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카스티야 이 레온 주(Castilla y León), 세고비아(Segovia)에는 월트디즈니사의 [백설공주] 만화의 배경이 된 멋진 성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성이 [신데렐라]의 배경에도 영향을 끼쳤다고도 하는데요, 실제로 가본 세고비아 성은 우리가 착각할 정도로 기묘한 장소에 마치 동화에나 나올 법한 모습으로 상상의 세계를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는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세고비아 성을 스페인에서는 '알카사르 데 세고비아(Alcázar de Segovia)'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성'이라고 오역하여 말하는데 사실 '알카사르(alcázar)'라는 단어는 아랍어 기원으로 성, 왕궁, 성관(城館), 성곽 등으로 쓰입니다. 보통 성벽에 둘러싸인 왕궁이 있는 요새를 뜻하기도 하지요.
세고비아 성은 에레스마 강(Eresma)과 클라모레스 강(Clamores)이 휘돌아나가는 작은 협곡에 있는데 절벽 위 붕 뜬 형상을 묘사하여 배의 앞머리와 같다고들 합니다. 실제로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아래로는 26m 깊이의 해자가 보는 이를 아찔하게 합니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땅을 파고 물을 채워 넣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마른 상태의 해자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후덜덜~! 왕궁의 뒤편에는 아슬아슬한 절벽이 적의 침입을 막아, 그야말로 요새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문서에 기록된 세고비아 성 건축이 이루어진 시기는 1122년이지만, 그 후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1862년에는 큰 화재로 목재를 사용한 천장이 다 타버리는 불운을 당하고, 화재 이후 20년 만에 다시 재건축 하며 우리가 보는 지금의 형태로 복원을 했다지요?
그렇다면 세고비아 성에는 [백설공주]에 등장했던 공주와 계모가 진짜 살았을까요? 사실 권선징악 동화적 요소는 없지만, 왕과 귀족 사이의 팽팽한 권력 탈취와 획득을 위한 일화는 어쩌면 동화보다 공포영화에 가까웠으리라 싶습니다. 세고비아 성은 왕의 거주지이기도 했지만, 한 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했다고도 하는데요, 지금은 박물관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포군(砲軍)과 포병(砲兵)에 관한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세고비아 알카사르 외관입니다. 정말 예쁘죠?
성의 모습을 자세히 알려줄 해설사와 함께 투어를 했는데요, 정말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 26m 깊이의 해자.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후덜후덜 다리가 떨렸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해설사의 이야기로 재구성해본 세고비아 성안의 모습을 설명해드릴게요. 세고비아 성은 방문객에 개방한 몇몇 인상적인 방(sala)이 있습니다.
외부에 개방된 세고비아 성 안의 풍경
1. Sala del Palacio Viejo,살라 델 팔라시오 비에호
옛 왕실의 알폰소 8세(1158-1214 카스티야의 왕)가 지은 곳으로 가장 오래된 곳 중의 하나입니다. 이곳에는 갑옷이 전시되어 당시 귀족의 전투 상황을 상상할 수 있고요. 해설사의 설명으로는 갑옷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다칠 때를 대비하여 입는 옷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무거운 갑옷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시켰다네요. 이곳에는 아이들 갑옷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방에는 독특한 창이 안쪽에 있는데 사실은 쉬운 말로 '원조' 외벽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벽 바깥에 방을 하나 더 만들어 지금의 방이 되었고요, 13세기의 무데하르(mudéjar, 7세기부터 15세기까지 국토 회복 운동 때 기독교도의 지배 아래 있게 된 지역에 거주했던 이슬람교도의 예술과 건축 양식) 문양이 아직도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기마병과 갑옷, 어린이 갑옷 등이 전시되어 있는 방입니다.
진짜 주인은 옛 벽에 방을 하나 더 만들어 성을 증축했네요.
2. Sala de Chimenea, 살라 데 치메네아
벽난로 방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업무를 보던 곳입니다. 석조 건물이 대부분인 유럽의 성은 난방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살기에 몹시 추웠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업무를 보기 위해 벽난로가 있는 곳에서 회의하며 추위를 피했다고 합니다.
알카사르의 진짜 주인은 이렇게 난로 앞 엄무용 책상에서 일을 봤지요.
▲ 겨울에는 따뜻하게 화로까지 피웠다네요.
3. Sala del Trono o del Solio, 살라 델 트로노 혹은 살라 델 솔리오
스페인의 대표적인 여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사벨(1474-1504 카스티야 여왕) 여왕의 흔적이 있는 곳입니다. 이사벨 여왕도 이 성에서 살았다니!!! 가톨릭 옹호자였던 이사벨 여왕이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과 결혼하며 집무를 보던 왕좌가 있는 방입니다. 두 부부는 공동 업무를 보았기 때문에 'Tanto monta, monta tanto(대등하다)"라는 말로 두 왕국을 오가면서 지배했다고 합니다. 불쌍한 페르난도~! 나중에 아라곤 왕국이 카스티야의 속국으로 되잖아요~!
