출근하시구려~ 알아주는 이도 없는데~'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날이며, 저도 여성인지라 이런 소리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성의 존엄성과 생존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시골이나 도시나 다 함께 해야 하니 말입니다. 

스페인 전역에서는 이렇게 대대적인 시위와 참여 행사, 이벤트 등이 세계 여성의 날에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조기 퇴근시위가 열렸다고 하는데요,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최소의 인력이 요구되는 회사에서는 이 행사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제가 요즘 새로 일하기 시작한 반나절 직장이 그 일에 해당되었지요. 

"남편, 나는 새로 일을 시작했고, 최소 인력밖에 없어서 시위에 참여할 수가 없다네. ㅜ,ㅜ" 

그렇게 얘기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세계 여성의 날 당일이었습니다. 

▲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렌시아 시내 한 골목에서 시위 중인 친구들 

(평화 시위인데 왜 경찰들이 이렇게 많을까요? ㅡ,ㅡ;)


남편은 안절부절못하며 회사에 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이게 왜 고민일까? 싶기도 하지만요, 

일단 남편은 남성이며, 다른 남성 직장 동료들은 다 회사에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게다가 월급의 상당 부분이 깎이기 때문에 고민이 되기도 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날, 저는 반나절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이 떡~ 하니 있는 것입니다. 

▲ 결국,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서 새장이나 만들고 있었는데......


"남편! 결국,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어?"

"응~! 오늘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는데, 진짜 여성인 당신은 일하러 갔으니까, 내가 대신 시위에 참여했어. 게다가 여성들만 목소리를 높인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거든. 나 같은 남자도 여성을 지지하고 항상 응원한다는 것을, 불평등을 조장하는 집단이 알아 좋으면 해서......"

세상이 더 좋아지려면 개인 하나하나가 자기 뜻을 밝히고, 의견을 내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이게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 이 사회의 모든 집단이 같이 고민해서 발전해가야 한다는 소리가 참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맞잖아? 흑인이 인권을 외쳤을 때, 과연 흑인만 외쳤을까? 백인도, 아시아인도, 남미인들도 같이 외쳤을 거야. 지금도 외치고 있고...... 이렇게 세상에 깨어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어디서나 같이 외치기 때문에 오늘날의 이런 시대가 온 거잖아? 그것처럼 여성 인권을 위한 일은 남자도 같이 외쳐줘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남편의 깊은 속마음을 보여주니, 아~ 그깟 월급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습니다. 여성의 날을 맞아 그래도 몸소 시위에 참여하고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진다면 이게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우리 세 딸을 위한 미래 투자 말입니다. ^^

요즘 한국에서 미투(Me too) 운동과 위드유(With you) 참여 행진은 멀리 사는 저에게 참 큰 전율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여성이 이렇게 성장하고 있구나, 아직도 권력 때문에 억압된 많은 여성이 있지만, (실제로 저도 억압형 권력에 약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조금씩 나아진다는 희망이 생기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위드유를 외쳐주며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저도 행렬에 참여하며 힘을 실어주고 싶어졌습니다. 

남편 덕분에 여성의 날이 더욱 돋보인 하루였습니다. 결혼 15주년이 뜻깊게 다가온 날이기도 했고요.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들이 이 세상에는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곳에 많으리라 확신하면서 희망이 보인 날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화이팅!


♥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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