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영장에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 나이 들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더니, 요 몇 년 사이, 고관절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 걸을 때마다 절뚝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 운동해야겠다, 아니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마음먹고 난 후, 계속 산책과 수영을 하게 되었지요. 역시 운동을 하니까 몸이 좀 더 유연해지고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정말 운동하길 잘했구나, 스스로에게 기특하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리고 이사 온 후, 처음으로 간 수영장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스페인 사람들 특유의 그 친밀함 때문에 말을 시키지 않아도, 말을 걸어와 못 본 체하고 싶어도 매일 인사하게 되는 일을 겪고 있습니다. 작은 수영장이라 오는 사람들은 다 알고 지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어떤 때는 길가다 아는 체하는 사람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와~ 수영장에서 잠깐 스쳐지나간 사람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스페인 사람들 정말 내적 친밀함이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어느 날은 어느 중년의 여성이 인사를 하더라고요.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 토요일 수업에 대해 잠깐 대화를 나눴어요. 토요일 수업은 어떻나요? 토요일에는 사람이 많이 오는가요? 어떤 시간대가 가장 조용하게 수영할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그 중년 여성은 수영 강의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오가는 이용객인데, 토요일에 자주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말미에... 그 여성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야~! 너 그 중국인이구나! 저기 바자르에서 일하는...?!"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왜 이곳 사람들은 동양인만 보면 중국인이라고 생각할까? 싶은 마음이 잠시 들었어요. 조금 기분이 나쁘기도 했어요. 이것이 인종차별???
"아니, 아니~! 난 한국인인데...?!"
그 여성의 말투 그대로 저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때 갑자기 수영을 시작해 더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뭔가... 멍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뭔지 모르게... 인종차별??? 자꾸 이런 기분 나쁜 느낌만 들었어요.
하지만, 수영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아~ 여기 사람들은 평소 중국인 가게와 음식점을 자주 다니니 그렇구나. 한국인이 없는 곳이라 더 중국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아쉽다. 내가 한국인이라면서 좀더 내 소개를 하고 사정을 이야기하면 좋았을 텐데... 분명 '중국인'이라고 물어본 그 뉘앙스에는 어떤 인종차별적 표현은 없었는데, 내가 너무 유별나게 받아들인 건 아닐까... 뭐 그렇게 말이에요.
그러다 지난 수영 강습에서 그 중년 여성을 다시 만났습니다.
집으로 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는데 누군가 앞에서 막~ 친구처럼 말을 해오는 겁니다.
"추운데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고 가야지."
처음엔 누구지? 했습니다. 그 중년 여성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거든요. 누군데 나한테 이렇게 말을 자연스럽게 걸지?
"어~ 신발 신고 머리 말리려고..."
저도 좀 의아해하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이 웃으면서 제가 말을 하더라고요.
"나야! 그때 중국인이라고 물어본 그 여자! 넌 한국인이라고 대답했었잖아. 그때 난 중국인인 줄 알았어. 우리 동네에 한국인은 처음으로 봐서..."
그제서야 기억이 납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잖아도 너무 아쉬워 다시 만나면 내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했지! 속으로 말했어요. 이렇게 스윗하게 말을 걸어줘 너무 반갑고 좋았습니다.
"난 한국인이고, 내 이름은 OOO이야. 1년 전에 페냐골라사 고산 마을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어. 그래서 이곳 지리도 잘 몰라. 만나서 반가워."
그렇게 다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얼마나 잘 웃으면서 이야길 하는지......! 대화할 때마다 뭐가 재미있는지 우리는 깔깔거리면서 우리 이사에서부터 자식, 남편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랑 동갑내기이며, 아들 둘 가진 엄마였어요. 그렇게 해서 저도 새로 이사 온 이 마을에 동갑내기 친구? 지인? 한 명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 나이 많으신 분들과 이야기 나눴는데, 이번엔 조금 더 젊은 중년 여성과 대화할 수 있어 정말 즐거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화를 잘 풀다보면 오해는 풀리고 기분 나쁜 일도 없어질 것이란 생각....... 나의 오해를 푸는 방법은 역시 대화였다는 것~!
여러분~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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