▲ 여왕과 왕의 왕좌. 그 앞에서 자세 취하는 우리 가족들.
4. Sala de la Galera, 살라 데 라 갈레라
갈레라(galera)는 옛날의 대형 사륜 포장마차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이곳에서 왕이 귀족과 사무로 접견을 하거나 왕위 계승식을 하던 장소였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 까를로스 무뇨스 데 파블로스(Carlos Muñoz de Pablos)라는 화가가 이사벨 여왕의 왕위 수여식을 모티브로 그린 대형 벽화가 강하게 눈에 들어오는데요, 자세히 보면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눈이 없습니다!!! 무서워~!!! 시각장애인의 수호신인 산타 루시아(Santa Lucia)를 기리기 위해 그렸다고 해서 등장인물 전체가 맹인이라네요.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문 위에는 화가의 어린 딸이 그려져있습니다. 우와~! 이거 해설사께서 설명하지 않으셨다면 정말 몰랐을 거에요. 이번이 두 번째 알카사르 방문인데 이제야 알았네요. ^^
5. Sala de piñas, 살라 데 피냐스 (솔방울 방)
솔방울 모양의 장식이 방 천장을 장식하고 사무실 느낌이 나는 방입니다. 중요 문서를 보관하던 이동식 가구가 있으며, 사무를 보던 책상과 접이용 의자까지 중세 시대의 사무 풍속을 볼 수 있습니다.
▲ 천장에 꼭 솔방울 달아놓은 것 같죠?
▲ 이동식 중요 서류를 보관하는 가구와 접이 의자입니다.
6. Cámara Regia, 카마라 레히아
이 방에는 기둥 네 개에 커튼이 쳐진 침대가 있습니다. 천장이 높은 방 때문에 보기에는 아주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3m 이상의 높이라고 하네요. 엄청나게 작아보이는데 사실은 굉장히 큰 침대라네요. 커튼은 금실로 장식했고, 벽에는 양탄자에 그림을 그린 벽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냥 천 쪼가리로 볼 수도 있는데, 한국으로 치자면 병풍과도 같이 벽화로 장식했고, 동시에 추운 벽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난방용으로도 사용했다네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침대를 보시죠~!
▲ 오랜 침대답게 좀 퇴색한 느낌이 들지만, 왕과 왕비의 침실이었다는 것!
7. Sala de los Reyes, 살라 데 로스 레예스
이 방에는 여러 왕의 형상이 조각되어 천장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마치 조선 왕조의 왕의 이름을 외우듯이 이곳에서도 왕위에 올랐던 왕과 여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식품으로 채웠다고 합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사실은 이교도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왕들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어? 어떡하다 이 방 사진은 찍지 않았네요. 대신 동영상으로 녹화를 했는데, 화면캡쳐하여 보여드리자면 위의 장면과 같습니다. 왕이 이렇게나 많이 방 천장 둘레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남편인 산똘님도 학창 시절, 이 왕들의 이름을 외워야했다는 뒷이야기를.......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김완선~! 헉?! 아니, 예성연중인명선~!
8. Sala del Cordón, 살라 델 코르돈
꼬인 금빛 모양의 끈, 실(cordón)로 벽을 장식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외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고딕 양식의 창이 있어 세고비아 외곽의 모습도 관찰할 수 있지요. 또한, 왕이 가톨릭 미사에 얼굴을 보이지 않고도 참석하도록 아라베스크(Arabesque) 나무판이 짜여 있어 귀족, 관료와 떨어져 미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 주인들도 자기 원할 때는 대중에게 비치지 않았구나!
▲ 저 아라베스크 문양 뒤에는 예배당이 있습니다.
9. Capilla, 예배당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면 문 안쪽 높은 곳에 1862년 당시 화재로 그을린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날을 기억하려고 일부러 남겨뒀다고 하는데요, 왕실 미사를 하던 곳이랍니다.
▲ 왕실 예배당 내부 모습
▲ 1862년 화재에 그을린 흔적
10. Sala de Armas o Armería, 무기 보관실
세고비아 성의 정식 해설사가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곳은 기마병의 갑옷에서부터 대포, 창, 활 등의 무기를 전시하고 중요 문서를 소개하는 박물관입니다. 1762년 까를로스 3세 재위 때에 감옥으로 쓰였던 이 성을 왕실 포병 대학으로 바꾸어, 군 양상에 힘을 기울여 왕실 군대의 기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스페인 군사력 최고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여기까지가 개방된 세고비아 성 일부의 내부 모습입니다. 시대적으로 왕실로 쓰였다가, 한때는 감옥으로, 한때는 왕실 포병학교로, 이제는 박물관으로 바뀐 모습이지요. 그래도 방문객은 뭐니해도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특별한 감회에 접하기도 합니다. 이곳이 한때는 이랬구나, 싶기도 한 것이. 마지막으로 빠질 수 없는 성탑으로 올라가 보자고요.
