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부부

남편이 외국인이라는 걸 절실히 실감한 순간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7. 8. 2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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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실 우리 부부는 한국 - 스페인 커플로 연을 이룬 부부랍니다. 결혼 생활은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세월을 같이 했고요, (아~~~놔~~~ 나이 많다는 것을 은연중 표현하는 건가요? ^^; 아~~ 땀 나온다...... 사실 마음은 20대 중반 청춘에 머물러 있는 아주 솨아아아라 있는 사람들입니다. ^^*) 


같이 이 세월을 지내다 보니, 저는 이 스페인 사람인 남편이 전혀 외국인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답니다. 뭐 생긴 게 조금(?) 다를 뿐 살다 보니, 마치 한국인처럼 친숙하고 정다운 게 그냥 무의식적으로 국적을 가리지 않게 되었지요. 그것 보면 참 신기합니다. 자라온 환경과 문화, 나라가 다른데도 이렇게 잘 지내는 걸 보니 역시, 인간 마음 깊숙한 곳에는 국경이 없는 게 확실합니다. 



그런데 어제 처음으로 제가 남편이 낯설게 보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럽'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다름 아니라, 어제는 산똘님 생일이라 생일 축하하고 케이크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톡으로 산똘님 직장 상사가 깜빡하고 자기 책상에 둔 (자신의) 집 열쇠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직장 상사는 먼저 퇴근하여 사무실 문을 산똘님이 잠그고 왔거든요. 그러니 산똘님이 다시 사무실에 가서 문을 열어줘야 할 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아이, 짜증 나잖아~ 퇴근하고 와서 좀 쉬려고 하니 

상사가 사무실로 다시 가서 열쇠 가져오라는 거야?!!!' 


이런 소리가 제 마음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 




하지만, 산똘님은 그 열쇠를 발견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내 그럴 줄 알고 집으로 가지고 왔어요. 필요하면 열쇠 가지러 우리 집에 오세요."

하고 톡을 날렸네요. 필요한 이가 필요한 행동을 하라면서 말이지요. 상대적으로 사무실보다 우리 집이 훨씬 마을과 가까우니 오히려 잘된 일인 거죠.  


"오, 남편~! 직장 상사가 집으로 온다고? 어떡하지? 뭐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야?"

자고로 직장 상사가 온다는데 뭐라도 준비하고 손님을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말은......


"뭐, 이건 내 개인 시간인데, 일부러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직장 상사라고 내가 특별히 뭘 준비할 필요는 없지. 정말 초대하고 싶다면 나중에 약속 잡아서 초대해도 되고......!"


"그래도, 직장 상사인데...... 오시면, 자기가 만든 시원한 맥주 한 잔이라도 대접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까 얘기했듯이, 직장 외 시간인데 정~ 대접할 일이 있으면 날 잡아서 '공식적'으로 초대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이러는 겁니다. 공식적으로?! 





아~! 역시 유럽인이구나. 공과 사를 분명히 구별하는......

"전(前) 상사였다면 열쇠를 가지고 오지도 않았어. 내가 이 분을 존경하니까 열쇠도 가지고 온 거야." 

하면서 기가 막힌 방식으로 톡을 날리더군요. 


"열쇠를 집 앞 벤치 위에 올려 둘 테니 가져가세요. 나는 낮잠을 잘 예정입니다." 


헉?! 그래도 될까? 정말 대. 다. 나. 다. 

이게 바로 유럽 방식이구나, 저 사람은 상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직장 외 시간은 그냥 평등한 인간이라는 걸...... 그런데 그게 먹히는 곳이 이곳이구나 싶었습니다. 


▲ 고양이와 노는 사라가 앉은 저 벤치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요즘 한국의 갑질 문화라는 게 생각나더군요. 나이가 많고, 돈 많고, 직위가 높다는 이유로 아랫사람을 이리 오라, 저리 오라, 시키는 문화. 요즘에 아주 많이 이슈가 되어 장군 사모님 갑질 논란도 있었죠. 그런 걸 보니, 공과 사가 확실한 직장 문화는 오히려 정신 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열쇠는 벤치에 놓이고, 산똘님은 시에스타(Siesta, 스페인식 낮잠)하러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좀 너무한 걸~'

이라는 생각은 오직 제 몫이었지요. (이렇게 생각한 게 한국식 생각이라고 감히 말씀드리면 제게 돌 던지시겠어요? 나이 많은 분이 오시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집안에서 쳐잔다?라고 생각한 나......) 집에 오는 손님에 대한 작은 배려를 산똘님은 그냥 기~냥 무시하더라고요. 하지만, 이것이 정이 없어 그런 게 아니라 이 나라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하는 겁니다. 

저는 혹시라도 산똘님 직장 상사가 똑똑 현관문을 두드리지 않을까 하여 열심히 책상 앞에서 글을 쓰면서 바깥에서 인기척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50대 중반의 자연공원 책임자이신 산똘님 직장 상사는 소리소문없이 이곳에 다녀 가셨습니다

아~~~ 아무리 아랫사람이라도 개인의 삶은 존중하는구나. 절대로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이곳 사람들을 보면 안 되겠다 느꼈던 오후였습니다. 저도 다시 한번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이런 열린 생각으로 나이 들어서 아랫사람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겠다고...... 

그리고 손님 대접하고 배려하는 문화조차 한국과는 다르구나, 싶은 게 말입니다. 손님은 '공식적'으로 초대할 때에만 진정한 대접을 해주는구나 싶은 게...... (그것도 그때그때 상황과 사람 친숙도에따라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산똘님이 한국인이 아닌 다른 문화를 먹고 자란 게 오늘 참 절실히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한국에서도 이런 개인사가 잘 존중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갑질이라는 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느 선에서 지켜져야 할지 개개인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단 것 또한 느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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