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이웃

스페인 시골마을에서의 만남과 이별

산들무지개 2021. 3. 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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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200m 스페인 고산......

스페인 사람들은 해발도, 고산도 별로 생각지 않는다. 내륙이 거의 높은 고도에 있으니 당연히 존재하는 어떤 초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메세타 고원...... 나는 이 말을 한국에서 자주 들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거의 듣지 못한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에게 묻곤 했다. 대부분은 '나는 처음 듣는 단어야.'라고 밝힌다. 

이런 곳에서 터를 마련하고 산지 거의 14년이 돼 가고 있다. 집을 구입하고 수리한지는 한 16년이 된다.

처음, 이곳에서 살자고 결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비스타베야 고산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좋은 이웃이 됐고, 좋은 친구가 됐다. 그 와중에 성격이 고약한 사람도 있었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이도 있었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내 책,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를 통해 몇몇 이웃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참 이상하다. 도시에서는 누군가가 교통사고 당하고 자살하고 사망해도 먼~ 뉴스 속의...... 그저 그런 어떤 소식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니 한두 분 돌아가실 때마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내가 모르는 동네 이웃이 돌아가셔도, 내가 아는 누군가와 관계된 사람이니 매번 마음이 허하다. 

 

최근에는 이방인인 나를 살갑게 대해주신 아주 멋진 할아버지 한 분이 돌아가셨다. 음악을 사랑해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기타 배우러 오라고 하셨던 분인데...... 너무 안타까웠다. 조금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금방 사라지다니......! 생각도 못했다. 한국 방송에도 출연하시면서 유쾌함을 주셨는데...... 가족분들은 더 슬프셨겠지만, 이방인인 나도 참 슬펐다. 

 

또 며칠 전에는 마르셀리노 아저씨도 돌아가셨다. 내 책에서 소개한 말 농장 주인이신데...... 매번 나만 보면, "어이! 이웃!!! 안녕?! 커피 한 잔 사줄게." 그러시면서 인사하곤 하셨다. 투덜이 스머프처럼 맨날 인상 찡그리며 툭툭 말을 뱉으셨지만, 정말 좋은 분이셨다. 그런데 마르셀리노 아저씨까지 돌아가시니 마음이 뒤숭숭하다. 

 

마르셀리노 아저씨 덕분에 말 농장이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유가족이 농장을 다 처분할 것 같다. 아직 말 주인을 찾지 못해 아무도 농장을 돌보는 이가 없어 우리가 돕기로 했다.   

 

주인 잃은 말은 저 먼 초원에서 우리를 봤을 때 힘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동물도 민감한 녀석들이라는데 어쩐지 마르셀리노 아저씨를 그리워하는 듯해 코가 찡~ 했다. '왜 우리 주인은 오지 않는 거지?' 이렇게 자꾸 소식을 묻는 듯했다. 

 

창고에서 아이들이 짚을 꺼내고, 함께 오신 빅토르 학교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먹이 주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며칠 안에 말이며 농장이 다~ 처분될 거라는데.....

한 사람이 없는 자리가 이렇게 큰 변화를 준다. 슬펐다. 

 

이 말농장은 사실 마르셀리노 아저씨가 취미로 유지하고 있던 곳이다. 매번 스페인 유명 말대회에 말을 보내고 자태를 뽐내는 재미로 취미활동을 하셨다는데...... (마르셀리노 아저씨는 스페인 타일 공장의 사장님이시다)

 

내 책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마르셀리노 아저씨는 경주에서 우승한 암말을 지키기 위해 우리 가족이 키우던 사피로를 크게 못 마땅해하셨다. 

(사피로는 근본이 명확하지 않았고, 발정 났을 때 항상 마르셀리노 아저씨 농장에 들이닥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중한 말이 새끼를 배기라도 한다면 우리에겐...... 큰 벌금이......! 😅) 

 

아무튼 지금은 사피로도 없고, 아저씨도 안 계시니...... 평화가 찾아온 듯하다. 하지만 마음은 더 크게 동요된다. 

심지어 그립기까지 하다. 

 

이 넓은 고산평야에서 이렇게 우리가 살고 이별하는 모습은 그저 '한 줄기 바람'과 같다. 

그저 하루하루 소중한 인연과 삶, 시간에 감사하며 살아가야지...... 행복하자고 사는 세상...... 유포리아적 행복은 아닐지언정 소소하게 하나하나 채우며, 그리고 또 하나하나 비우며...... 그렇게 겸손하게 살아야지...... 

고인이 되신 아저씨는 이제 이 고산평야의 흙과 바람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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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무지개의 수필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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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스페인 해발 1200미터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에서 펼쳐지는 다섯 가족의 자급자족 행복 일기세 아이가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향해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간다. 무슨 꽃이 피었는지, 어떤 곤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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