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200m 스페인 고산에는 여전히 동화가 존재하는 듯합니다.
동화 속에서나 보는 양 떼며, 양치기, 사냥꾼, 포수가 이곳에서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스페인에서도 철 되면 사냥이 가능한 사냥 기간이 다가옵니다. 아무나 사냥할 수 없고요, 사냥 허가증과 (사냥용) 총기 허가증(실명제) 등이 있어야 가능하답니다.
요즘 사냥 기간이라서 우리 집 근처의 들판이며, 숲에서 총소리가 뻥뻥 울려 퍼집니다.
들에서는 새를 잡기 위해, 숲에서는 멧돼지며 토끼, 산양 등을 잡기 위해 총을 쏩니다. 그러니 평화로운 정적이 흐르다가도 총이 뻥뻥 울려 퍼질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답니다. 사람에게도 총소리 충격이 이렇게 큰데, 숲에 사는 동물들은 이 총소리 때문에 사는 게 참 괴로울 거예요. 어떤 때는 떼를 지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도망가버리기도 합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혼자서 숲 위 작은 인조 웅덩이에 갔다 왔다고 합니다. 소를 키우는 농가에서 목축용 작은 저수지를 만들어 놓는데, 물이 있는 곳이라 언제나 생명이 넘쳐납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쉽게 양서류 및 철새 등을 관찰하곤 하지요.
그러다 오늘 집에 오자마자 큰아이가 소곤소곤 웃으며 제게 비밀을 이야기해줍니다.
"엄마, 오늘 사냥꾼이 숨어있는 장소인 하이드를 발견했어요."
스페인 고산에서는 사냥하기 위해 사냥꾼들이 돌이며, 나무로 만든 위장 장소가 있답니다. 동물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녹색 계열의 전문 장비로 만들기도 하고, 이렇게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재료로 만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그런 사냥꾼이 잠복하며 기다리는 위장 장소를 발견한 것이지요.
"엄마, 그곳에 메모 남기고 왔어요."
아니, 아이들이 사냥꾼 터에 메모까지 남기고 오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하도 총을 빵빵 쏘니까 요즘은 우리도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그래서 편지를 써두고 왔어요."
얼마나 웃기는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사냥꾼이 오인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제법 커서 메모를 남기기도 하네요. 다행히 오늘은 사냥하는 날이 아니라 아이들도 자유롭게 숲으로 가 위장 장소를 여유롭게 훑어볼 대담함도 보여줬네요. 어쨌거나 아이들이 남긴 메시지는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졌답니다.
"그래서 뭐라고 메시지를 남겼니?"
산드라는 쑥스러우면서도 자기도 웃긴지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친애하는 사냥꾼 아저씨. 예의에 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총을 쏠 때 한번쯤은 동물을 생각하고 사냥을 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메시지를 남겼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겠어요?! 얼마나 웃기고 한편으로는 대견한지......! 세상에 하찮은 생명이란 하나도 없는데, 너무나 쉽게 동물을 죽이는 건 아닌가 싶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의 농담 아닌 진담을 담아 메모를 남겼네요!
"그런데 누리는 그 메시지에 이어서 이렇게 또 썼어요."
"어떻게?"
"'적어도 총 쏘고 남은 탄약통은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주워 가시면 좋겠어요!'라고요."
얼마나 웃기는지......! 아이도 이 말을 하면서 키득키득 웃더라고요. 그런데 누리 말이 맞습니다. 숲으로 산책하다 보면 정말 탄약통 껍질이 가끔 보이는데, 보기에 흉하더라고요. 그래서 누리는 사냥꾼 아저씨를 따끔하게 혼내줬네요!
▲ 위의 사진은 포수가 쏘고 난 후 생긴 탄약통 껍질 쓰레기입니다.
산드라가 아기였을 때 정말 잘 따라 부르던 노래 하나가 생각났어요.
'숲속 작은 집 창가에 작은 아이가 섰는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문 두드리며 하는 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나를 살려주지 않으면 포수가 총으로 빵 쏜대요.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별하나동요 발췌
이 노래인데 우리 아이들이 참 많이도 들은 동요이지요. 그런데 이제 제법 컸다고 포수에게 한 마디 남길 줄 아는 아이가 돼 가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아이들은 사냥꾼 위장터를 가볍게 지나지 않고 우려의 목소리를 남겼는데, 과연 사냥꾼은 아이들의 메시지를 잘 받아들일까요?
여러분! 오늘도 행복 가득한 하루 보내시고요, 하루하루 건강 유의하세요! 화이팅!
Copyrightⓒ산들무지개 all rights reserved
♥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 ♥
☞ 스페인 고산평야의 무지개 삶, 카카오스토리 채널로 소식 받기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김산들 저
스페인 해발 1200미터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서 펼쳐지는 다섯 가족의 자급자족 행복 일기세 아이가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향해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간다. 무슨 꽃이 피었는지, 어떤 곤충이 다니는지, 바람은 어떤지 종알종알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들은 종종 양 떼를 만나 걸음을 멈춘다. 적소나무가 오종종하게...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로 검색하시면 다양한 온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답니다.
전국 서점에도 있어요~~~!!!
e-book도 나왔어요~!!! ☞ http://www.yes24.com/Product/goods/72257013
'뜸한 일기 > 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폭우, 우리가 사는 고산에 성큼 다가 온 겨울 풍경 (3) | 2020.11.10 |
---|---|
쓸쓸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시간 (5) | 2020.10.31 |
저녁에 갑자기 쏟아져 내린 스페인 고산의 우박 (4) | 2020.09.03 |
가을이 벌써 온 듯한 스페인 고산의 요즘 풍경 (9) | 2020.09.01 |
시골 고양이가 아이에게 고맙다며 가져온 이것, "아이 식겁" (11) | 2020.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