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시부모님은 몇 년 전부터 우리 집에 하룻밤 이상 주무지 않으십니다. 오신다고 해도 당일치기로 다녀가시는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답니다. 허리가 좋지 않으신 어머님이 주무실 장소가 적당하지 않다는 게 이유가 되겠습니다. 어머님은 당신이 쓸 잠자리는 꼭 본인의 침대를 원하시는데 우리 집에는 그에 해당하는 침대가 없어 그렇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남편과 저는 아일랜드 더블린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4박 5일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오는 계획을 세웠는데요, 남편이 좋아하는 수제 맥주의 세계를 공부도 할 겸 그렇게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여행하기까지의 결심이 나왔는지 이야기해드릴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 딸이 있기에 그 결심은 쉽지 않았답니다.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이것저것 이유로 학교에 자주 빠져서 이번에도 빠지게 하기가 참 미안했답니다. 결국, 시부모님께 부탁했더니, 흔쾌히 허락 주시는 겁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우리가 가 있는 4박 5일을 우리 집에서 보내는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뒷바라지 해주시기로 했는데, 당신은 참 힘드실 텐데도, 자식, 며느리, 손녀들을 위해 이렇게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이 내려지자 남편이 참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도 분주해졌지만, 어찌 남편이 더 분주해졌습니다. 집 안 청소한다고 말입니다!
'어? 청소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 참 신기하네?!' 이런 마음이 먼저 일었습니다.
제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보통 남자들은 자기 부모님 오신다고 청소하는 모습이 별로 없는 듯하여 말입니다. 아니, 청소하지 않는 남자들이 더 많을 듯한데 어찌 이 산똘님은 좀 다릅니다. 게다가 평소에 제가 너무 열심히 청소하면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고 말리기까지 합니다.
"거미줄 그렇게 꼼꼼하게 안 치워도 돼~! 거미줄 있으면 파리도 잡아먹고 좋잖아?"
헉?! 하하하! 심지어 이런 소리도 하던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자기 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니 좀 마음이 달라졌나 봅니다. 평소 하지 않던 구석구석 청소에 심혈을 기울이니 말이지요. 제 손이 닿지 않는 꼭대기 유리창에서부터 타일의 기름때까지 청소하는 걸 보니.......... 헉?!
이거 실화 맞아요!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다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며느리들이 사실 집 안 청소와 음식 등을 준비하잖아요? 게다가 시부모님댁에 가도 며느리가 청소하고 음식을 하잖아요? 물론, 이것이 한국 문화라고 하면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불공평한 이 모습에 많은 분들이 불편해하시는 것은 사실이지요.
우리 아이들이 딸인데 아빠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같이 일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새겨지니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남자-여자 가사분담을 떠나서라도 산똘님이 평소에 청소를 꼼꼼히 하는 성격이 아닌데 시부모님 오신다고 이렇게 꼼꼼히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기 부모님이 오시니 말이지요!!!
자식 집을 편안하게 생각하시고, 자주 오시라는 의미로 청소를 하네요. 거미줄 괜찮다던 사람이 솔선수범 거미줄도 없애고, 환한 바깥 풍경 잘 보고 감상하시라고 유리창도 박박 닦아내고......
이렇게 청소해주는 남편이 참 고맙기도 하여, 고맙다고 하니...... 남편이 웃으면서 그러네요.
"우리 부모님이 오시니 내가 당연히 청소해야지. 뭐가 고마워? 당신 부모님 오시면 당신도 이렇게 열심히 할 거 아니야? 나에게 고마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그렇죠. ^^* 서로서로 자기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고마울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자기 부모님이 오신다고 자기가 청소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남편에게 조금 놀랐답니다.
우리 막내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다 자기도 돕고 싶다네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또 우르르 몰려가 놀이방을 청소했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실, 저는 스페인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하여 꽤 부담되었답니다. 이렇게 불편한 곳에서 편하게 지내다 가실 수 있을까? 집안이 너무 난장판은 아닌 걸까? 등등...... 사실 시부모님댁에 가면 항상 대접만 받아서 더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 편안할 수 있도록 해놓으면 자주 오시겠지."
남편은 이런 말을 하네요.
이렇게 시부모님 놀라지 마시라고 거미줄도 떼어내고, 넓게 펼쳐진 바깥 풍경 환하게 보시라고 온 집 안의 유리창은 죄다~ 닦아놓았고요, 요리하시는 두 분을 위해 부엌 말끔히 청소해놓았네요.
시부모님 덕분에 아이들 맡기고 여행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자기 부모님 오신다고 이렇게 청소 열심히 하는 남편 보니 참 신기했습니다. 남편이 효자라 그럴까요? 아니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이들만의 문화일까요? 남자도 부모님께 자기가 사는 곳을 잘 보이고 싶어 청소한다는 사실을, 사실은 오늘 처음으로 확인한 것 같아 좀 뿌듯했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블로그에서는 하지 않은 맘껏 수다방으로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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