Torre de Juan II 후안 2세의 성탑
이 성탑 정상은 무엇보다도 환상적인 파노라마 풍경을 접할 수 있는 것이죠. 앞으로는 도시 전체를, 뒤로는 외곽의 벌판을 볼 수 있는 스페인 특유의 전형적인 중세 도시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탑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회용돌이 모양의 156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야 합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가기에도 어려운 좁은 계단이어서 그런지 그에 걸맞게 예전에는 감옥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오르기에도 어려웠지만, 탈출하기에도 어려웠던 감옥이었고, 1930년대 마지막 죄수가 수감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 다리가 조금 아팠던 계단 오르는 길
▲ 후안 2세의 성탑
▲ 성에서 바라보는 세고비아
제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 성이 [신데렐라]와 [백설공주]의 배경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상상하기에 바빴습니다. 확실히 [백설공주]는 성뿐만 아니라 숲속의 일곱 난쟁이의 집까지 스페인식입니다. 페페 아저씨 집이 일곱 난쟁이집 판박이거든요!
스페인 출신의 유명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월트 디즈니와 꽤 친분이 있던 관계를 보면 분명, 이 배경은 상상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고비아 성에서 마지막으로 거주한 왕 까를로스 3세.
우연히 스페인 중세 여행을 하듯 세고비아 근처의 작은 마을과 숲을 여행하다 우리 가족은 까를로스 3세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었습니다.
여름 왕실로 쓰인 라 그란하 데 산일데폰소(La Granja de San Ildefonso)를 지나 에레스마(Eresma) 강의 상류로 올랐는데, 그곳에는 까를로스 3세가 즐기던 숲속 사냥과 낚시터가 18세기부터 전해져옵니다. 발사인(Valsain)이나 라 그란하(La Granja)에서 시작하는 산책로는 총 12Km인데 풍경이 마치 (제 상상에 불과하지만) [백설공주]에 나오는 숲속 같습니다. 까미노 데 페스케리아스 데 까를로스 트레스( CAMINO DE PESQUERÍAS DE CARLOS III)라고 불리는 산책로는 왕이 직접 지시하여 강을 보수하고 길을 낸 인공적인 산책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길은 평탄하고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예기치 않게 마주한 까를로스 3세,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백설공주 성의 진짜 주인?! 그는 사냥을 좋아했으나 자연과 동물을 사랑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우연히 들른 마드리드의 자연사 박물관에서도 그를 접할 수 있었는데요, 그곳에는 왕이 채집하고 박제한 신기한 곤충과 동물이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인상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스페인 근세 화가 고야가 그린 까를로스 3세의 초상화도 함께 볼 수 있고요, 물론 아름다운 왕을 과장하여 상상할 수도 있으나 너무 현실적이고도 사실적인 왕의 얼굴에 약간은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못 생겨서? 못 생긴 게 죄냐고요!!!
▲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3세
하지만, 세고비아 성이 상상 속의 [백설공주] 성이지만, 그곳에 산 왕과 왕자도 사실은 현실적인 인간이었을 뿐이지요. 고야의 사실적인 묘사에 웃음이 나오는 그는 괴짜 같은 얼굴이 그냥 한 인간으로 보였기 때문이지요.
스페인 세고비아(Segovia)는 참 볼거리가 많은 도시입니다. [백설공주]의 배경이 된 세고비아 성도 있지만, 로마 시대 부터 전해져오는 수도교(Acueducto de Segovia)로도 유명한 도시입니다. 아직도 중세풍의 건물을 유지, 보수하며 그 지역 특산물인 새끼돼지(코치니요 아사도, Cochinillo asado) 구이도 맛볼 수 있고요, 거대한 인류문화유산인 수도교는 장엄하면서도 벅찬 감흥을 줍니다. 이곳에서 인류 역사의 감흥에 취하여 로마와 중세, 현대를 오가며, 동화와 상상, 현실을 오가면서 여행하는 재미는 특별한 추억을 담을 수 있습니다!!!
▲ 아이들과 함께 성 앞에서 찰칵~!
[백설공주]의 배경이 된 세고비아 성은 만화 속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건축 구성과 역사적 일화로 만화보다 흥미로웠습니다. 푸른 스페인의 햇살과 그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의 왕과 왕비, 포병 학교의 군인들, 심지어 성탑 감옥에 갇힌 죄수까지 어찌 영화와 같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월트디즈니사의 만화를 즐기는 덕후라면 세고비아 성 방문은 필수~!
♥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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