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아이

채식 고집하는 초등학생 딸이 다니는 스페인 초등학교의 급식 해결은?

산들무지개 2020. 10. 1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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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부터 우리 큰아이가 고기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얘가 왜 이러는가 싶었습니다. 인지능력이 생기고, 자기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면서 충격적(?)이게도 육류와 생선을 거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슬라이스 햄이나 작은 멸치는 줄곧 먹어서 얘가 이러다 말겠지 싶었답니다. 


* 이 블로그는 해발 1,200미터 스페인 고산에 터를 이룬 한국-스페인 가족의 생활담을 다루는 블로그입니다. 



"음식은 버리지 말고 골고루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단다. 편식하면 안 돼."



아이에게 타이르기도 하고 고기를 먹으라고 윽박(?) 아닌 윽박지르다 4학년이 다 지나갔답니다. 그러다 학교 급식 보조 선생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지요. 


"산드라가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고 자꾸 남겨요."


너무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채식을 선언하면서 실천(?)까지 하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도대체 음식을 버려가면서까지 이렇게 실천해도 되는 걸까? 이 남은 음식이 얼마나 아까워?!!! 😩 지금 우리 지구에는 굶는 어린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산드라가 충격적이게도 음식을 남긴다니 정말 큰 일이었습니다. 걱정도 앞섰습니다. 저도 양심적 식탁을 선언하면서 식탁에 오른 음식은 소중히 먹고, 환경오염이 되지 않도록 적당(소식)하게만 먹기로 했는데 말이지요. 산드라가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 버리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채식이라는 말을 줄곧 고집하면서 고기와 생선이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면 아낌없이 다 먹겠다는 말까지 선언했답니다. 


도대체 아이의 마음을 굳게 한 이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습니다. 해발 1,200미터 자연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아이가 동물과 자연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은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 이해는 했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답니다. 어른들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며 자꾸 압력을 주었지요. 


그런데 또 곰곰이 따져보니 제가 어렸을 때도 저도 산드라처럼 육식을 멀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소고기는 전혀 먹지 않았고, 돼지고기는 즐기지도 않았으며, 닭고기 가슴살만 조금 먹었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매번 우리 어머니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윽박지르곤 하셨지요. 그런 모습이 겹치면서 아이의 모습에서 저를 봤습니다. 




photo: fixabay.com


"고기를 먹지 않아도 이 아저씨처럼 크게 성장할 수 있단다!"



그러다 작년에 한국에 갔다가 만난 인도 친구에게 산드라는 큰 영감을 받게 된답니다. 인도 친구는 바라나시 출신으로 고기와 달걀을 전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이거든요. 그런데 체구가 보통 남자보다 훨씬 우람하고 키도 큰 친구였지요. 친구가 얼마나 산드라를 어여삐 여기던지...... 산드라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습니다.  


"성장기에 채식하면 키가 안 큰다고 어른들이 말해요. 그런데 이 아저씨 봐요. 얼마나 커요!"


그렇습니다. 세상의 다른 나라 사람들을 보니, 육류를 전혀 섭취하지 않고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게다가 산드라는 비건도 아니고, 달걀과 우유, 치즈를 좋아하는 아이이기에 성장기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됐지요. 그래! 어쩌면 인도 친구 말이 맞는지 몰라. 사람마다 자기 삶에 대한 기준과 가치가 있으니 자기가 결정한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했지요. 


산드라는 환경 보호에 눈을 뜨면서 세상의 평화, 자연, 공동체(생태계)의 의미를 자기 방법으로 습득하고 있었는지, 평화에 관심 가지면서 이 채식을 하게 됐더라고요. 간디의 평화주의를 공부했는지, 생명을 보호하고 채식을 실천하더라고요. 



그런데 학교에서 채식 급식을 마련해줄까?



그렇게 작년 한국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부터 채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아이에게 학교에서 음식을 버리지 않도록 채식이 가능한지 물어보게 되었답니다. 채식이 가능하지 않다면 집에서 직접 요리해서 도시락을 싸줄 각오로 학교 교장 선생님께 물어봤어요. 그런데 며칠 후 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아이가 채식을 원한다면 채식 급식을 지급하는 것은 학교의 의무입니다. 같은 의미로 신앙을 행사하는 다른 종교의 금칙 음식도 학생에게 내줄 수 없지요. 산드라는 채식 급식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와! 얼마나 명확한 대답이 오던지......! 정말 기뻤습니다. 그날 이후, 산드라는 학교에서 급식으로 채식을 하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음식을 다 먹는다고 해요. 각종 채식 음식이 다 식탁에 올라온다고 해요. 너무나 궁금해 급식 회사의 웹 페이지 메뉴를 봤더니 얼마나 다양하던지 깜짝 놀랐답니다. 




photo: cuinatur.com


특별한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에게 주는 메뉴도 따로 있었고요. 예를 들면 새우, 달걀, 땅콩 알레르기 아이들은 특별 메뉴를 선택해 먹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산드라는 만족하면서 학교의 채식 급식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답니다. 



아이 덕분에 우리 가족도 다시 자연과 환경, 평화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식탁...... 육식과 생선, 조화로운 음식은 최고이지만

요즘 넘쳐나는 세상에서 너무 쌓아두고 먹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물론 채식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채식주의를 고집한 어린아이의 결정을 존중해주는 일도 참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아이가 결심한 인생 첫 결정이니 부모로서 잘 보살피고 지지해주는 수밖에요. 



그래서 오늘도 우리 집 식탁에서는 채식과 육식이 조화로울 수 있도록 항상 신경 쓴답니다. 



아이가 언제까지 채식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자기가 선택했다는 겁니다. 아이들도 자기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번 에피소드로 저는 크게 느꼈답니다. 물론, 나중에 몸이 요구해서 육식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동안 내가 왜 이러는지 그 의미를 두고 선택한 삶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거죠.


물론, 많은 분들이 성장기에 있는 초등학생이 채식한다고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답니다. 작년에 이 포스팅을 올리려고 했지만, 많은 분의 걱정어린 댓글에 너무 부담스러워 그럴 수는 없었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 내년 9월이면 중학교에 갑니다. 그래서 한번 용기를 내 올려봅니다. 아이는 몸이 요구하는 필요한 영양소는 골고루 잘 섭취하고 있고요, 굳이 고기나 생선이 아니더라도 잘 자라고 있답니다. 😆 채식한지는 2년이 다~ 돼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요, 하루하루 편안한 일들 많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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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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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들

스페인 해발 1200미터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서 펼쳐지는 다섯 가족의 자급자족 행복 일기세 아이가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향해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간다. 무슨 꽃이 피었는지, 어떤 곤충이 다니는지, 바람은 어떤지 종알종알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들은 종종 양 떼를 만나 걸음을 멈춘다. 적소나무가 오종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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