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인 우리 부부, 이제 머리의 흰머리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뭐, 외모에 그다지 신경 쓰고 산 사람들은 아니어서 우리의 외모 변화는 큰 문제는 아니지요. 그런데 마음이 변할까... 젊은 마음이 꼰대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그 마음에 신경을 더 씁니다.
어제는 남편이 일기 예보를 보고 나서, 어서 밭을 갈아야 한다고 유난을 떨더라고요. 제가 텃밭을 관리하는데, 텃밭 관리가 쉽도록 이리저리 막 피어난 풀을 제거해 주려고 했습니다. 저 혼자 하기에 절대 부족한데, 남편은 이렇게 힘쓰는 일에 투정 부리지 않습니다. 너무 자상하고 성실하고 다정해서 옆에서 못 도와줘 그저 미안할 뿐이지요.
봄, 싱그러운 풀과 꽃은 언제 보아도 설렙니다. 특히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려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 날마다 감탄사를 연발하지요. "아! 너무 아름답다. 제발 비가 조금씩이라도 자주 내려주면 좋겠다! 이 풍경 계속 보고 싶은데......!"하고 말이에요. 비 덕분에 부드러워진 흙을 만지면, 마치 오래된 추억을 끄집어내는 듯 반가운 기분이 듭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밭을 갈아야 할 시기.
그런데 밭 한쪽에 제가 작년에 처음 본 예쁘고 신비한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비롭게 피어나 보석처럼 보인 꽃이었는데, 알고 보니 지중해 연안에서 피어나는 야생의 들꽃이라고 하더라고요. 햇볕을 가득 머금고 피어난 그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너무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그 앞에 서서 이 꽃도 없애야 한다는 마음에 좀 안타까워지더라고요.
“이 꽃들, 예쁘지 않아?”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은 손에 모터 챙기를 든 채 제 시선을 따라 꽃을 바라보았죠.
“그러게, 꽤 예쁘네.”
"이 꽃은 플라티캅노스 스피카타(Platycapnos spicata)라는 꽃이래. 신기하게도 양귀비과의 식물이라네! 전혀 생긴 게 다른데 말이야. 그런데 가는 꽃대와 잎이 약간 비슷하기도 하다. 카탈루냐어로 푸마리아라고 하더라. 스페인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검색해도 없더라."
이렇게 설명하고 나니 더 아쉬워졌어요. 하지만 밭을 갈지 않으면 작물들을 심을 수 없었습니다. 꽃이 아무리 예쁘다고 텃밭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죠.
산똘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실실 웃으면서 기계를 작동시켜 흙을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을 따라 살랑이던 꽃들이 무심한 쇠날에 밟히고 흙 속으로 파묻혔습니다. 아디오스~! 그렇게 꽃과 이별하고 저는 텃밭 구석으로 갔습니다.
남편이 모터 쟁기를 돌리는 사이, 저는 작물을 수확했지요. 상추 몇 장과 루꼴라를 수확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텃밭에 이리저리 피어나기 때문에 뭐 또 볼 수 있겠지, 아직 저 구석에 이 꽃이 있으니 괜찮아~ 하면서 별 것 아니게 위로를 ㅋㅋㅋ 그렇게 그 와중에 작은 위로를 했습니다. 제가 꽃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인가, 좀 놀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편이 두 손에 꽃 다발 하나를 들고 와 제게 내밀었습니다.
“이거, 당신이 아까워하길래…”
남편의 손에는 푸마리아 한 다발이 있었습니다. 모터 쟁기의 날이 닿기 전에 급히 꺾어낸 듯 꽃대가 구겨져 있었지만, 여전히 생생한 봄빛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쫌~~~ 가슴이 뭉클해졌죠!!! 🌸 🌸 🌸 🌸 🌸
손안에 가득한 꽃 한 다발, 그 안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다정함과 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때로는 무심해지기도 하는데... 이런 일상 속에서도 문득 찾아오는 낭만적인 순간입니다. 낭만을 넘어 따뜻해지는 순간...
“밭은 계속 갈아야 하는데, 이꽃들 너무 예뻐서 파괴하기 미안하더라...”
미소가 귀여운 산똘님이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화병에 꽂아 둬야겠다. 부엌에 두고 감상하면 나도 행복하겠네. 고마워~”
남편은 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묵묵히 모터 쟁기를 잡고 기계를 돌렸습니다.
기계 소리가 다시 울렸고, 흙이 뒤집히며 밭이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제 품 안에는 여전히 봄의 한 조각이 남아 있었고요.
꽃은 텃밭에서 사라졌지만, 남편이 내게 건네준 그 한 다발의 꽃은 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피어 있을 것 같네요. 남편 고마워~ 이런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줘서...
오늘도 제 블로그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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