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가족

외국인 시부모님을 걱정하게 한 내 생일

산들무지개 2015. 1. 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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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람들은 생일을 축하하는 일을 아주 좋아합니다. 당연한 듯 생일에는 모든 가족이 모여 축하하고, 케이크를 자르며, 샴페인을 터트립니다. 물론, 선물은 놓칠 수 없는 생일의 하이라이트이지요. 


가족이 모여, 같이 (근사한) 식사하고 후식으로 케이크를 내옵니다. 생일 축하 노래와 함께요. 

여기서도 생일 축하 노래가 유니버셜한 생일 축하 노래와 스페인만의 독특한 생일 축하 노래가 있답니다. 노래가 끝나면 속으로 소원을 빌고 후우우우 불을 끈답니다. 그러면 샴페인이 빵 하고 터트려져 다들 놀라면서 잔을 따라 축배를 든답니다. 스페인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샴페인도 있을 정도로 스페인 사람들의 샴페인 사랑은 특별하답니다. 


아이들이 샴페인을? 네. 어른 샴페인 모방품으로 알코올 없는 탄산음료지요. 


샴페인이 끝나면 선물이 이제 준비 되고,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봅니다. 그 선물이 무엇인지 다 공개하고 다 함께 코멘트도 합니다. 엄청난 수다와 함께......



이렇게 즐거운 날이 생일인데, 저에게는 좀 생소하기도 하답니다. 

한국에서 그다지 생일파티를 하지 않은 이유도 있고, 생일에는 그냥 소소하게 미역국과 밥, 제가 좋아하는 고등어 자반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시부모님께서는 손자가 다섯이나 있기 때문에 매번 생일 준비와 선물을 준비하시는 것이 힘들어 보여 저는 이제 생일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답니다. 


"어머님, 아버님. 이번 해부터 저는 생일 파티에서 제외해주세요. 매번 준비해주시는데, 이제 손자, 손녀 생일 챙기시기만 하세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 제 생일은 챙기지 말아 주세요. 나이 한 살이라도 안 먹으면 좋잖아요." 

이렇게 나이 먹지 않기로 농담을 했지요. 


어머님께서는 "그래도 생일인데......" 하시면서 제 생일을 말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올해 정말 정신이 없어 제가 제대로 생일 날짜를 말씀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음력 생일을 지내기 때문에 해마다 생일이 바뀐답니다. 처음에 이런 음력 생일을 이해하지 못하신 부모님께서는 양력 생일에 선물을 주셨는데요, 제가 음력을 지낸다는 소리에 한국식으로 항상 음력 생일날이 되면 제게 선물을 해주셨답니다. 당연히 "올해 제 생일은 X 월 X 일이에요." 하고 꼭 일러드렸었죠. 


그런데 식구 11명의 생일을 항상 챙겨주시는 시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 제 생일은 그냥 축하 인사면 된다고 말씀해드렸답니다. 생일 파티 준비하는 일이 크리스마스 저녁 만찬 준비하는 일만큼이나 성대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선물까지...... 


연세도 드시는데 이런 많은 일을 준비하시는 것이 항상 미안했답니다. 가까이 있어 같이 도와드린다면 몰라도 말이지요. 



최근엔 두 분이 큰 수술을 하셨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임플런트를 위한 수술을 계속 하고 계시고요, 시아버지께서는 또 피부암 세포가 발견되어 여러 폐와 가슴 등의 조직을 도려내야만 했답니다. 또한, 시아버님은 눈 망막에 이상 물질이 생겨 제거 수술도 하셨고요. 이런 큰 수술 뒤에 역시나 면역력이 약해져 지금은 또 큰 감기에 고생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더욱더 신경 쓰이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엊그제부터 계속 시부모님께서는 제게 전화를 하십니다. 

"너, 이맘때쯤이 네 생일이 아니었니?"

"이번 해는 언제가 생일이니?"


저도 깜빡하고 있다가 그제야 놀라, 

"어머님, 정말 제 생일은 하지 마세요. 생일 이미 지나간 것 같아요."


12월 말에서 1월 초 즈음이 제 생일인데 어머님은 아쉬운 듯 그러시네요. 


"한국에 계신 네 부모님이 알면 아주 섭섭해 하실라. 생일 지나갔다면 할 수 없고, 그래도 지나간 생일 파티는 해야겠다." 그러십니다. 



그래서 오늘 찬찬히 제 생일이 언제인지 달력을 살펴보니 아직 지나가지 않았네요. 



어쩌면 이 두 시부모님의 큰 즐거움은 식구들의 생일을 챙기고 

식구가 다 함께 모여 축하해주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답니다. 

그 즐거움을 제가 없애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내 딴에는 한국식으로 큰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역시나 스페인식으로는 그것이 부담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의 진실이었던 것이지요.


시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아온 한국 며느리는 오늘도 

제 생일 축하 파티를 준비하시는 시부모님께 큰 은혜를 입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앞으로 제가 두 분의 생신 파티를 준비하도록 다짐했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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