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아이

7년 전 배 속의 아이에게 쓴 메시지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5. 2. 19.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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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결혼하여 매해 결혼기념일을 챙기며 그 사랑을 돈독히 확인하는 행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린 어떻게 된 것인지 그런 결혼기념일은 기억 속에 없는 듯도 하답니다. 우리 결혼이 정말 장난과 같이 법정에서 판사의 심판을 받고 한 결혼이라서 그럴까요? 


"당신은 이 파하로(새)와 결혼을 하겠습니까?" 

당시 우리 결혼을 집행하신 판사님이 저에게 스페인어로 물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말을 못 알아듣고 엉뚱하게 눈만 두 눈 크게 뜨고 웃고 있으니, 판사님이 그러시더군요. 

"그냥, 네에-하고 말만 하면 됩니다."

그 말에 남편과 저는 빵 터지며 웃었던 기억이 난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증인들, 바로 저희 시부모님이십니다. 못마땅하신 얼굴로 우릴 째려보셨는데요, 사실, 그 두 분은 저희 부부가 전통적인 결혼을 했으면 하고 은근히 압력을 넣으셨더랬지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자, 이런 생뚱한 결혼식에서 우리를 째려보신 것이죠. 지금도 이때를 회상하시면서 은근히 우릴 나무라십니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 결혼기념일이 돌아와도 이날이 이날이었나 싶은 것이 깜빡한답니다. 

"오는 26일이 우리 결혼기념일인가?"

제가 남편에게 이 말을 했더니, 산똘님이 쯧쯧 혀를 차면서 그럽니다. 

"아이고, 아내여! 우리 결혼기념일은 23일이야. 23일!"

헉? 이날을 잊고 있었네. 남편이 어디 이날을 잊을 수가 있어? 하는 얼굴로 절 나무랐지요. 어쭈구리, 은근히 남편도 결혼기념일을 챙기고 싶어하나 봐. 오우! 새로운 발견이네. 


그래서 우리는 오는 23일 결혼 12주년을 맞게 된답니다. 12주년!!! 강산이 한 번 변했다!!! 


아이고, 그러다 쭉 시간을 회상하니 많은 일들이 오갔는데요, 오늘 제 옷장을 정리하다 이 상자를 발견했네요. 우리 결혼 생활 중 가장 많이 기억나는 부분이었습니다. 

 

바로 이 상자입니다. 

이 상자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시작하게 한 상자? 


보석 상자? 사랑을 약속하는 증언? 

 

상자 표면에 붙여놓은 사진입니다. 

아하! 아이들 관련 상자군요.

네! 맞습니다. 


상자를 여니, 7년 전, 처음으로 아이를 가졌을 때의 모습이 확 들어오더군요. 

아이를 갖고 친구들이 마련해준 새 생명 축하 파티에서 

아이에게 쓴 메시지가 막 떠오르네요. 


일단 상자 속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 볼까요? 

 

우리 산들 양이 잉태되었다는 소식을 제일 처음 알린 기구에서부터 다양한 것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탯줄 집게


아이 낳고 난 엄마의 병원 팔찌


아이의 손목 팔찌

아이 손목이 이렇게 작았어요. 가늘었어요. 


아이가 처음으로 사용한 공갈 젖꼭지

 

아이 머리를 처음으로 잘라 간직했어요. 

아! 가는 아기 머리카락......!

이 머리카락 자르는 것도 얼마나 서툴고 떨리던지...... 


이것은 아기가 이가 나올 때 근질거려 아프지 말라고 

목에 두른 딱총나무 목걸이, 이것은 아빠가 직접 만들어 목에 둘러줬어요.


이것은 우리 친구들이 아직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남겨놓은 메시지입니다. 

하나같이 다 아름다운 축복의 말! 


그때 느꼈던 새 생명에 대한 전율이 지금 막 느껴지네요. 

오! 나도 너무 신기하고도 신기한 생명에 대한 의문과 경험, 환상, 전율, 감동 등을 느꼈다니!!!

얼마나 신기한지, 얼마나 놀라운지, 얼마나 (엄마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는지!  


멋지고 건강하고 씩씩하고 어여쁜 우리 아기

세상을 두루 색(편견)없이 진실하게 바라보고

진실하게 세상 안에서 끝없는 자아 찾는 여행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창조적이고 주체적으로 그저 삶을 멋지고 건강하게만 산다면 난 최고 - 


8월의 어느 날 2008년, 엄마가


이런 글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배 속의 아이에게 했구나 싶습니다. 

저 때가 아이 뱃속 월령이 6개월 정도였네요. 

그때 느끼던 한 생명을 키운다는 그 신비감..... 

정말 잊을 수가 없네요. 


이것은 아빠가 쓴 메시지이네요. 


나는 우리 아이가 평화 속에서 살길 바라고, 

우리 아이가 대우받는 세상이 좀 더 아마블레(친절한 세상, 즉 평화로운 세상)이기를 바래.  


2008년 8월 12일 


그때 산똘님은 이 세상이 전쟁과 기아, 험난한 세상사, 소비 자본주의 등으로 

참 고민을 많이 하던 때입니다. 과연, 내 아이가 이 세상에서 대우받으면서 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 글은 빅토르 선생님이 쓴 글입니다. 


나는 오늘 멈춰서 내 안의 동요를 잠재운다. 

평화와 고요함으로 내 정신과 나를 둘러싸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난 자연과 우주의 음악이 주는 그 메시지를 듣고, 그 메시지를 소화한다. 


난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 이 메시지를 오늘 전한다. 

부디 멈춰 그 메시지를 잘 들으라고.


이것은 모니카 씨가 전하는 메시지네요. 


새로운 기회

새로운 존재


널 용서하는 법을 배워, 그러면 정말로 용서하는 법을 알게 될 거야. 


난해합니다. 그런데 그 뜻을 정말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우리 주위에 몇몇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요, 이 메시지는 아이를 낳은 친구가 전합니다. 


왜 급히 나를 몰아세워야 하는지 이유가 없어. 

시간은 신의 도움으로 나를 위해 일하고, 

모든 것은 고유한 형태로 완벽하게 스스로 터득해가고 있어. 

믿음 가득하고 평온한 곳에 (내 마음) 머무르며, 

위안과 즐거움이 존재하는 현재 순간의 완벽함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곳에 새로운 생명의 축복 가득하고, 완벽한 존재임을 스스로 터득하길......


오늘 이 글을 읽으니 그 여름의 뜨거웠던 아기 환영 파티가 생각이 나네요. 

오늘 남편과 결혼 기념일에 대해 대화하면서 

우리에게 소중한 보물은 다름아니라 아이들이란 것을 크게 느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갖던 그 처음 순간의 경이로움을 어찌 잊을 수가 있습니까? 

가끔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얼마나 신비로운 이 순간이었는지를 깊이 깨달아야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더 (큰 미래로) 자라날 것인데, 

이 순간의 메시지를 아이들보다 제가 더 많이 느끼고 사랑해야겠다고......

깊이 더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결혼기념일은? 

누가 알아요. 

우리 둘 몰래 결혼기념일 이벤트 챙길지.... 

기대해도 된다는 소리인가요?

네, 기대하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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