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생각

스페인 새집 이사 온 후 40대 후반부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운동

스페인 산들무지개 2024. 9. 2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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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뭘 하나 결심하는데 얼마나 큰 고민을 하고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매번 하나를 결심할 때 얼마나 따지고 재는지... 얼마나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얼마나 망설이는 부분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쓸데없이 고민만 많습니다. 그게 이 글쓴이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수월해져 쉽게 결정 내리고 결심하는 부분들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오래 고산에서 살아 그런지, 이사 오고 난 후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옆에 동행해 줘야 나가는 것은 아닌지, 너무 의존적이 돼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사 온 곳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곳이라 스스로 모험하고, 살피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괜히 주눅이 들어 외출하기가 싫어집니다. 혹시,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까? 외부인을 경계하는 것은 아닐까? 등등... 외부로 나가기가 부담스럽고 낯섭니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거부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나 봐요. 어떤 때는 편도체가 예민해 그런가? 의심을 할 때도 있어요. 뭐가 두려운지 내 안전한 보금자리를 떠나기가 싫습니다. 아니면 전생에 초식동물이었는지 항상 눈을 크게 뜨고. 겁에 질린 듯 세상 곳곳을 다 봅니다. 귀로 위험을 인지하기 위해 (이어폰 안 하고, 음악도 잘 안 듣는 타입) 쫑긋 세우며 밖으로 나갑니다. 밖에서는 정신 바짝 차리고 돌아다니는 초식동물입니다. 

 

아니, 이러다 정말 외로운 50대를 맞이하는 건 아닐까? 친구도 없고, 세상에 나가기도 싫어하는 은둔자 같은 외톨이? 좀 웃프지만, 이런 생각을 하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새로 이사 온 곳에 적응하려면, 내가 머물 수 있는 반복적인 루틴(일상)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큰 목표를 두지 않고, 작은 것에서 나의 소중한 일상을 구하는 일~!!! 

 

고산에 살면서 제일 아쉬웠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니... 아하! 수영이었습니다! 

 

제가 2007년에 고산에 정착했는데, 그전까지 발렌시아에서 하던 유일한 운동이 수영이었어요. 고산에서 요가, 필라테스 같은 운동은 했지만, 수영만큼의 만족도를 주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새로운 마을에 수영장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운이 좋아 그런지, 차로 10분 거리에 마을에서 운영하는 시립수영장이 있었어요! 얏호~! 쾌재를 부르며 올해는 꼭 수영을 시작해야겠어! 하고 다짐했지요.

 

그 다짐은 지난 7월에 했습니다. 9월에 개방하면 강습에 나가야겠어~! 하고 다짐했는데... 점점 날짜가 다가오면서 또다시 편도체가 자극되었는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수영 안 한 지는 17년도 더 넘었는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나이에 뭘 한다고? 운동하고 피곤해서 일상이 깨지는 것은 아닐까? 일도 해야 하는데, 괜한 운동 시작으로 망치는 건 아닐까? 뭐... 별 희한한 핑곗거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왜 또 이런 핑계를 만들어?

수영하고 싶다면서 동시에 수영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고 있는 제 자신이 보였습니다. 

 

됐어! 제 안에서 고민하는 두 개의 인격체에게 그만하라고 소릴 질렀습니다. ㅋㅋㅋ

됐다구!!! 그만하라고!!! 

 

안 되겠다! 수영을 3개월치 미리 끊어놓자! 하고 일단 저질렀습니다! 저질러야 자잘한 걱정거리, 핑곗거리를 만들지 않을 것 같았어요. 

 

수영강습 3개월치 끊고 나니... 이제 준비해야 할 용품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수경 새로 사고, 슬리퍼, 타월, 수영복, 등등 수영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는 성취감에 무척 기뻤습니다. 드디어 새로 시작하는 수영! 너무 기대되고 설렜습니다. 

 

전생에 초식동물이었는지, 수경도 눈에 딱 맞는 작은 것보다 모든 게 훤하게 잘 보이는 큰 수경을 좋아합니다.
수영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9월 드디어 일 주일에 두 번 수영 강습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오전반을 끊었습니다. 저만을 위한 투자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자, 계획했죠. 영상 편집하고, 글과 사진 올리는 일은 일정한 스케줄에 따라 하기로 했어요. 나를 위한 시간도 있어야 하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간 관리를 잘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수영 강습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강습받는 분들이 모녀 한 쌍,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 한 분, 젊은 남성 친구 한 명, 그리고 저 다섯 명이 받게 되었습니다. 오전 시간대라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강사가 수영 실력을 물어봤을 때, 17년 만에 다시 하는 수영이라 호흡이 불안정해 못할 것 같다고 했죠. 몇 번 왕복하니... 천천히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사분께서 수영 잘하는 팀에 절 꽂아주셨어요. 

 

 

새로운 마을에 이사 온 지 1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외부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아니, 조금 두려웠습니다. 지리도 모르고, 낯설고... 게다가 스페인이라는 낯선 이국땅에서... (물론 고산도 스페인이지만, 너무 오래 그곳에 살아 친근함이 한국과 같았어요. 새 마을은 다시 적응해야 하는 스페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수영 강습을 계기로 마을에 적응하며, 거리감을 점점 줄이려고 합니다.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새로운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그 진리, 그 두려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규칙적인 수영 강습을 통해 일상의 리듬이 생기고, 이 리듬 속에서 새로운 마을과의 연결이 시작됐습니다.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 주변 상점과 거리들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이제 이곳이 조금씩 내 집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차로 다니는 그 불편함은 있지만, 수영하고 난 후 마트에 들러 장도 보고... 또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그동안 낯설었던 이곳이 점차 괜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안에서 나만의 공간과 루틴이 생긴 건 좋은 증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작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이런 소소한 성장을 포기하거나 외고집쟁이가 될 필요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고, 조금씩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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