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저는 스페인 비스타베야 고산에서 환경자원봉사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아자!!! ^^
한 달 동안 이곳에 오는 버섯 산행하는 관광객을 상대로 환경 보호 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통제하는 일을 하게 되었지요. 산으로, 평야로, 우리의 자연을 해치면서 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쓸데없는 훼손에서 보호하자는 목적에서 하게 되었답니다. 페페 아저씨, 이바나, 까를라, 그리고 솔 아줌마와 함께 다섯 명이 단합하여 발렌시아 주 정부의 후원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의미 있는 일을 해서 아주 뿌듯합니다.
게다가 아이들 학교 보내고 산으로 들로 산책하듯 하는 봉사 활동이라 더 좋고요.
앗! 오늘의 이야기는......
다름이 아니라, 요즘 마리아 할머니가 채소밭에 뜸하게 오셔서 그냥 생각에 잠기게 되어 할머니와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하렵니다.
처음 할머니를 만났을 때는 정말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답니다.
억센 발렌시아어를 쩌렁쩌렁하게 마치 제가 귀가 먹은 사람인 양 외쳐댔기 때문이지요.
할머니를 진정시키며,
"할머니 조용히 말씀하셔도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제야 허허허! 웃으시다 또 목소리가 커지셨지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귀가 좀 멀어져 그랬다네요.
할머니는 젊었을 때 농가를 다니면서 기타 치고 노래, 춤을 추면서 흥을 돋웠던 젊은 처녀였다고 합니다. 아주 활달한 아가씨였다니 그냥 상상이 막 갑니다. 그런 할머니를 제가 식겁 놀라게 해드린 일이 하나 있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참..... 재미있어요.
할머니 채소 밭이 있는 폰타날에서 막 농사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한국에서 정원사로 일하던 재부가 제게 한국 배추씨와 이것저것을 잔뜩 보내주셨더랬죠. 그중의 하나가 목장갑!
사진: www.dedosafe.co.kr
지금은 멀쩡한 한국 장갑이 없어 위의 사진을 참조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그 목장갑요. 반 코팅된 목장갑...... 그것도 시뻘건 색으로 코팅된 그 목장갑 말이죠. 스페인에서는 이런 식 장갑을 팔지는 않거든요. 반 코팅이 되어도 뭐, 녹색이나 회색 등으로 코팅이 되어 있거든요.
저는 그 장갑을 끼고 채소 밭에서 스페인 호미를 들고 풀을 뽑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마리아 할머님이 저 멀리서 헐레벌떡 오시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아?!" 하셨습니다.
아니, 오늘따라 할머니가 왜 저러시지? 앗! 피해야 하나? 하고 은근 가슴이 막 쫄아들기 시작했습니다.
막! 제가 일하던 밭으로 달려오시더니 제 두 손목을 퍽 잡으시면서......
"뭘 했길래 그렇게 피를 흘려? 조심혀! 아차(스페인식 호미)를 잘못 움직이다 다칠 수도 있어!"
그러시면서 제 손을 찬찬히 살피십니다.
"아?! 이게 뭐여? 피가 아니잖아?"
아이고! 할머니가 제 목장갑을 보고 식겁하신 거에요. 손에 피를 철철 흘리는 줄 알고......
이웃이 밭에서 손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에 할머니가 식겁하신 겁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쭈그리고 앉아서 밭일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놀라신 것이지요.)
"아.... 아.... 할머니! 아니에요. 이것은 한국에서 보내온 장갑이에요."
"아이고? 허허! 그려? 내가 주책 맞게 그랬네......!"
그러시면서 또 허허 웃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제 채소 밭에 자주 오셔서
이것저것 조언을 많이 해주십니다.
지금은 색이 다 바랜 목장갑입니다.
이 목장갑을 볼 때마다 마리아 할머니와 있었던 그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답니다.
제가 끼고 있던 목장갑에 식겁 놀라신 그 당시 여든이 막 되신 할머니의 반응이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새 여든넷....... 할머니는 작년에 백내장 수술을 하시고, 요즘은 외출도 가끔 하시는 것 같네요. 평소에 팔팔한 에너지를 자랑하시는 분이 참 일 년 사이에 퍽이나 늙으신 것 같더라고요.
암튼, 오늘은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하면서 그 당시 식겁해드린 사건이 너무 미안하고도 재미있어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 이 추억을 공유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저는 자원 봉사 일을 하면서 즐거운 하루 보낼게요.
아자! 힘찬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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