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자연

스페인 고산, 우리 가족은 지금 즐거운 수확 중

산들무지개 2016. 9. 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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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이라는 단어는 그 과정이 고생스러웠든, 즐거웠든, 손이 많이 갔든 간에 '결과의 산물'이라 어쩐지 그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어도, 보람찬 느낌이 들어가 있는 단어입니다. 가을에 지천으로 열린 열매에 내가 관여하지 않았어도, 위대한 자연의 풍랑을 스스로 헤쳐나온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선사합니다. 


해발 1,200m의 환경이 억척스러운 스페인 고산도 가을에는 어김없이 인간과 동물에게 나누어 줄 열매가 영글어 즐거운 수확의 기쁨을 줍니다. 4계절의 변화 일부를 어김없이 오감으로 느끼며 우리는 또 한 계절의 수확에 나섰습니다. 물론, 직접 노동하여 얻은 채소와 맥주, 음료 등 우리 손으로 얻은 것도 있지만요, 그냥 자연에서 자라난 야생의 열매들도 우리에게 수확의 기쁨을 준답니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담벼락에 서 있는 야생 배나무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엄마~! 익은 것 같아. 빨리 따서 먹어보자."


어?! 그렇구나.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야생 배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모든 것은 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 올해도 야생 배 설탕 절임을 해먹자."

그래서 야생 배를 따기로 합니다.



그런데 옆에는 포도 덩굴도 있습니다. 

야생 포도이지요. 아직 익지 않았는데에도 아이들은 잘도 익은 부위를 찾아 

집으로 가져옵니다. 

시고 신 이 작은 포도를 좋다고 먹습니다. 

슈퍼에서 산 것보다 더 좋아하는 간식거리입니다. 

아마도 자기가 직접 딴 것이라 더 가치가 발휘되어 그런가 봅니다.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채소를 구하러 텃밭으로 갑니다. 

무성하게 자란 풀과 무성한 단호박이 온 밭을 덮습니다. 

그래도 채소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오늘 먹을 채소는 근대, 방울토마토, 양파, 상추, 호박입니다. 

가끔 이렇게 채소 한 바구니를 수확해오는 날은 여느 슈퍼에서 채소 사는 것보다 행복합니다.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근처 산딸기 덩쿨에서 놀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자~!"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많이 땄니?"



"조금밖에 못 땄어요. 내일 다시 와야 할 것 같아요."

한국 조카가 보여줍니다. ^^


집에 돌아가기 직전, 이 덩쿨을 발견하여 조금밖에 못 땄다는 겁니다. 

"이거 누구 코에 붙여요?"


이 말을 조카가 하자, 큰딸이 어리둥절해 합니다. 

"왜 코에 붙여?"


여기서 또 빵 터졌네요. 

너무 없어서 누가 먹어도 티가 안 난다는 뜻으로 아이에게 말해주니 그러네요. 

"그럼 내 코에 붙여."

한국말로.


아이가 요즘 한국말로 언니랑 조잘조잘 말도 잘합니다. 

역시 언어는 써야 느는 실용적인 생활 도구이지요. 



사라는 갑자기 하늘을 바라봅니다. 

"저기, 비행기!"



하늘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는 가을~, 

그 안에 작은 비행기가 빛을 받아 반짝이며 어디론가로 급히 갑니다. 


이제 집으로 가자!



그런데 양 떼가 우릴 못 가게 시선을 고정합니다. 



양 떼도 이 가을이 좋답니다. 

어디든 나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작물을 다 수확했기에 온 들판이 자기들 집입니다. 


양치기 개가 다가와 인사해주고 다시 무리로 뛰어갑니다. 



저물어 가는 저녁녘 양 떼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안 합니다. 


"더 먹고오오오오오~"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은 어느새 딱총나무 열매를 따고 있었습니다. 

딱총나무 꽃은 봄에는 탄산음료를 만들고, 가을에는 이렇게 열매가 맺혀 시럽을 만듭니다. 

이 시럽은 감기 예방에 좋아 우리 아이들 음료가 된답니다. ^^



또 딱총나무 여린 가지는 치통을 낫게 해 보통 어린아이들에게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 주기도 하지요. 



앗~! 남편의 얼굴이 어느새 중후한 중년으로 변해있습니다. 


남편도 인생의 가을을 맞는 것인가? 



불과 8년 전의 남편은 이렇게 앳된 미소년(?)이었는데...... 

아이들이 생기더니 머리도 팍 자르고 중후하게 변하고 말았네요. 

그래, 우리 부부는 지금 인생의 가을로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딱총나무 열매를 이제 하나하나 따서 시럽을 만들 예정이랍니다. 



그런데 남편은 또 수확할 무엇인가가 있다네요. 

우린 어디로 갈까요? 



로사 할머니가 빌려주신 창고에 와인 발효조에 넣은 맥주를 보러 갑니다. 



와인 발효조에 남은 와인 발효성분이 맥주와 만나 특별한 맥주가 되거든요. 



조심스럽게 조금 꺼내어 봅니다. 



농도를 재고, 맛을 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맥주가 어떤지 또 꼼꼼히 기록해둡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요즘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네요. 

가을이라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지요. 


저녁에 거창하지는 않지만,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오손도손 앉아 하루를 마감합니다. 



앗! 그런데 그날 밤, 제가 사진 찍는 걸 깜빡하여 요 사진을 대체하여 마무리합니다. ^^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여러분도 이 가을, 마음으로도 즐거운 수확을 맺는 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으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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