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람인 아이들 아빠, 그의 머리카락이 한국형 아줌마 파마머리를 넘어 살짝 머리산발이 돼 가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굵은 곱슬머리라 여자인 저도 가끔 그런 굵은 웨이브가 부러울 때도 있는데요, 그 부드러운 웨이브가 조금만 더 자라면 그 상태를 유지 못하고 산발이 돼 버리기 일쑤입니다. 남편은 그러기 직전, 평소 같으면 머리를 잘라달라고 난리입니다. 매번 제게 바리깡(?), 이발기를 갖다 주면서 부탁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일인지 머리 깎아달라는 말 없이 조용히 지나갑니다. 왜 이렇게 조용할까? 머리 깎을 때도 됐는데...... 참지 못하고 이제 머리 잘라 달라고 할 때인데...???
한참 지나도 남편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습니다. 아, 왜 그럴까......
알고 보니, 청소년이 된 첫째 딸아이가 아빠에게 머리를 깎지 말라고 했답니다. 오잉? 산드라가?!
“아빠, 이 머리 너무 멋져!”
평소 말수가 많은 아이도 아니었고, 칭찬도 그렇게 잘하는 타입도 아니었어요. 산드라는 사춘기라 매번 무슨 이야기만 하면 방어용 멘트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만 하는 아이였지요. 우리가 아이를 비난, 비판, 혹은 공격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아빠에게 칭찬을???
아빠는 산드라가 해준 그 말 한마디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있더라고요. 아마도 가슴속에서 뭔가 따뜻하게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았을 듯해요. 요즘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과 공부 사이에서 회의감을 가지는 아이가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고 있었는데... (청소년기 아이들은 항상 비판을 합니다) 아빠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고 자르지 말라고 합니다.
딸의 칭찬은 그저 머리 스타일을 넘어서, 자신이 아빠의 모습을 긍정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청소년 시기의 딸은 이제 자신의 취향과 감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어른은 아니지만, 점점 독립적인 자발성으로 사회에 발을 디디려고 합니다. 홀로 여행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같은 부류의 사람과 교류도 하고... 그런 딸이 아빠의 모습을 보고 ‘멋지다’고 말해주는 건, 그 어떤 칭찬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지요.
딸이 자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아빠로서 여전히 딸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확인!
어쩌면 아빠에게는 머리를 길게 유지하는 것이 조금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도 나이니만큼, 긴 머리카락을 감당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도 있지요. 하지만 딸이 그 머리를 보고 ‘멋지다’고 말해주니 자르고 싶어도 당분간은 자르지 않는 남편의 마음을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토록 바라던 딸과의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느낌..... 딸의 눈에는 아빠가 멋진 모습으로 비치고, 그 모습이 딸의 마음에 닿는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그래도 머리를 길게 둘 수 없는 일, 아마 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산똘님은 딸의 한마디에 여전히 긴 머리의 불편함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아이의 칭찬은 소중했고, 그 말이 주는 기쁨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오늘도 행복만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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