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생각

한국 가려고 숨겨둔 비상금, 6년 만에 찾아보니..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4. 11.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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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의 공동 통장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수입 지출에 대한 요즘 상황이 막 그려지더군요. 오늘은 마을 은행에 아이들 급식비 3개월 치를 다 내니 마음이 너무 뿌듯해오더라구요. 적어도 3개월은 걱정에서 해방이다! 하고 말이지요. 첫째만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둘째 쌍둥이 녀석들이 같이 다니니 우와! 이 교육비가 장난 아니게 나간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뭐 지금은 급식비만 내지만, 앞으로 얼마나 많은 교육비가 더 들어갈까 후덜덜 떨고 있답니다. 


급식비 세 달 치 내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추적추적 비 내리는 이 고산의 가을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찡한 것이...... 한국이 생각나더라구요. 

앗! 한국?!!!! 하면서 갑작스럽게 6년 전 숨겨두었던 비상금이 막 떠오르더군요. 


아니! 어쩌면 6년 동안 한 번도 이 비상금을 생각해본 적이 없지? 저 스스로가 식겁 놀라면서 이 책장에 숨겨놓은 비상금이 생각났습니다. 



※ 다음의 연관 글을 읽어보세요, 아주 재미있어요. 



6년 전, 아이를 배기 전에 모아둔 비상금이었지요. 


결혼하고 집을 수리하며 짓고 있을 때, 벌어온 돈 족족 재료비로만 나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 몰래 돈을 챙겼지요. (남편과 전 공동 살림을 하기 때문에 어디에 지출이 나가는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만 친구가 한몫한 것이, 


"우리 같은 외국인이 이곳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누가 알겠어? 혹시나 돈 다 떨어지고, 애인에게 바람맞고, 남편과 다투었을 때, 집으로 돌아갈 비상금은 챙겨 놓는 것이 좋겠어!" 하고 말입니다. 


물론, 저는 산똘님과 아주 다정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말이지요. 누가 사람 속, 한 깊이를 알겠어요? 오늘은 다정하다가도 내일 홱 돌아서는 사람 심리를 말이지요. 그리고 혹시 다투고 집이 그리울 때는 집까지 갈 수 있는 차비는 있어야 할 것 같아 비행기값을 모으기 시작했답니다. 친정이 한국에 있으니 한국 갈 비행기 표는 꼭 있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하고 친정 갈 수 있는 한국 여자들이 참 부러웠어요. 바람 쐬러 친정 다녀오는 한국의 언니, 동생이 너무 부러웠지요.) 물론, 그 당시 제 통장에는, 제가 번, 비행기 표 몇 장은 더 살만한 돈이 있었지만 말이지요. 이 돈은 어쩐지 남편과 나의 공동 돈이란 생각 때문에 댈 엄두를 내지 못했답니다. 말 그대로 몰래 비상금으로 챙기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육아에 신경 쓰느라 더 이상 이 비상금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선녀가 되어 아이 셋을 기르면서 도망갈 생각을 어디 했겠어요? ^^

이 생각을 하니 웃음이 막 나네요. 


집에 돌아와 저는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랄라!!! 비상금이 어디 있더라! 찾아보자!


앗! 그런데 이 머리가 건망증 돌입에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에 돈을 뒀더라? 아이, 정말 주책이야! 기억이 안 나! 하면서 머리를 빵빵 주먹으로 치면서 찾길 시작했죠. 



제 기억은 책장에 숨겨놓은 도자기 잔 안에 있는 것으로 확신했답니다. 제가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라 책장에는 이런저런 도자 잔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 도자 잔에 있다고 확신한 돈이 없어 멘붕이 왔습니다. -.-;



아니, 내가 믿었던 이 잔에도 없고, 도대체 돈을 어디에 두었던 거지? 비상금은 정말 필요할 때 써야 하는 것인데 기억해내지 못하면 쓸 수도 없잖아?! 윽!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니...... 도자 잔에 비상금 뒀다 도둑이 와 털리게 되는 때를 대비해 다른 곳으로 돈을 숨겨놓은 것이 기억이 나더라구요. 


아! 맞다! 책 뒤쪽에 숨겨놓았지!!! 

하면서 가장 강력하게 생각나는 곳의 책 뒤쪽을 열어젖히기 시작했습니다. 



헉?! 멘붕이다. 이 책 뒤쪽에 둔 것이 아니었어? 도대체 어디에 둔 것이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어디에 둔 것인지 생각을 쥐어짰습니다. 내가 예쁘장한 천지갑에 넣어둔 것은 확실한데....... 그것을 어디에 둔 것이지? 아아아아아악! 기억이 안 났습니다. 


그래서 책장 위에서 아래까지 책을 뒤집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짜잔! 책장 맨 밑에서 두 번째 책꽂이에 다다랐습니다. 무엇인가 기억에 난다. 맞다! 맞아! 한자 옥편 사전에 내가 둔 것 같아! 옥편 사전이 나름대로 뜻이 깊은 책이거든요. 초등학교 졸업식 날 탄 개근상이거든요. 하하하!!! 그래서 그 옥편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때 6년 전 비상금 숨기던 때가 기억이 나더군요. 



보세요! 앗싸! 찾았다. 찾았어! 혼자 좋다고 킬킬킬 웃으면서 아직도 상태가 아주 좋은 천지갑을 꺼냈습니다. 이거 뭐야? 횡재한 느낌이잖아? 이럴 수가! 이럴 때를 대비해 비상금을 숨겨 놓은 것인가? 기분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얼마를 숨겨놓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더군요. 비행기 값은 될 것 같은데...... 하면서 지퍼를 열었더니...... 50유로(약 7만 5천 원)짜리가 막 눈에 들어옵니다. 얼씨구나! 정말 좋구나! 좋아! 



돈을 쫘악 펴서 부채 모양으로 부채를 만들어 한번 휘둘러보고 싶은 심정이 일었지요. 돈을 세어보니 이거 한국 돈으로 100만 원 정도가 나오더군요. 아! 내가 남편과 다투고 쉴 곳 찾아 비행기 값으로 숨겨놓은 이 비상금! 오늘따라 웃음이 나오더군요. 이제 아이 셋이 생겼으니 이 돈으로 아이들 셋과 한국 가기는 글렀으니 말입니다. 


13년을 같이 살았는데 남편이 참 인간적이고 뒤통수 때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만 이런 비상금은 접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니 돈은 또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막 들었답니다. 갑작스럽게 당할 수 있는 일에 대비하여 이번엔 비행기 값이 아닌 아이들 교육비로 숨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이, 6년 만에 찾은 이 돈에 횡재한 기분 3분만 느끼고 다시 넣어두자, 란 생각이 일었습니다. 

아이들 교육비로 언젠가는 꼭 필요한 날이 올 거야, 란 마음이 드니 이제는 잊지 말고 꼭 비상금으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절대로 (어디에 뒀는지) 잊지 말고......!  


혹시 제가 나중에 잊어버리면 여러분께 물어볼게요. 어디에 뒀는지...... 크아! 잊지 말자, 잊지 말자...... 

(산똘님한테는 비밀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사랑의 공감 꾸욱! 산들 씨 기억력에 산소를 공급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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