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 14세인 산드라는 한국 학교로 치자면 중2입니다. 스페인 학교에 다니며,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이곳 학기제로는 지금 중3에 막 올라간 상태이지요. 산드라의 나이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반응합니다. "오~~~ 그 유명한 중2병!!! 힘들지 않으세요?" 나는 한국에서 유행하는 이 신조어에 대해 잘 몰라 그 단어를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위키백과에 나오는 걸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어요.
중2병(일본어: 中二病, 厨二病 추니뵤)은 사춘기를 비꼬는 인터넷 속어이다. 일본에서 개그의 소재나, 가벼운 표현으로 사용되며 1999년 이주인 히카루의 발언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고 사춘기인 청소년들을 비하, 혐오하는 말로 사용된다. 사춘기는 주로 13~15세 사이에 오는데 15세에 오는 청소년들이 많아서 중2병이라는 표현을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중2병
이렇게 정의하고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비하, 혐오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사춘기 아이들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어른들 입장에서 표현한 듯합니다. 당연히 우리도 거쳤고, 지금의 아이들도 거치는 시기인데, 어른이 주도하는 이 사회는 우리의 아이들을 너무 귀찮고, 하찮게 여기지 않았나 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춘기를 잘 타협하고 대화하고 어떤 방향이든 너무 극단적으로 나가지 않도록 지도해 주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만의 고민도 있는 사춘기를 잘 보내게 하는 게 어른들의 책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전히 초보 엄마의 시점에서 우리 큰 딸이 이 사춘기를 보내는 걸 보면 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점점 고집도 세지고, 화도 잘 내고...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정말 큰 거짓말이 되겠지요. 하지만 어쩐지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산드라는 태어날 때부터 좀 시크한 성격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고, 낯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지요. 항상 수줍어하고, 타인과 대화하는 걸 싫어했어요. 그런 아이가 점점 감정 표현을 한다는 의미 같아서 저는 사춘기의 딸의 변화가 괜찮았습니다.
산드라는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은 잘 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에 대해 단호한 생각과 표현은 잘하던 아이였어요. 가령 채식주의를 선택한 일에서부터 동물 보호까지...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채식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이 글에서는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여려 항상 걱정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 받지 않을까...
안 좋은 일에 너무 신경써서 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을까... 새 학교로 전학한 후 적응 못해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사교적이 아니라 친구를 못 만나면 어떻게 할까... 옛 친구와 옛집을 너무 그리워 슬퍼하지는 않을까 등등...
한 번은 새로 이사한 후의 이웃 마을에 장 보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세 아이와 함께 이웃 마트에서 장 보고 나오는 길에 제가 한국말로 아이들에게 뭐라고 했나 봐요. 지금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래 이야길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나가던 스페인 청소년 세 명 중 가장 키 크고 덩치 큰 남자아이가 크게 뭐라고 하더라고요.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 듯하더니(아니면 중국어를 흉내 낸 것일 수도 있어요) 곧장 스페인어로 그러더군요!
"무슨 언어가 그래!"
제가 알아듣는지 떠 보는 듯 크게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스페인에서 하도 오래 살아서 저는 이런 소리에 크게 당황도 안합니다. 마치 남의 집 자식 대하듯 그랬지요.
"한국어인데 너, 나와 무슨 문제라도 있니?"
그랬더니 키 큰 남자아이가 당황해서 우릴 보지도 않고 앞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우리가 스페인어를 알아듣고 반응하는 게 너무 놀랐나 봐요. 그런데 옆에 있던 산드라가 망설임 1도 없이 그 아이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합니다.
"엄마가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저 아이의 정신에 문제가 있는 거죠!"
아! 저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조용한 산드라가 큰 소리로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할 말을 했다는 걸요! 알고 보니 스페인 청소년 사이에 중국어로 욕하는 밈이 있었나 봐요. 산드라가 그걸 알아듣고 '인종차별'이라는 걸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괘씸하게 저런 걸 배우고 타인을 욕하는 행위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거죠. 산드라는 못 배운 아이들이, 아니 인성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저런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 크게 말했던 것 같아요.
