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이 고양이 두 마리를 구출했다. 5년 전 마지막 반려견이 죽을 때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장담을 하셨는데 이번에는 고양이 두 마리를 구출해 집안에 들였다. 반려동물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이 막중해 늙은 나이에 제대로 키우지 못할 것 같다는 의미를 담고 말이다. 수십 년 동안 세계동물보호협회의 일원으로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두 분의 동물 사랑은 참 대단하다. 그동안 키웠던 반려동물은 전부 다 유기견과 유기묘, 제일 약하고 못 생기겨 사람들이 찾지 않는 동물들이었다.
마지막 유기견 루니는 어릴 때 구출돼 평생 함께 살았는데, 겁이 너무 많아 항상 사람들을 피해 숨어 지냈다. 제일 약하고 못생기고 겁도 많은 친구라 반려견 찾는 사람들이 제일 꺼려한 개였다고 한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그런 개를 입양해 노년의 삶을 즐기셨다. 루니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도록 자연에 함께 나가고, 여행도 함께 하며...... (스페인은 반려견과 머물 수 있는 숙소들이 꽤 있다) 그렇게 굴곡지지 않은 삶을 이 개는 살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동물 세계에 개입해 인간의 감정을 불어넣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제일 약한 사람이나 동물에게 동정이 가는 건 이 또한 인간의 감정이 만든 어떤 장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시부모님은 이번에도 고양이 두 마리를 구출해 수의사 검진과 예방 접종, 중성화 수술을 마치셨다. 이 고양이 두 마리는 유기묘라기보다는 집 근처에서 배회하는 고양이 무리 중 두 마리였다고 한다. 하도 싸움질을 해대는데, 요 두 형제 고양이가 제일 약해 코너에 몰리고 피를 보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럼 고양이 납치 사건인가?'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둥하면서 왜 굳이 야생 고양이를 보호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스페인 동물보호협회에서도 야생 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한 후 다시 풀어주는 일을 몇 번 한 것으로 알고 있어, 아마 그런 의미로 시부모님도 그러시지 않았을까 싶었다. (개체수 조절을 하면서 생태계 교란이 일지 않을 수준으로) 두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 마친 후 풀어줄 심산? 하지만, 이번에 시댁에 방문했을 때 고양이는 집 테라스에 있었다.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하시던 시부모님의 감정 변화가 일어났던 게 분명하다.
집 테라스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
번거롭게도 매일 청소해주고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이번에 유심히 이 구출된 고양이를 보니...... 이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이 고양이는 혼자 살기에 절대 자립해 살 수 없는 치명적인 장애를 안고 있었다!
하도 무리에게 공격을 당해 그런지, 뭐든 무서워하고...... 잘 뛰지도 못하는 그런 장애.....
걷기는 한데, 어찌 불안한 걸음... 게다가 입과 코는 살점이 뜯겨 이빨이 다 드러내 보인다.
이제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못 생기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그런 고양이란 것을...!
게다가 고양이로 살기에 능력마저 상실한 고양이란 것을...! 그러니 시부모님은 인간의 손길이 닿는 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이 고양이를 입양하신 거다.
그렇게 난 행운의 주인공인 이 고양이와 만나 오랫동안 시부모님의 생각을 읊었다. 그래 그래서였구나!!! 시부모님 덕분에 한낱 길고양이에 불과했던 이 고양이가 충분히 하나의 존재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테라스에 가만히 누워있는 이 고양이의 아픔까지 다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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