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한 일기/가족

'며느리 치과비는 내가 낼게' 외국인 시어머니의 당찬 포효

스페인 산들무지개 2014. 11. 14.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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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들 아빠는 이가 시도 때도 없이 고장(?)이 나 석 달에 한 번은 꼭 치과에 간답니다. 


우리가 가는 발렌시아의 치과는 가족 3대 치과의와 가족 3대 고객(?) 관계로 집안 사정을 뻔히 아는 그야말로 가정적인 치과랍니다. 그래서 함부로 다른 곳에는 갈 수 없는 관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치과는 발렌시아에서도 알아주는 곳으로 주로 상류층이 가는 곳이랍니다. 헉?! 상류층? 지금은 가격이 많이 내리고 경쟁이 심해져 일반 치과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지만 말이지요, 제가 초창기 정착 때에는 좀 그랬답니다. 그러니 저 같은 외국인이 그런 치과에 가는 일은 그곳에서 상상도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때 당시 회상하자니 그렇지요. 


발렌시아 시내의 한 모습

피카소 판화 전시회가 있는 반카하(Ban caixa)은행



그 당시 신혼 시절, 산똘님은 6개월 출장을 나간 상태에서 말이지요, 저 혼자 신혼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답니다. 혼자 이것저것 하려니 좀 힘들기도 한 때였답니다. 스페인어도 배우지 않아 말도 통하지 않고, 근처 메르카도 센트랄(중앙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려니 좀 힘들기도 했답니다. 주말에 오는 남편이었지만...... 주중에는 제가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시장에서 물건 사는 것도 힘들고...... 

사랑니 하나가 고장 나 막 아팠고...... 

시청에 가서 등록해야 할 일들은 왜 그리 많은지...... 


혼자 하기 힘들어 산똘님께 투정을 했더니, 바로 다음 날 스페인 시어머니께서 오셨더랬죠. 


같이 물건도 사러 가고, 시청 가서 등록도 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냥 손짓 발짓으로 다 했지요. 

그런데 제가 가는 시장의 채소 가게를 지나가다 시어머니께서는 뭐라고 막 아주머니께 일러주고 있으셨습니다. 

앗! 평소 무뚝뚝한 저 채소 가게 아줌마에게 무슨 소릴 하실까? 

그리고 시청에 갔을 때에도 시어머님은 뭐라고 궁시렁 화를 내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시장 채소 가게는 시어머니의 단골 가게였고, 며느리 좀 잘 봐달라고 이르신 것이었답니다. 시청에서는 외국인이 편하게 등록하고 물을 편의 시설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나셨던 것입니다. 외국인 며느리의 고생을 보고 화를 내신 것이지요. 


그러다 치과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제 모습을 본 치과 직원들이 퍽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고객이 웬 동양인 여인을 데리고 온 것이야? 하는 분위기로 말입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제 존재에 놀라는 분위기였죠. 저는 사낭니가 잘못 되어 수술을 하여 빼야만 했었답니다. 그 수술(?)을 지켜보면서 시어머니께서는 비슷한 연세의 의사와 한참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스페인 사람의 한 수다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뭔 일이지? 그 당시 스페인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으니 상황에 쫄아서 꿈쩍도 못하고 있었지요. 치료가 다 끝날 때까지 두 분은 뭔 이야기를 그렇게 하시는지...... 스페인은 보호자가 같이 들어와 치료 장면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소릴할까? 궁금하여 죽겠는 거에요. 


시어머니께서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답니다. 

그러다, 치료비를 내려고 할 때, 시어머니께서는 제 앞을 턱 가로막으시면서 돈을 대신 내 주셨습니다. 

아니라고, 그렇게 말려도 어머니께서는 당차게 거의 싸우듯 돈을 내고 나오셨답니다. 


바로 요 테이블 앞에서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나중에 산똘님이 어찌저찌하여 그 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문제는 바로......


사냥 좋아하는 치과 의사가 아프리카 가서 사냥하면서 흑인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비아냥 거린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평소 동물애호가이신 어머님은 사냥 가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한 친구 같은 의사와 토론을 하시면서 격하게 느끼신 것이지요. 



"깜둥이는 몇 세대가 지나도 부패에서 벗어날 수 없어. 흰둥이가 한 명 끼워줘야 잘 돌아갈 텐데......!"

"사냥하면서 왜 그렇게 돈을 요구하는지, 깜둥이 경찰도 그렇고, 가이드도 그렇고, 흰둥이를 이용하니......!"



이런 대화가 오갔다네요. 의사선생님은 별 생각없이 한 말인데 어머님은 인종차별적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고 하시네요. 게다가 앞에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 하는 동양인 며느리가 있으니 너무 안타까워 열을 내신 겁니다. 


그리고 역시나, 


"내 며느리 치과비는 내가 낸다!"며 보란 듯 그 의사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지요. 

'적어도 이런 이야기는 내 한국인 며느리 없을 때 우리끼리 하자'는 듯 말입니다.

비록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도덕적 양심에서 이런 이야기는 도저히 들어줄 수 없었다는 것이 시어머님의 마음이셨다네요. ^^ 



적어도 외국인이라는 편견 없이 며느리를 마음으로 받아주신 어머님이 참 큰 사람이십니다. 제가 이곳에서 가장 감명 깊게, 사람으로, 편견 없는 그 모습 그대로를 보아주신 분, 그래서 참 감사하고, 그때 그 모습이...... 13년이 지난 지금도 명확하게 남아있답니다. 



뭐, 지금은 다 괜찮아진 사연이며, 두 사람, 주거니 받거니, 말거니...... 그렇게 정년퇴직을 하시고 늦은 인생의 여유를 즐기시면서 속사정 다 아는 친구로...... 그렇게 지내고 계신답니다.  


이 고장이 자주 나는 산똘님... ㅠ,ㅠ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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