산드라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덩치 큰 남자아이가 가다 말고 뒤돌아서서 우리에게 그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진심이 우러나오는 말로 미안하다고 소릴 질렀습니다. 같이 가던 무리도 미안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또래의 산드라가 말한 한 마디가 그 아이들에게 크게 닿았나 봐요. 그 후로 그 이웃마을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남자아이도 도발하고 싶었던 청소년기에 있었던 것 같아요. 산드라와 학교 가는 방향이 같아 오가면서 얼굴도 이제 보겠지요. 아마 그 남자아이는 산드라를 보면 얼굴이 후끈거려 그때 있었던 일을 기억 속에서 가끔 꺼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사춘기에 접어든 산드라의 변화가 저는 참 반갑습니다. 좀 더 강하게 살아남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며칠 전에는 학교에서 발렌시아 도시 견학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 저한테 점심 도시락을 싸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곰곰이 생각한 후에...
"그러지 말고, 돈을 줄 테니 사 먹어~" 라고 말했어요.
산드라 또래의 아이들은 맥도날드나 버거킹, 스타벅스 그런 곳에 가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산드라도 원하면 그런 곳에 가서 사 먹어도 좋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한참 지난 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갈 수 있는 채식식당을 알려주세요. 한 번 가서 사 먹게요."
혼자?!!!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지만, 지금껏 산드라는 혼자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해 먹은 적이 없어 좀 놀랐습니다. 친구들하고 버거킹 같은 곳에 가서 사 먹기는 했지만...... 채식 식당에 가겠다고 하는 걸 보니... 좀 의아해했지요.
"버거킹에서 먹는 것보다 더 건강하잖아요. 그리고 발렌시아 시내 구경하면서 새로운 모험도 하고 싶어서요."
알고 보니 선생님이 자유시간을 넉넉히 준다는 겁니다.
처음으로 하는 도전이라 아침에 50유로를 쥐어 보냈어요.
그리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아이를 봤습니다. 오늘 하루가 신났는지, 아주 흥미로운 얼굴로 기뻐하면서 엄마에게 조잘조잘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산드라는 우리가 알려준 그 채식 식당에 갔다고 합니다. 그것도 혼자...
그 또래 아이들은 피자헛이나 맥도날드에 가는데 산드라는 혼자 모험을 하고 싶었다고 해요.
발렌시아 골목 골목을 돌며 헌책방도 구경하면서 그렇게 채식 식당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혼자 메뉴판을 보고 주문도 하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게다가 그 채식 식당은 도네이션 형식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아이 혼자 그 메뉴의 가치를 결정해야만 했지요.
식당은 가난한 이에게 부담이 없도록 기부제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맛있다고 생각되면 넉넉히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작은 힌트를 주긴 했지만 아이에게는 부담이 됐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드라는 아주 만족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최고의 가격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보통 '오늘의 메뉴'보다 좀 더 비싸게 20유로를 지불했다고 해요. (보통 서민 식당은 오늘의 메뉴 가격이 1인 분 12~16유로 사이입니다) 행복한 얼굴로 후식까지 잘 챙겨 먹은 아이는 다시 책방으로 돌아가 남은 돈으로 자기가 갖고 싶었던 책도 샀다고 하네요.
"돈을 남겨서 돌려주지 않아 엄마, 미안해요."
웃으면서 산드라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저는 그냥 아이가 기특했습니다.
"너 쓰라고 준 돈이야. 잘했어~!"
아이의 기쁘고도 활기찬 모습에 무척 기뻤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독립하려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제 스스로 삶을 꾸리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삶을 개척해나갈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이끌어야겠습니다.
이 글은 지난 해 11월 17일에 쓴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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